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10일 경 낙동강 서측 전선임.
국군 두 개 사단이 간당간당 싸우고 있는 북측 전선에 비해서 서측 전선은 화력과 인원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음.
그래서 워커장군이 지금 같은 수세를 바꿔보려고 역습을 준비하는데, 마산에 있던 주저항선을 사전-진주까지 밀어내려고 시도함.
25사단에 해병 1여단까지 해서 2만 5천 명의 병력을 갖고 밀어붙이는데
어라?
6사단장 방호산 이 또라이가 피하지 않고 맞불을 놔버림.
참고로 북괴군 6사단 병력은 다 해봐야 7천 명 정도.
(왜 2개 사단 병력을 상대로 맞불을 놨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음)
다행히 함재기와 함포사격 덕분에 고성 부근까지 밀고 감. 덕분에 사천과 진주로 향하는 주요 도로를 확보함.
해병대 5여단은 고성까지, 25사단은 판송리와 진주고개 앞까지 밀고감.
문제는 여기부터인데 저 주공 도로를 중심으로 촉수질을 해버려서 대열이 길게 늘어져버림.
아마 5여단의 탱크를 앞세워서 갔기 때문일거임.
포병대랑 연대본부쪽에서 25사단장에게 '북괴군 대부대가 근처에 있다'고 보고를 계속 올렸지만
이미 도로를 확보한 상황이었고, 매복 병력이 아측 병력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 현 위치를 고수하라고 지시함.
아측 부대이동에서 허점을 발견한 북괴군 6사단이 놓치지 않고 봉암리 산골에서 후방의 연대본부랑 포병대를 공격함.
북괴군의 이 공격으로 2개 포병대대가 그냥 날아가버림. 연대본부만 간신히 탈출해 마산으로 합류.
미국은 수원-오산-대전에서 연패한 뒤에도 북괴가 기동전과 게릴라전에 능숙하다는 걸 쉽게 믿으려 들지 않았음.
국방부 전사에서는 그래도 그 덕에 마산은 지켰잖아, 라고 정신승리하고 있지만 그냥 눌러 앉아 있었으면 2개 대대가 날아갈 일도 없었겠지.
저때 날아간 155미리 곡사포가 20대 남짓임. 차라리 저럴 거면 사단 한 개만 다부동에 보냈어도 영천까지 뚫리는 일은 없었을 거.
참고로 6사단은 나중에 101땅끄사단 병력에 강제징집된 애들까지 2천명을 추가지원받음.
우리쪽만 쓸데없이 뻘짓하다 2개 사단 털린 상태에서 북괴의 9월 공세를 온몸으로 맞이함.
워커 저양반 저 삽질 하나로 진짜 다 망할뻔.
함재기랑 함포가 바다에서 엄호 안해줬으면 시발 을숙도까지 쳐 밀렸을수도 있었음.
이야.. - dc App
조금 헷갈리는데 이동중에 공격받아서 발렸다는거임?
워커가 사천-진주 라인까지 밀고 나가려고 2개 사단을 끌고 공격. 근데 도로 중심의 기동전을 펼쳤고, 심지어 저 산동네에서 촉수질까지 시전함. 덕분에 대열이 길게 늘어져버림. 포병대대에서 여러차례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25사단장은 도로 다 장악했으니 별일 없을거라고 현 위지 고수하라고 함. 북괴군이 이걸 놓치지 않고 공격함. 포병대대 2개 그냥 날아가버림.
장교들은 진짜 엘리트들로 채워야 하는 이유
엘리트로 채우는 게 좋긴한데..일단 뭐든 머리가 좋아야 한다. 저건 워커의 삽질도 삽질이지만 방호산의 지휘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투였음.
엘리트라고 하면 보통 지능, 능력이 좋은애들 말하지 않나? 우리가 뭐 영국처럼 귀족이 남아있는것도 아닌데. 내가 말한건 그런의미였음. 문제는 별들이 사고치는거 내역들 보면 능지 박살나서 사리분별 안되는 놈들이 별 여러개 달았던데 기대는 안하는게 좋을듯 ㅋㅋ
이거 하나로 ㅋ 워커를 폄하하다니 ㅋㅋㅋㅋㅋ
누가보면 워커가 낙하산 전쟁무경험 장교인줄 ㅋㅋ 패튼 휘하서 유령군단장으로 불리며 기동전한 양반인데 이것도 미군이 다 이기는 우위서 얻은 전공이라고 까내릴듯
그치그치. 패튼 아래서 기동전의 귀재로 불린 양반이지. 근데 상대는 게릴라전만 20년 한 놈들. 결국 산골에서 매복에 털렸잖아.
판송ㄴ 반성 ㅋㅋ
그래서 저마을사람들은 저 위치에 미군 유골이 60년대이후에도 조금만 풀숲으슥하면 발견됐다더라
국방부 전사는 보면 볼수록 참 특히 조심해서 봐야하는 사료같음
그치. 특히 지리산지구 빨치산토벌 파트는 2차 3차 크로스체킹 해야함.
