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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포로들한테 갈 식량 대부분을 자기들이 독점하거나 적십자사에서 오는 보급품들도 강탈함,
언브로큰의 실제 주인공인 미육군항공대 중위 루이스 잠페리니는 49일간의 표류후 처음으로 도착한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식사를 책에 적음,
식사라곤 벽에 던져진 작은 건빵 쪼가리 2개와 맹물차 한모금이 전부였으며 옆방에 갇힌 필립스는 맹물차마저 받지 못했다고 전함,
한번은 목이 너무 말라 경비병한테 하소연했더니 뜨거운 물을 컵에 받아온 다음(당시는 여름이였음) 줄려는 척하면서 얼굴에 뿌렸다고 말함,
그럼에도 갈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이렇게 3~4번 맞은 결과 얼굴은 물집투성이가 되었지만 목이 마른건 그나마 나아짐,
일본군 포로수용소인 오푸나에서의 밥은 시든 채소와 상한 쌀로 만든 죽이 전부였으며 이마저도 많이 제공되지 못함,
하루 겨우 500칼로리만 제공되는 이 수용소의 포로들은 강제노역과 각기병과 같은 질병에 시달리면서 죽어나감,
오푸나 수용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포로들에게 제공될 식량을 빼돌렸는데 이중 오푸나의 조리사가 가장 많이 빼돌림,
조리사는 매달마다 도착하는 식재료를 포로들이 잘볼수 있는곳에서 돈을 받고 민간업자한테 빼돌리면서 수익을 벌어들였음,
당시 오푸나 수용소 최선임 포로였던 대령 아서 마허와 존 피츠제럴드는 이에 항의했지만 수용소장은 오히려 포로들의 노동 강도를 높임,
이와 동시에 포로들에겐 매우 중독적인 담배가 제공되었는데 이는 포로들의 배고픔을 잊게 만들려는 방법중 하나였음,
한번은 노르웨이 해군 소속 포로이던 안톤 민사스가 쓰러지자 일본군 군의관들은 민사스한테 독극물을 주사해서 죽였음,
또한 루이스와 필립스는 오푸나로 오기 전, 일본군 군의관들이 자행한 인체실험의 피실험자가 되기도 하였음,
그들은 군의관들이 동맥에 이상한 탁한 엑체(덜익은 코코넛 과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함)을 주사당한뒤 심한 발진과 고열을 겪음,
전쟁 기간동안 수만명이 이와 같은 인체실험으로 사망했다는걸 가만하면 이 2명은 매우 운이 좋았던 부류였음,
오푸나 수용소에서 오모리 수용소로 이감된 루이스는 포로들이 "새"라 부르는 어느 일본군 병장을 만남,
무츠히로 와타나베는 본디 엘리트중의 엘리트였지만 장교 임관에 실패하고 포로 수용소 징계관으로 사실상의 좌천을 당한 인물이였음,
와타나베는 이에 관한 분노를 당연히 포로들에게 풀었고 포로들은 와타나베의 히스테리적이고 가학성애적인 폭행의 피해자가 되었음,
특히 루이스 잠페리니는 와타나베의 먹잇감이 되어 보일때마다 총이나 곤봉으로 구타당하거나 쇠로 만든 버클로 관자놀이를 구타당했음,
일본군은 식민지의 주민들과 포로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는데 그중 140,000명에 달하던 연합국 포로중 25%가 강제 노역으로 사망함,
100,000명에 달하는 민간인 노무자들과 연합군 포로들이 버마 지역을 관통하는 기찻길을 짓기 위해 동원되어 사망함,
이중 27,000명의 미군 포로중 40%가 전쟁기간중 사망했음,
버마와 태국 지역을 관통하는 총 415km 구간의 기찻길을 놓기 위해 일본군들을 포로들과 노무자들을 밤낮으로 동원했음,
현장은 매우 덥고, 습했으며 포로들은 이질을 비롯한 콜레라, 궤양, 말라리아등의 질병의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죽었음,
일본군 군의관들은 극히 드물게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그나마도 약이 부족해 방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음,
일부 운좋은 환자들은 후방으로 후송되었지만 대부분은 방치된 상태로 의사가 오기를 기대하며 죽었음,
탈출한 포로들은 다시 잡히면 확실한 죽음이 예정되었기에 포로들은 대부분 탈출을 포기했음,
일부 탈출한 포로들이 다시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면 포로들은 잡힌 포로에게 할수 있는것이 없었음,
