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 다음날, 강릉의 한 캠핑장 (아침/밖)

오늘의 피폭량은 62mSv이다. 캠핑장에서는 자동차들이 모여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중에서는 람보르기니(약칭 람보)를 탄 깡패가 운전석에 누워있다. 람보에 다가온 캠핑장 관리인(이하 관리인)이 창문을 두드린다.

깡패: (창문을 내리며) 누구세요?
관리인: 고객님, 저희 캠핑장 이용료가 미납된지 한 달이 넘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나가주시겠어요?
깡패: 아니, 갈 데도 없고 호텔들도 다 비싼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요?
관리인: 네, 고객님 사정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땅 파면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있으신 다른 고객분들께서는 대부분 납부해주시고 계십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나가주시고 있고요.
깡패: (잠시 침묵) 알겠습니다. 오늘 내로 드릴게요.
관리인: 오늘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S#27. 강릉의 군 초소 근처 (낮/밖)

장면 전환. 깡패는 람보를 몰며 시내 외곽으로 나선다.

깡패: 하아…아직 남아 있으려나?

깡패, 군 초소로 다가간다.

깡패: (주위를 돌아보며) 아무도 없어요? (초소에 들어간 다음 뒤적거리며)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깜짝 놀라며) 뭐야!

깡패, 권총을 들고 죽어있는 군인의 시신을 발견한다. 깡패는 시신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내 본다.

깡패: 유언장…안녕하세요, 저는 강릉의 G 섹터 초소를 지키는…에이, 노잼이야. (시신의 손에서 권총을 빼내어 장탄 수를 확인한다) 음, 이 정도면 되겠네!

S#28. 캠핑장 (낮/밖)

깡패, 람보를 몰고 관리인 사무실 근처로 다가간다. 권총을 숨기고 내려서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깡패: 계세요?
관리인: 네, 나가요. (문을 연다) 무슨 일이시죠?
깡패: 밀린 비용 좀 대신해서 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관리인: 네, 보여주세요.
깡패: (권총을 꺼내 겨누며) 이거면 될까요?
관리인: (얼굴이 사색이 되어) 아아, 지금 무슨 짓 하시는 건가요…네?
깡패: 에이, 왜 그러세요. 한 달 정도 알고 지낸 사이끼리.

관리인, 뒤로 조금씩 물러선다.

깡패: 에헤이. 꼼짝 마시고, 소리도 지르지 마쇼잉, 네? 어차피 경찰 부르더라도 대가리 날라갑니다잉.
관리인: 원하시는 게 뭡니까?
깡패: 그냥 다른 건 없고, 남아있는 연료랑 식량 좀 나눠주쇼.
관리인: (숨을 헐떡이며) 아, 네네. 잠시만요.

장면 전환. 관리인은 깡패의 요구에 따라 남은 연료와 식량을 준다. 깡패는 그것들을 람보에 싣고 자리를 떠난다.

깡패: (창문을 열고) 그럼, 안녕히 계세요잉!

S#29. 데스티니 술집 (저녁/안)

함장: 우리 해군 장병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건배!

술집 안엔 함장, 해진, 성연, 해군 승조원들, 강릉 시민들이 있다. 다들 웃으며 술을 마신다. 성연, 술집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해진 교수를 발견한다.

성연: 어? 교수님 여기서 뭐하세요?
해진: 어, 그냥 한 잔 하는 중이야.
성연: 그렇군요. (교수를 훑어보더니)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시죠?
해진: 실은 불편한 곳이 있기는 해.
성연: 어디가 불편하세요?
해진: 너희들한테 많이 미안해서. 못 막았잖아.
성연: 어떤…거요?
해진: 핵전쟁.
성연: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웃는다) 아하…. 근데 교수님 잘못은 아니신 것 같아요. 일부 극소수 정치인들 잘못이죠.
해진: 그래도, 이렇게 된 게 내 책임인 것 같고 그래. 늘 미안하다.
성연: 괜찮아요, 교수님. 그래도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다른 것을 해보시면 어떠실까요?
해진: 어떤 거?
성연: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예를 들면…교수님께서 잘하실 수 있으신 일을 하는 거죠.
해진: (마음의 소리) 난 그동안 책상에나 앉아서 문서나 찌그렸는데….

