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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독립국이었던 한국이 군대를 창설하면서, 육본 직할에 독립기갑연대라고 불리는 기갑부대가 존재했음. 이들은 현재 기계화보병사단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독립기갑연대 휘하의 3개 대대 중 1개 대대가 기병대대였음.



기병대대엔 황푸 군관학교 기병과 출신이던 장철부(본명 김병원) 중령을 대대장으로 한 기병대대 기병 600여명이 편제되어 있었고, 이 기병대는 전쟁 초반 국군에게 있어서 최정예부대로서 편제가 사라질때까지 북한군에 대해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다녔음



대표적인 전공은 북한군에게 포위되었던 미 63 포병대대 예하 병력들 및 미 24사단 34연대 3대대를 기병돌격으로 돌파하여 구출해 낸다던가, 기병의 기동력을 이용하여 북한군을 타격하고 지연전 과정에서 북한군 보병부대들을 곳곳에서 수 차례 궤멸시키는 등의 업적이 있음.


장철부 중령 지휘하의 기병대대는 단순히 기병 돌격을 감행했을 뿐 아니라, 말의 기동능력을 이용하여 각종 중화기를 운반, 이를 전투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술에 따라 하마보병으로도 운용되는 등 굉장히 유연한 전술을 전쟁 초반 내내 보여주고 다녔음







다만 이와 별개로 밀리는 전쟁통에 기병에 들어가는 말과 훈련 인력을 제대로 보충하기는 어려웠고, 이 상황에서 계속된 지연전에 기병대대는 점차 소모되기 시작했음.



결국 50년 8월 4일 장철부 중령은 적 12사단 766여단과 교전 도중 훨씬 많은 적 병력에 포위된 상태가 되었음. 그리고 그는 교전을 이어나가던 도중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권총으로 자결했음



당시 적 766여단장은 독립운동을 같이 하다 북한군으로 투신했던 옛 동지였고, 수 차례 장철부 중령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끝까지 전투에 임했다고 함. 참고로 여기서 적으로 만났던 766 여단장은 북한군 원수까지 오르는 오진우였다고 함(추가)






결국 극심한 소모율에 시달렸던 기병대대는 그의 죽음과 함께 해체되진 않았지만, 더 이상 공격적인 기병 운용을 하지 못하다가 이후에 소리소문 없이 해체되게 됨. 


그리고 그 자리는 미군이 공여한 차량 장비로 채워졌고 일반 보병부대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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