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루이스 솔로몬(Salomon)은 2차대전 시기 미군 치과의사로 임관한 인물로 사이판 전투 당시 혼자서 백여명의 일본군 상대로 맞서 싸운 인물임,
1940년 미육군 이등병으로 징집당한 솔로몬은 본디 소화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보병으로 배치될 예정이였지만 미육군 치아위생부에서 중위로 배치받음,
1942년쯤 되자 배치받은 부대는 물론 육군 전체에서 최고라는 소문을 받던 솔로몬은 제27보병사단으로 재배치되면서 대위로 진급함,
(벤자민 루이스 솔로몬 대위의 초상화)
1944년 미군은 8천명의 해병대를 동원해서 마리아나 제도의 가장 중요한 섬인 사이판 섬 공략전을 준비하고 있었음, 솔로몬 대위도 그중 하나로,
본디 치과의사라 전선에 배치될 이유가 없었지만 자원한 뒤 대대 군의관으로 재배치됨, 당시 사이판 섬에서는 일본군의 저항이 거세면서,
미군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음, 7월 4일, 사이판 전투가 끝나갈 무렵 솔로몬 대위는 전선 끝자락의 야전 의무소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었음,
5천명의 일본군들은 전원 착검한 상태로 비교적 방어상태가 약했던 야전 의무소로 반자이 돌격을 시작했음,
그럼에도 최전선까지 불과 45m 남은 상황에서도 솔로몬 대위는 끝가지 남아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데 집중하고 있었음,
하지만 그럼에도 기어들어온 일부 일본군들이 힘없이 누워있는 부상병들을 총검으로 찌르고 소총으로 쏘는걸 보자 솔로몬 대위는 행동에 나섬,
솔로몬 대위는 바로 옆의 M1 개런드 소총을 들고 총검으로 부상병을 찌르던 일본군들을 사살함, 이를 보고 돌격하던 2명의 일본군도 사살했음,
일본군을 이를 보자 솔로몬 대위가 있던 텐트 주변을 포위하면서 4명이 기어들어옴, 첫번째 일본군이 총검을 들고 접근하자 발로 걷어찬뒤 소총으로 사살함,
그와 동시에 뒤에서 기어들어오던 일본군을 보자 바로 소총으로 사살했음, 그 직후 뒤에서 들어온 일본군이 기습하자,
솔로몬 대위는 떨어진 총검을 사용해서 침입한 일본군을 찔러 사살했음, 마지막으로 들어온 일본군을 쏘려는 순간 총알이 떨어지자,
개머리판으로 그 일본군 병사의 복부를 가격함, 쓰러진 병사는 이후 근처 부상병이 M1911 권총으로 확인사살함,
솔로몬 대위는 이후 부상병들을 대피시키는동안 버려진 M1917 중기관총을 잡은 상태로 후방에 남음,
7월 7일 다시 지역을 점령한 미군이 발견한 모습은 솔로몬 대위의 시체와 98구의 일본군 시체였음,
솔로몬 대위는 죽을때까지 총 24발의 총알을 맞고 쓰러진뒤 죽은 뒤에도 총합 76발의 총상과 총검으로 수십회 찔려 시체가 거덜거덜한 상태로 발견됨,
하지만 당시 제27보병사단장이던 조지 그리너 소장은 솔로몬 대위가 의무관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명예훈장 추천을 거부함,
이후 1951년 에드문드 러브 대위가 다시 추천하지만 이미 2차대전 명예훈장 추천기간이 지났다는 점을 이유로 거부함,
1969년에는 또다시 중장 할 제닝스 육군 의무감이 명예훈장을 추천하고 1970년에도 육군부 장관이던 스텐리 리소르도 추천함,
이번엔 국방장관선에서 거부됨, 마지막으로 1998년 로버트 웨스트 박사와 브래드 셔면 하원의원,
치아위생부장이던 패트릭 스컬리 소장의 지원에 힘입어 2002년 5월 아들 부시 대통령이 명예훈장을 추서함.
전투중에 죽어도 의무관은 명예훈장 못 받음? 흑인한테도 주면서 의외로 존나 꼰대네
원래 의무병은 전투하면 안 되니까
굴라그 출처는 엿바꿔 먹음?
출처(영문 위키피디아) - dc App
이건 전해진 내용을 군갤에서 읽는시점이고 실제로 조사해봤더니 아니면 실제 정황상 훈장주기 좀 그랬던거 아님?
군의관이 총들고 싸우는거 자체가 제네바 조약 위반이라서 좀 그랬음 - dc App
근데 아무리 군의관 위생병이 비무장이여도 일본군이 환자를 학살하는 저런 상황에서는 환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기를 드는게 허용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