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합의된 군사 분할선인 북위 38도선으로 인해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는데 38도선이 통과하는 여러 시군들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됨

-> 서쪽부터 동쪽으로 옹진군, 벽성군, 해주시, 연백군, 개풍군, 장단군, 연천군, 포천군, 가평군, 춘천시, 화천군, 인제군, 양양군


경기도 포천도 38도선이 포천의 중북부를 관통하였으며 그로 인해 포천은 대한민국령, 북한령으로 갈라짐


아래 지도는 현재의 포천시 전체 지도임

-> 현재 포천 전체의 최북단인 관인면이 1945년 당시에는 포천이 아닌 연천군 소속이었으며 (한탄강 이북으로) 반면 현재 연천군에 소속되어 있는 청산면이 포천군 소속이었음

-> 1945년 당시의 연천군과 포천군은 한탄강을 경계로 하여 이루어졌음


이 중 38도선 이남의 면적이 468.95 km^2이며 38도선 이북의 면적이 358.01km^2로 38도선 이북이 전체의 43.3%에 해당

-> 즉 인11구가 많은 소흘읍 및 포천 중심가는 38도선 이남에 있으나 생각보다 포천의 상당 부분은 38도선 이북에 많이 위치


포천의 38도선 이북 지역은 영평으로 조선시대부터 불렸으며 실제 영평군이라는 별도의 행정구역이 있었음.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이 영평군은 포천군에 합쳐짐. 


하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해 포천의 38도선 이북 지역은 소련군정, 북한의 영토로 편입되는데 이 때 소련군정은 38도선 이북에 영평군을 따로 신설하여 과거의 영평군이 다시 부활함


38도선 이북에 해당되는 포천의 행정구역은 아래와 같음

-> 청산면과 창수면의 각각 2/3, 영중면의 약 절반, 일동면의 북쪽 일부, 이동면의 대부분 (아주 일부가 38선 이남), 영북면 전체

-> 관인면은 전체가 38선 이북에 속하며 이 당시 연천군 소속이었음


대한민국에서는 38도선 이남의 이동면 지역을 일동면에 편입시켰으며 북한에서는 38도선 이북의 일동면 지역을 이동면에 편입시켰음. 그리고 나머지 면들은 남북에서 모두 그대로 유지하였음.


소련군정은 38도선 이북의 포천군을 영평군으로 별도 신설하여 독립시켰으며 이웃의 연천군 및 가평군 북면 적목리 일부와 함께 북한 강원도에 편입시켰음 (38도선 이북의 경기도를 존치하기에는 면적이 너무 작음)

-> 참고로 38도선 이북의 경기도 개풍군, 장단군은 합쳐 장풍군을 신설하고 황해도로 편입시킴


그러나 이 영평군은 곧 머지않아 소멸되는데 이는 1946년 12월에 영평군 중 청산면과 창수면을 북한 강원도 련천군에, 나머지 영북면, 영중면, 일동면, 이동면 지역을 북한 강원도 철원군에 편입시킴. 이로 인해 북한에서 포천, 영평은 행정구역에서 사라지게 됨.


아래는 소련군정 시기 새로 개편된 후 38도선 이북의 연천군 및 철원군의 지도임. (연천군은 두음 법칙을 인정 안하는 북한의 특성상 련천군으로 표기되어 있음)

-> 이 당시 철원군은 관인면으로 인해 가운데가 움푹 들어와 홀쭉한 모양으로 형성됨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군사분계선이 기존 북위 38도선 대신 당시 서로의 접촉선을 기준으로 형성됨 


이로 인해 38도선 이북의 포천군은 전부 대한민국이 수복하게 됨. 그러나 이들 지역을 바로 기존의 포천군에 통합시키지 않았고 잠시 대한민국이 아닌 유엔군에 의한 군정을 실시하게 됨.


유엔군은 기존 38도선 이북의 포천인 영평군 일대에 강원도 김화군으로 편입되었던 강원도 춘성군 사내면을 합쳐 북포천군을 신설하였음. (사내면에 같이 편입되었던 가평군 북면 적목리 지역은 북포천군에 들어오지 않고 가평군으로 바로 환원된 것으로 추정됨)


유엔군은 군정이 끝나고 행정권을 결국 대한민국에 이양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하여 38도선 이북의 북포천군은 다시 행정구역 개편이 일어나게 됨.

-> 김화군에 편입되었던 구 춘성군 사내면은 강원도 화천군으로 편입

-> 나머지 북포천군의 면들은 모두 기존의 경기도 포천군으로 편입.

-> 38도선 이북에서 이동면으로 편입된 구 일동면 지역을 다시 복귀

-> 38도선 이남에서 일동면으로 편입된 구 이동면 지역을 다시 복귀


이렇게 되어 1945년 광복 당시의 경기도 포천군 행정구역이 모두 원래대로 복귀하게 됨.


그 후 1983년 다시 행정구역의 일부 변경이 일어나게 됨

-> 청산면을 연천군으로 편입

-> 단 청산면의 삼정, 갈월, 금동, 덕둔리 4개는 신북면으로 편입

-> 연천군에 소속되어 있던 관인면을 포천군으로 편입

(한탄강 이북이나 지장산, 종자산 등에 의해 막혀 다른 연천군 지역과 떨어진 월경지 문제가 있었음)


이렇게 되어 현재의 경기도 포천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었으며 포천군은 점점 인11구가 증가하였고 결국 군에서 시로 2003년 10월 18일에 승격되었음


이 38도선 이북의 포천 지역을 한국전쟁 때 수복한 것이 서울의 방어를 훨씬 튼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큼

-> 포천은 지형 상 남쪽이 대체로 고도가 낮고 북쪽으로 갈수록 산지의 높이가 더 높아짐 (광덕산, 명성산, 백운산, 각흘산, 종자산, 지장봉 등 생각하시면 됨)

-> 서울로 직통하는 남북 축선의 43번 국도 및 47번 국도가 뻗어 있는데 이 통로들은 북한군이 서울로 남침하는 가장 편리한 루트

-> 38도선 분단 시 북한 쪽이 더 고도가 높아 북한이 공격과 방어에 훨씬 유리하며 철의 삼각지대에 병력과 물자를 집결한 후 여러 남북 축 통로를 활용해 서울로 남침할 수 있으며 임진강 중류 및 한탄강 유역을 모두 북한이 장악하고 서울과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기 때문에 서울 방어가 지금에 비해 몇 배 이상 힘들어짐

-> 실제 한국전쟁 극초반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된 건 개성 축선이 아닌 연천, 포천 축선에서 인민군이 통로를 따라 급속히 남하해 구멍이 뚫린 것이 원인. 즉 38도선 기준으로는 연천, 포천 축선에서 서울 방어가 거의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