잠시 침묵. 해진은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굴려 아래를 바라본다.

해진: (성연을 바라보며) 그럼 내일부터, 기록을 보존해야겠어!
성연: 어떤 기록이요?
해진: 이것저것 다! 혹시나 살아남았을 수도 있는 우리 후대인들을 위해 같은 실수 반복 안 하도록 철저히 조사를 해봐야겠어. 아직은 도서관이 열려 있으니까.
성연: 좋은 아이디어세요!

우진이 해진과 성연의 사이로 서서히 걸어온다.

우진: 무슨 일이에요?
성연: 아 그냥…그런저런 일이에요.
해진: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 뭘 하며 지낼지 이야기 좀 했습니다.

성연과 우진, 그리고 해진은 계속 대화하는데, 술집 구석에서 깡패가 성연을 노려본다. 깡패가 권총을 만지작거린다.

S#30. 데스티니 술집 (저녁/밖)

술집 바깥에서 사람들이 헤어진다. 사람들 가장자리에 성연, 우진이 서 있다.

성연: 사실 전 무서워요.
우진: 뭐가요?
성연: 저희가 언젠가 죽을 운명이란 거요. 죽기 싫어요.
우진: 그 마음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성연: 전 모르겠어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우진에게 등을 돌리며) 전 이만 가볼게요. (우진에게서 멀어진다.)

깡패가 성연에게 다가온다. 성연은 깡패를 쳐다보며 서 있다.

성연: 누구세요?
깡패: 저기 죄송하지만, 저 좀 따라와 주시겠어요?
성연: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누구신데요? (뒷걸음친다)
깡패: (그녀의 팔을 확 잡으며) 아, 거 말 존나 안 듣네. (권총을 꺼내 하늘로 몇 발을 발사한다) 야 이 새끼들아, 잘 봐라!

사람들이 다들 깡패를 쳐다본다. 깡패는 그녀에게 총을 겨누며 주위를 둘러본다. 우진과 미래도 권총을 꺼내서 깡패에게 겨눈다.

성연: 저한테 왜 이러세요?
깡패: 순순히 따라오라고. 거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지랄이야.
우진: 그 손 놔!
깡패: 시발 군바리 새끼. 어차피 뒤질 건데, 화끈하게 놀아야지, 안 그래?
우진: 당신만 그래? 우리 다 힘들어!
깡패: 그러니까 시발 여자랑도 화끈하게 해야 할 거 아냐!
미래: (우진에게 속삭이며) 내가 해볼게.

미래, 깡패 앞으로 약간 다가간다.

미래: 니는 억울하지도 않냐?
깡패: 그래,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뒤지는 게 억울하지, 안 그러냐?
미래: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봐봐. 어차피 우리 다 뒤질 건데, 이렇게 남 피해 주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깡패: (잠시 침묵) 뭔 소리야?
미래: 여기서 남 피해 주는 행동하고 뒤지면, 나 같으면 억울해 뒤질 것 같은데? 우리가 일으킨 전쟁도 아닌데 꼭 이렇게까지 피해 주면서 죽어야겠냐?

깡패, 침묵하며 땅을 쳐다본다.

미래: 있지,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도 1명 이상은 너처럼 행동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그건 딴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걸 떠나서, 자신을 망치고 더럽게 만드는 거거든. 그렇게 죽고 싶어?
깡패: 그럼 난 어쩌란 거야?
미래: 그냥 남 피해 주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서 원하는 거 해. 성연이도 동의하지?
성연: 아, 네네. 남 피해 안 주고 총만 압수하면 문제없어요. 어차피 감옥 갈 수도 없으니까….

잠시 침묵. 얼마 후 깡패는 성연의 팔을 놓아준다.

우진: 중위님, 제가 총 받겠습니다.
미래: 그래.

깡패는 총을 돌려서, 총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잡이는 우진 쪽으로 맞춘다.

우진: 그래그래. 좋아. 이리 줘. (총을 받는다.)
깡패: (고개를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 다들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뒷걸음질하다가 람보를 타고 도망간다)

미래와 우진, 성연은 도망가는 깡패를 바라보며 서 있다. 잠시 후 성연은 우진을 바라본다.