그런 당신에게 워커힐 호텔
방호산 진짜 잘싸우던데 연구자료 같은게 있으면 좋을듯
솔직히 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
방호산이 게릴라전 주특기라 기만하고 허를 찔렀던 거지 워커 장군 판단이 틀린건 아니라 생각.. - dc App
맞다 후대 사람은 정보를 다 아는 시점과 당시 시점이랑은 차이가 있지 이걸 인종주의니 삽질이니 까내릴순없음
워커가 자기가 기록으로 이랬음이라고 남긴것도 아닌데 뇌내결론으로 평가질 하는 군붕이들 많이 보이네
허를 찔린 장군은 틀린 게 아니라는 논리도 재미있네. 압도적인 전력가지고도 개쳐맞고 물러났으면 존나 틀린거지. 그런 생각가지고 나중에 38선 이북으로 러쉬하다가 1.4후퇴 당한거지.
수세에서 뚫으려는 시도였고 어쨌든 후방 화력 지원 받으면서 원복하면서 방어 했잖아. 무지성 돌격하는거랑 같음? 패장은 말이 없다지만 상대가 설마 소수병력으로 개돌하진 않을 거라 믿고 상황을 낙관했던거고 상대는 그걸 노렸고 어쨌든 당황했지만 막아낸거고. - dc App
전방아군의 보고가 있었음에도 자기생각을 고집했으면 판단 클린거지 이게 당시와 현대사이에 딱히 평이 다를 이유가 있나
단지 다른 졸장들과 워커와의 차이라면 워커는 자기가 판단미스로 똥싸지른거 스스로 수습했다는거고
그 전방 정보 무시했단 레퍼 좀 가져와라 그렇게 던지면 누가 졸장 흉장 안되냐
보고가 있었지만 판단한거로 나오고 그것도 워커가 아닌 워커 휘하 사단장이 판단한걸로 적혀있는데 워커가 더 상급 지휘관인건 알고있지? 25사단장은 조셉 브래들리 군단장은 1군단의 윌리엄 킨 거쳐서 8군 사령관 워커까지 되는데 결과론과 비약만 보고 그렇게 몰면 어느 지휘관이 책임자몰이 안당하겠냐 ㅋㅋㅋ
북괴 6사단 관련 정보를 상급부대에 안 주고 뭉갠 건 25사단장이었음. 그리고 서측 방어선에서 공세를 담당한 건 킨이었고. 정확히는 통신이 안 됐고 킨에게 보고해야할 적정을 25사단장이 그냥 자의적으로 판단한 거임. 가장 큰 책임은 25사단장에게 있지. 허나 그 서측 방어선 확장을 무리하게 계획하고 작전개념을 세운 건 워커였음.
저때까지만해도 백인우월주의와 유색인종의 멸시같은게 미군포함 서방국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강했었는데, 그게 적군을 얕보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지 않나 싶음. 그리고, 그것때문에 크게 당한게 어찌보면 1.4후퇴였던거고...
그깟 식민지군이라는 미국의 시각을 잘 보여주네
6사단이 국공내전출신 미친놈들이긴 했지 워커는 일본군 생각하고 화력과 미해병믿었는데 역으로 털리고 방어선 재편한거
저때 전사한 미군 전우들을 추모하려고 생존 미군이 수십년간 해마다 함안 여항산을 방문하기도 했지. - dc App
꺼라위키 보니까 대단한 놈이네 ㄷㄷ 근데 팽당함 ㅠ
이 작전에서 미스한 것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워커를 무슨 졸장 취급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걸...인천상륙작전 빼면 삽질한 건 맥아더랑 그 측근 알몬드가 더 심하면 심했는데 ㅋ
비판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마지막 줄이 좀 심했네 워커 저 양반 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워커 장군 아니엇으면 후퇴고 뭐고 저어기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스팸 까먹고 있었을 국가의 국민들이 저렇게 말하면 안되지
내말이 그말 ㅋ 모랄빵 난 미군이랑 한국군 데리고 수시로 구멍 뚫리는 곳에 병력 파견하면서 막아낸 양반을 작전 미스 하나로 무슨 개졸장 취급을 ㅋㅋㅋㅋ 거기에 맥아더가 워커 싫어하는 거 플러스 인천상륙작전 준비한다고 지원도 미흡했었구만 ㅋ
군갤의 평가는 냉혹하지 모두 독수공방 독학으로 군사학을 익힌 재야학자들이자너 ㅋㅋ
난 워커를 졸장이라고 취급한 적 없음. 다만 무너져가는 북측 전선 냅두고 서측에서 사단 두 개씩 빼서 공세작전 진행한 건 무모했다는 거임. 원래는 본토에서 추가 상륙하는 해병 1개 사단 데리고 논산까지 밀어버리려 했음. 그 이유로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는데 워커가 그냥 강행한 거. 상황이 상황인지라 약간의 판단미스도 치명적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 마산에서 빠르게 방어선 재구축하고 공해군 지원 받은 게 천운이었음. 그때 북쪽에서는 1사단이 다부동 하나 붙잡고 죽네사네 하고 있었음.
