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전쟁 도중 미군은 무려 1백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호주 본토에 주둔시킴,
태평양전쟁 당시 호주의 역할은 군사적 지원뿐만 아니라 집결소, 휴식처, 혹은 재정비를 위한 지역으로 미군이 써먹었음,
그중 가장 중요했던곳은 브리스베인(Brisbane)으로 8만명에서 330,000명으로 인`구가 늘어난 도시로 또한 당시 더글라스 맥아서의 지휘본부로도 쓰였음,
브리스베인에서는 미군 PX가 들어서 미군들한테는 싼 가격으로 담배나 콜라, 술, 나일론 스타킹(??), 가공육류들을 제공했지만,
본토 호주군들한테는 이런것들을 팔지 않거나 매우 비싼가격으로 팔았음, 또한 미군 급식소에서도 술과 담배를 제공했지만,
호주군 급식소에서는 차와 음료수, 샌드위치는 제공해도 술과 담배는 제공하지 않았음,
이와 같은 이유로 호주군들은 매일 딱 2번씩 술이 제공되는 호텔로 몰려가서 술을 마시고는 또다시 다음 호텔로 넘어가는게 일상이 되었음,
또한 미군들은 위에서 말한 나일론 스타킹을 비롯해서 초콜릿 같은걸 호주 여자들한테 제공하고 그렇고 그런짓을 할수 있었지만,
본토에선 배식제가 실시되던 호주군들은 초콜릿을 비롯해서 나일론 스타킹 같은 사치품은 꿈에도 꾸지 못했음,
이와 같은 상황을 당시 미군 하사이던 빌 벤슨이 이렇게 증언했음:
"미군들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실크 스타킹과 돈이 있었죠, 그들은 이것들로 좋은시간을 보냈지만,
호주군들은 자신들이 도시의 주도권을 잃었다는거에 매우 화가 나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호주군들과 미군들의 긴장감은 크게 치솟아 치안당국은 매일 약 20번의 미군과 호주군의 싸움을 중재하는데 출동했으며,
또 한번은 미군과 호주군 사이 총격전이 벌어져 양측에서 1명에 사망자들이 나오고, 타운즈빌에선 미군 헌병한테 호주군이 총을 맞거나,
미군 한명이 호주군 3명과 시민을 찔러서 호주군 1명이 사망하고, 20명의 호주군들이 미군을 집단린치해서 1명을 병원으로 보내거나,
사건 당일 아침에도 미군 헌병이 호주군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음,
(1942년 당시 브리스베인의 미군 헌병대)
1942년 11월 26일 밤, 추수감사절을 맞아 제404통신중대 소속 제임스 R. 스타인 이병이 과음을 하고 미군 PX로 걸어가던중,
호주군 3명 앞에서 미군 헌병이던 제임스 오'설리반 이병한테 외출증이 어딨냐고 추궁을 당함,
스타인 이병이 찾기도 전에 체포당하는걸 본 호주군 3명이 욕을 하면서 내버려 두라고 하자 오'설리반은 자신의 곤봉을 들고 위협함,
그러자 호주군 3명은 바로 집단으로 오'설리반을 구타하기 시작했으며 미군 헌병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100여명의 호주군과 민간인이 구타했음,
헌병대가 도착하자 부상당한 오'설리반과 스타인을 근처 미군 PX로 후송했지만 100여명의 호주군과 민간인들이 PX를 포위하기 시작함,
(PX 맞은편의 미국 적십자사 건물, 여기도 미국 건물이란 이유로 공격을 받음)
지역 경찰이 도착했지만 숫자가 늘어나는 폭도들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는 곧 브리스베인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됨,
폭동이 일어나자 미군들은 착검한 상태로 민간인 여자들을 대피시키고, 브리스베인 소방대도 호스를 사용해서 진압을 고려했지만 포기함,
호주군 헌병들도 폭동에 동참했는데 호주군 헌병이던 상병 던캔 카폰은 오웬 기관단총 4정과 다량의 탄약, 수류탄을 포함한 트럭을 탈취하기도 함,
PX에선 미군 헌병들이 산탄총을 가지고 방어선을 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폭도들을 자극해 더욱 맹렬한 공격이 가해짐,
호주군 이병이던 에드워드 S. 웹스터가 한 헌병의 산탄총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자 그 헌병은 산탄총을 발포해 웹스터 이병을 즉사시키고 다수를 부상입힘,