성연: 저기, 저를 구해줘서 감사해요.
우진: (살짝 웃으며) 아, 뭐 이런 걸 가지고…군인의 의무니까요.
미래: 너무 걱정 마. 총은 압수했으니까.

S#31. 다음날, 대도호부관아 (아침/밖)

오늘의 피폭량은 67mSv이다. 대도호부관아에서 이벤트에 참여하는 우진과 성연이 보인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거나 놀고 있다.

진행자: 자, 이번에 당첨되실지? 두구, 두구, 두구, 두구….

성연, 상자에서 종이 하나를 뽑아서 그것을 진행자에게 보여준다.

진행자: 자, 조성연님 1등 당첨입니다!

진행자, 성연에게 금팔찌 한 쌍을 준다.

우진: 다들 즐거운 듯하네요.
성연: 그러게요.
우진: (웃으며) 늘 오늘만 같아라! (기지개를 핀다)
성연: (우진의 시선을 피하며, 꺼림직하게) 아…예. 그래야죠.

S#32. 강릉시립중앙도서관 (낮/안)

해진은 전기차를 타고 도서관 앞에 주차한다. 그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안내데스크로 간다.

해진: 실례합니다.
안내원: 네, 말씀하세요.
해진: 이 도서관의 자료를 좀 보존하고 싶은데요. 혹시 여기에 대해 아시는 거 있으신가요?
안내원: 네, 저희 강릉시에서는 수많은 자료와 기록을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시청 주도로는 납 상자에 자료들을 넣어서 보관할 거라고 하셨고요.
해진: 그렇군요. 저도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안내원: 네, 알아보겠습니다. 성함 좀 알려주시겠어요?
해진: 강릉대에서 근무 중인 신해진 교수입니다.
안내원: 잠시만요. 해당 부서와 통화를 해보겠습니다.

안내원은 시청과 전화통화를 한다.

안내원: 네, 교수님. 저희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시 차원에서 보존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참여가 가능하시다고 얘기하시네요.
해진: 네네, 감사합니다.
안내원: 일단 강릉시청 쪽으로 가보셔서 문의해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존을 원하시는 자료가 있으시다면 납 상자를 구매하셔서 따로 보존하시는 것도 가능하시다고 하네요.
해진: 네, 감사합니다.

안내원과 해진은 인사하고 헤어진다. 장면이 전환되어 해진은 도서관의 자료들을 프린트하거나 USB에 넣어서 보존한다. 저녁이 되자 해진은 집으로 돌아간다.

S#33. 캠핑장 인근 (저녁/밖)

깡패, 람보를 타고 멀리서 캠핑장의 관리인 사무실을 바라본다.

깡패: 하, 씨발…. (관리인에게 빼앗은 물품들을 바라보며) 돌려줘야겠지? 그리고 밀린 거랑.

깡패, 미래와의 대치를 회상한다. 미래가 ‘죽을 때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으면 안 되냐,’ ‘부끄럽지 않게 죽을 수는 없냐,’ 등의 말을 한 것을 상기하며, 땅을 바라보고 잠시 망설인다.

깡패: (양손에 물품들을 들고 차에서 내리면서 마음의 소리로) 일단 저 사람이 군바리에게 찌를 수도 있으니까….

S#34. 캠핑장 (저녁/밖)

