덕적도 주둔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는 JMS-310정(정장 모예진 대위)이 맡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월 10일 오전 10시10분 JMS-310정이 덕적도에 도착했지만, 그때까지 병력이 집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병력이 섬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었던 탓이었다. JMS-310정은 이날 오후 4시까지 인천 팔미도로 병력을 수송하게 되어 있었지만, 악천후와 간만(干滿)의 차이 때문에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작전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노명호 소령과 김종기 소령은 각 함정에서 지원자 70명을 선발, 특공대를 편성했다.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이던 최영섭 예비역 대령(당시 소위)은 “함정에 근무하던 수병(水兵)들로 급히 부대를 편성하다보니 총이 없었다. 캐나다 구축함에서 자동소총을 얻어다 나누어 주었다”

노획했다.
  2월 10일 오후 4시30분, 특공대원들은 JMS-302정(정장 홍원표 대위)과 발동선 두 척에 분승해서 팔미도를 출발했다. 백두산함 갑판사관 최영섭 소위는 미국 해군장교 1명, 통신병 두 명과 함께 JMS-302정에 승선했다. 백두산함, YMS-510정, JMS-301정, JMS-306, JMS-310정 등도 함께했다.
  
  반석동 해안의 인천기계제작소가 상륙지점으로 결정된 것은 김종기 소령이 제1차 인천상륙작전 당시 이곳에 상륙해서 지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때 이곳은 적색해안(Red Beach)이라고 불렸다.
  
  오후 6시부터 미국과 영국 해군 함정이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동시에 상륙부대는 목적한 지점에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김종기 소령은 특공대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적지에 있다. 함포는 우리가 작전하는 이곳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돌아가려 해도 보다시피 우리를 싣고 온 배는 이미 떠나고 없다. 나를 믿고 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해군 병사인 너희들은 육전(陸戰)을 위해 훈련할 여가도 없고, 작전에 대해 설명할 여유도 없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헤어져 각자 진격을 개시, 21시까지 이미 지시한 대로 인천기상대 고지에 집합하라. 21시까지 집합하지 않는 사람은 전사자로 간주한다.”


이들이 상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덕적도에서 출발한 해병대 병력 100명도 같은 지점에 상륙했다. 월미도와 인천역 쪽에서 적탄이 날아왔다. 5개 소대로 편성된 이들 병력은 대부대가 상륙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대대 앞으로!” “중대 앞으로!”라고 외치며 목적지인 기상대 고지를 향해 돌진했다. 그날 밤 9시, 해병 3개 소대는 고지 서쪽에서, 해군 수병 2개 소대는 고지 북쪽에서 공격을 가했다. 소총, 따발총, 경기관총을 쏘며 대항하던 적은 얼마 후 시청방향으로 후퇴했다. 포로가 된 적을 심문했더니 “본 병력은 관악산으로 이동했고, 남아 있던 소규모 경비병력은 함포사격이 시작되자 대규모 부대가 상륙한 걸로 착각하고 도주했다”고 했다.
  
  부대원들이 기상대 고지에 집결하기 시작하자, 김종기 소령은 불을 피우고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게 했다. 드디어 모든 대원들이 기상대 고지에 집결했다. 김종기 소령은 백두산 함장 노명호 소령과 헬레나 함장에게 발광(發光)신호를 보냈다. “특공대는 21시 기상대 고지를 점령함. 확인된 적군 전사 11명. 아군 피해 없음.”
  
  김종기 소령은 적의 저항이 경미한 것을 보고, 내친김에 인천시청까지 점령하기로 했다. 그날 밤 11시, 1개 분대 병력이 인천시청을 점령했다. 이들은 시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와 스탈린·김일성의 사진을 뜯어내 짓밟아 버렸다. 김종기 소령은 시청에 본부를 설치했다.







다음 날인 2월 11일 오전 6시 특공대는 월미도로 진격했다. 저항은 없었다. 이들은 남쪽 능선에서 적의 야포 8문을, 동남쪽 중턱에서는 고장 난 적 전차(戰車) 한 대를 노획했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701함(백두산함) 승조원들 중에 손재주가 좋은 병사가 있어서 전차 엔진을 수리, 페인트로 차체에 701이라고 숫자를 적은 후 몰고 다녔다”고 했다. 이 전차는 작전이 종료된 후 다른 전리품들과 함께 부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인천에 들어온 영국 해병대가 밤 사이에 가져가 버렸다. 백두산함의 노명호 소령, 김종기 소령이 영국군 사령부에 항의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이거 크롬웰 전차 긴빠이 그 얘긴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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