낮이 되자 폭도들은 해산했지만 미군 PX를 완전히 철거시키고 미군 이병이던 조셉 호프만의 두개골을 박살냄,
27일 밤에도 500~600명의 호주군이 다시 PX를 포위하지만 이미 헌병 중대가 중무장을 하고 경비를 서고 있던 상황이라 곧 해산함,
이와중에도 미군 헌병들은 호주군이 들고온 다량의 수류탄을 압수해야했고,
맥아서의 집무실 앞에서는 20명의 미군 헌병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대기했지만 호주군 장교가 협박하자 고작 20명이였던 헌병들은 도망감,
이와 같은 헌병들의 행동으로 20명의 미군들이 구타당하는중에도 호주군 헌병들은 구경만했음, 이는 곧 호주군 고위장교가 도착하자 중재됨,
(파괴된 미군 PX를 보수하는 인부들, 28일 촬영됨)
호주군 이병이던 웹스터를 사살한 노버트 그랜트 이병은 체포되고 살인죄로 기소되지만 자가방어행위라는점이 참작되어 무죄방면됨,
6명의 호주군도 기소되었지만 단 1명만이 폭행혐의로 6개월간 수감되고 출소됨,
이와 비슷한 폭동들은 멜버른을 비롯해 수십곳의 호주와 뉴질랜드 도시에서도 일어남.
더 퍼시픽에서도 저런 대립을 살짝 묘사한 적이 있었지. 과달카날에서 개고생하고 멜버른으로 와서 쉬는데, 호주 군인들과 시비가 붙어서 주먹다짐하다가 호주군 장교가 '내가 술 한잔 살테니 화 풀게'라고 달래며 끝났음.
전사한 동료 잔 놓은거 보고 호주군 병사가 "한새끼는 벌써 뒤져서 없는듯?" 식으로 시비털다 싸움 붙는 장면이던가 ㄷㄷ
거기서 미군이 우리 아니었으면 느그들은 응디에 젓가락 꽂고 사케 쳐마셨어 개새끼들아 라고 했던 거 생각나네
진짜전투네 - dc App
다윈 공습은 잡아묵어부렀어?
이 뭔; ㅋㅋㅋㅋㅋ
돌았나 ㅋㅋㅋㅋㅋㅋ
시드니항 갑표적 공격은 침몰했어??...는 침몰했지 참
뭔가 알게 모르게 쌓인게 잇었나봐?
저렇게 차별대우 하면 개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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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베인 브리스번 브리스빅
웃지도 못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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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모르게 쌓인 앙금이 터져서 생긴 일을 한쪽이 미개해서라고 치부하네
ㅂㅅㅋㅋ
댓글 꼬라지를 보니 수준을 알겠다. ㅋㅋㅋㅋ
"내 말이 맞아" ㅇㅈㄹ ㅋㅋ 고아
그래서 80~90년대 호주에서 관광객 말고 시민으로 오래 살아보셨어요? 그때 호주 정착해서 살아본게 아니면 그 시절 호주가 미개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인터넷에서 본거로만 아는척 하는거면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국제학, 정치학, 역사학, 경제학, 인류학 5대 박사 아닌 사람이 없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문명의 붕괴 보니까 알고 지내던 호주 공장 직원이 수출하는 물건에다 가래침 뱉고 이물질 넣어놓는 버릇을 자랑했다길래 이게 뭔 소린가 했더니...
진짜 이런 틀들 어디서 이렇게 기어들어온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 걍 눈팅이나 해라. 사회생활은 가능하냐?
군기가 얼마나 개좆박았으면 이딴 일이 벌어지노 ㅋㅋ
미군이 왜 호주군을 단속함?
호주군이 미군이 미군 단속하는거 보고 빡쳐서 다굴했다잖아
스타킹을 왜 팔지??? ㅎㅎㅎ - dc App
본문에 여자 꼬신다고
군인은 군인대로 저러고 호주 항만 노동자들도 파업했던걸로 앎
호주는 배급제로 궁핍하게 생활할 때 미군은 훨씬 나은 대우 받아서 빡쳤단 말임? 호주거 뺐어서 준 것도 아닌데 오히려 지켜주고 돈 써주니 좋지 않나?
그 나은 대우 받은걸로 돈써주면서 여자 따먹고다녀서 개빡친거지
내가 호주 디코에서 한일 관계 설명했을때 나온 얘기가 저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