사실 그 지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건데, 그때는 이미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플랜이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었음. 평소처럼 기동타격대 보내서 그때 그때 위기 넘기고 방어전 펼치다가 상륙 시작하면 호응해서 북진하면 되는 건데, 그 전에 왜 무리하게 방어선을 확장하려 했을까, 이게 확인이 잘 안됨.
판단 미스 한번 했다고 저놈 때문에 망할뻔 했다고 폄하 하네ㅋㅋ - dc App
단순히 무리하게 촉수질하다 뚫린 게 아니라 대구가 뚫리게 생겼으니 반격중이던 25사단 철수시켜서 그쪽 지원하려다 전선에 구멍이 난 거였을 텐데 5연대전투단도 배속해제 돼서 철수명령 받았는데 통신 문제로 순서가 꼬여서 보병들만 먼저 철수하고 포병만 남아버리는 찐빠가 나버렸지
내가 알기론 대구 쪽에 추가 지원된 병력은 없었음. 통신 문제로 문제가 생긴 건 25사단이었고 6사단을 최초 발견한 정보가 이 때문에 킨에게 전달이 제대로 안 됐음. 그때 봉암리에서 당한 거.
찾아보니 대구로 25사단 예하부대를 돌린 게 아니라 25사단 예비대였던 27연대가 창녕 쪽의 24사단 증원하려고 돌려진 거였네 하여튼 무리하게 진격하다 털렸다기 본다는 25사단이 철수와 전선재조정 명령 수행을 개판으로 했던 게 문제였던 거 같음
나는 생각이 좀 다른 게 워커가 처음에 그리던 그림은 부산에 추가 상륙하는 부대들과 논산까지 밀고 가는 거였음. 그게 여의치 않으니 사천-진주 라인까지만 밀자는 거였는데, 결론적으로 기존의 주저항선 자체가 이 그림때문에 위태로워짐. 27연대가 왜 창녕으로 갔을까? 25사단이 봉암리에서 털리고 있을 때 북괴 6사단 13연대가 창녕이랑 함안에서 뒤통수를 치고 있었거든. 그 공세작전으로 서측 전선 대오가 다 흐트러졌음. 그냥 25사단이 제일 약한 고리였던 거지.
그건 사후에 다 아는 입장에서 내는 결과론적인 말이고, 당장 이쪽에 적이 적다면 아군 반격 막으려고 주공 방면에 투입된 병력 돌려서 위험한 쪽에 가해질 압력 줄어들 걸 생각하고 충분히 한 번 찔러볼 수야 있지
그리고 5연대 지원부대가 털린 건 무리한 반격과는 별개로 이미 12일 오후에 철수명령 떨어진 상태에서 25사단장이 5연대의 빠른 야간철수 계획을 씹고 다음날 대낮에 철수하란 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된 거라 25사단장이 까이는 게 맞음 만약 12일 예정대로 밤에 철수했는데 북한군에 포위당해 두들겨 맞았으면 워커 책임이 컸겠지만, 철수 지연시킨 게 워커는 아니니
낙동강 지켜낸거엔 워커 지분이 큰데 공세 한번 실패했다고 졸장에 가짜 엘리트에 아주 병신으로 만들어버리네 ㅋㅋ
책임소재도 명확히해라 25사단장은 조셉 브래들리고 1군단장은 윌리엄 킨 워커는 8군 사령관인데 왜 워커까지 바로 올라가서 이런 평가를 받냐 ㅋㅋㅋㅋ
니 말대로 야전 지휘는 킨이 했음. 현장 적정 판단은 25사단장이 했고. 하지만 공세작전 설계는 워커가 했음. 워커를 빠가취급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상황인만큼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임. 북괴 9월 공세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판단미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망할 수 있었음. 워커가 미 의회에서 조롱받았음에도 한국 수호 의지를 밝히고 실행에 옮긴 건 분명 대단한 일임. 다만 저 판단은 아쉬웠음.
인민군 6사단은 팔로군 출신이 많아서 게릴라 전에 능숙했다는데 특히 박격포 스킬이 만땅이라 박격포탄에 눈이 달린거 처럼 쏴서 진주 전투에서 국군이 존나 무서워했다고함
워커장군이 Stand or die 하면서 낙동강 버텨준 덕에 수령님 사진에 문안인사 안하면서 사는 주제에 작전하나 실패한걸로 무슨 임진왜란 신립 취급을 하냐
방호산이랑 쟤들 6사단이 그렇게 잘 싸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