오사카의 사쿠라지마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포로는 다시 잡힌 이후 군의관한테 동맥으로 청산가리를 주입당해 살해당했음,
같은 수용소에선 탈출을 위해 도구를 모으다 적발된 포로는 같은 포로들이 간수들이 협박하는 가운데 칼로 찔려 죽었음,
수용소 자체도 시설이 열악한 경우가 많았음, 대부분의 수용소는 수개월 안에 급조된 경우가 대다수로 제대로된 시설을 갖춘곳은 손에 꼽았음,
수용소의 의무실은 매우 열악했으며 이를 담당할 의사나 약품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심하면 침대만 갖추어진 곳도 있었음,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실한 식사로 연명하던 포로들은 각기병에 시달려 죽거나 실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음,
적십자사는 이를 알고 포로수용소로 구호품들을 보냈지만 대부분 위에 적힌대고 탈취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적십자사에서도 이를 알고 직원을 보내 포로들한테 구호품을 받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거의 모두 일본군이 조작한 결과만을 받았음,
처벌은 대부분 포로들한테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집행되었으며 대다수의 경우 적절한 시행 방법도 따르지 않았음,
포로들은 이와 같은 포로수용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일본군의 차량 부족이 큰 원인이였음,
바탄 죽음의 행군은 물론 1942년의 티모르에서는 네덜란드군 포로들이 이질과 말라리아에 시달리는 동안 쿠2팡의 포로수용소까지 행군으로 움직였으며,
1945년 6월 산다칸 포로수용소는 이미 2,200명중 1,200명이 죽어 천여명만 남은 상태에서 260km 떨어진 라나우까지 산맥을 넘으며 행군함,
천여명의 포로중 살아남은 포로들은 겨우 6명이였으며 행군중 쓰러지는 포로는 현장에서 처형되거나 일본군의 식량으로 쓰였음,
(전후 일본군 헌병대 군조를 심문하는 호주군들, 이 헌병은 후에 호주군 포로 2명과 민간인 5명을 쏴죽였다고 자백함)
(사진의 호주군 3명이 유일한 6명의 생존자중 하나임)
(레오나드 시플렛 호주군 하사가 참수당하기 직전 찍힌 사진, 참수한 당사자인 야수노 치카노는 종전 직전 자살했다는 설과 교수형 당했다는 설이 있음)
전체주의 집단들은 하는 짓이 왜 꼭 저 모양들이냐..
전체주의 집단이 아니라 일본&독일이 압도적 원탑인데? 이테리는 이것도 못할망큼 개씹병신들이였다
할 능력이 있었어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기상천외한 개짓거리를 하진 않았을 것 같음
붙잡아서 패고 괴롭히는건 능력문제가 아닌데 북괴 중공군 베트민은 무슨 대단히 능력이 출중해서 포로학대한게 아니잖아
ㄴㄴㄴ이태리도 마을 사람들 다 학살하고 마을을 물리적으로 지워버리는 식으로 학살했는데 뭔 소리임
이탈리아 또한 전쟁 범죄 행위를 많이 저지르긴 하였으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라 2차대전 도중의 추축국임에도 점령을 '해방' 취급할 수 있는 국가였음. 그만큼 타 추축국에 비해 전쟁범죄가 적었다고 생각함 - dc App
이태리도 아프리카 점령지나 식민지에서 독가스도 낭낭하게 뿌리고 학살도 넉넉하게 했었음.... 다만 당대 열강국 인식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은 아오안이었고 이태리군이 워낙 ㅈ밥이라 다른 백인국가를 점령하고 제노사이드를 벌일 여력도 없는데다가 전체주의 광기에 빠진 독일, 일본이랑 달리 이태리인들의 의욕이 썩높지 않은것도 있었음
생체 실험을 미군 호주군 영국군 상대로도 했네...저런 군의관들 처벌은 어떻게 했는지?
이래서 파쇼새끼들은 인간 취급하면 안됨
저래서 맥아더가 욕 처먹었잖아. 생체실험 자료 넘겨받는 댓가로 사실상 사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구별을 못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