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 폭격'은 1942년 3월 옥스퍼드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포웰이 제출한 보고서가 발단이었는데 '독일이 투하한 폭탄 1톤에 대하여 100-200명의 시민이 집을 잃었으며, 이것을 비율로 환산하면 영국 폭격기 1대가 연 14회까지 출격을 하면 4,000-8,000명의 독일 시민이 “집을 잃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독일인,구 중 약 2,200만 명이 58개 주요 도시에 집중해 있으므로 이 도시들이 1년 반 이상에 걸쳐 지역 폭격을 받게 되면 영국 공군은 독일 인,구의 1/3을 집이 없는 상태로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독일 국민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이내 포웰은 이 보고서가 과장됨을 알고 추후에 수정하였으나 처칠은 이 수정된 보고서가 제출되기 전에 아서 해리스를 비롯한 영국 폭격기대에 '도시 폭격'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뤼베크 공습과 쾰른 공습에서 괜찮은 성과를 보이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은 사실상 목표지역 안의 1, 2개 특정목표를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밀집지역에 전력을 집중하라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목표에 대한 인식도를 높이고 목표인 거주지역 파괴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탑재 폭탄의 50%를 방화를 위한 소이탄으로 충당했다.





인권 운운하는 것만 없으면 민간인 살상 그자체를 최중요 목표로 삼고 바로 쏟아붓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