깡패,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깡패: 누구 없어요?
관리인: (두려워하며) 저기 죄송한데 더 이상 가진 게 없어요! 그냥 돌아가세요!
깡패: 그게 아니고, 물건이랑 연료 돌려주고 사과하려고 왔습니다. 총도 이제 없고요. 그리고 물건 뺏어서 죄송합니다.
관리인: (문에 있는 유리 구멍으로 깡패를 지켜보며)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문 앞에 두고 가세요. 나중에 제가 가져갈게요.
깡패: 그리고 한 달 치 이용료도 낼까 하는데요. 방법이 없을까요? 알바라도 해도 됩니까?
관리인: (잠시 생각하다가) 글쎄요, 알바생들도 다 집으로 보냈습니다만…잠시만요. (문을 살짝 연 뒤, 깡패를 문틈으로 보며) 정말 돈 주시는 겁니까?
깡패: (귀찮다는 듯이) 아, 네. 진짜라니까요. 제가 막판에 더럽게 죽긴 싫거든요. (주머니를 뒤지고 보여주며) 거봐요, 이제 총도 없다니까요.
관리인: 잠시만요. (문을 닫고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럼 여기 나가보셔서 1등하시고 상금은 포기하실 수 있으세요? (문을 조금 연 다음에 종이를 건넨다)
깡패: 뭔데요? (종이를 받고 읽어본 뒤에) 아, 네. 연료랑 상만 좀 주시면 나가서 돈은 포기할게요.
관리인: 알겠습니다. 날짜와 위치는 거기 나와있으니까 그때 뵙죠.
깡패: 네네, 저번에 죄송했습니다. 돈 안 낸 것도 그렇고요.

깡패, 빼앗은 짐을 문 앞에 두고 람보로 돌아가서 운전한다.

S#35. 이틀 후, 허난설헌 기념관 (낮/안)

오늘의 피폭량은 78mSv이다. 허난설헌 기념관 내부의 좌석에 금팔찌를 찬 손을 서로 맞잡은 채 우진과 성연이 앉아 있다.

성연: 허난설헌은, 정말 아까운 인물이야.
우진: 그러게.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성연: 우리도 평화로울 때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기침한다)
우진: 왜 그래?

성연이 휴지에 대고 기침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휴지에 피가 묻어 있다. 우진이 놀란다. 성연은 흐느끼며 운다.

우진: 괜찮아?
성연: 아니, 안 괜찮아. 나 너무 무서워. (말할수록 성을 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죽어야 해?
우진: 죽는 거? 나도 억울하지…. 하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성연: 솔직히 지겨워. 피곤하고…. 다 귀찮아.
우진: 하지만 성연아, 아직은 시간이…
성연: 언제까지 그런 말만 할 거야? 맨날 그래!

우진은 바닥을 보며 침묵한다.

성연: 됐어. 나 이제 그냥 갈 거야. 안녕.

성연, 우진에게 그녀의 금팔찌 하나를 준다. 잠시 후 떠나는 성연과 그녀를 바라보는 우진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헬기 소리가 들리며, 하늘 위를 나는 헬기의 모습이 보인다.

S#36. 해군 헬기 (낮/안)

장면 전환. 시끄러운 노래가 나오고, 헬기에 탄 함장과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둘 다 웃는다.

미래: 히~하! 베트남에 온 기분입니다!
함장: (웃으며) 그래, 멋있네.
미래: 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함장님께서는 어떻습니까?
함장: 난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됐어.
미래: 그럼 언제 가실 겁니까?

함장은 눈을 굴린 다음에 감는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가 다시 눈을 뜬다.

함장: (바다를 가리키며) 이틀 뒤에! 승조원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돌아간다!
미래: (웃으며) 역시 이래야 제 함장님답습니다! 그러면 저도 그동안 할 일을 좀 찾아보고 가야겠습니다!

헬기가 저 멀리 사라진다.

S#37. 강릉시청 (저녁/안)

해진은 강릉시청 근처에 주차하고 시청 안으로 들어가서 민원실로 향한다. 민원실에서 그의 차례가 되자, 그는 담당자 앞에 앉아서 자료를 납 상자로 보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담당자: 이렇게 해서, 내일 작업이 모두 끝날 예정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해진: 네, 상관없습니다. 다만 저도 납 상자를 구매하고자 합니다.
담당자: 자료들은 준비하셨나요?
해진: 네, 차에 있습니다. 가져올까요?
담당자: 아뇨, 괜찮습니다. 그 대신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자료들을 가지고 찾아주시면, 저희 측에서 기록 보존에 민원인 분을 참여시켜드리며 납 상자도 준비해서 드리겠습니다.
해진: 네네. 감사합니다.

해진, 시청을 나오면서 석양을 바라본다.

해진: (마음의 소리) 하루에서 이틀… (주먹을 불끈 쥐며) 그래, 고생해보자!

해진은 차에 타서 시동을 건다.

S#38. 해군기지 (저녁/밖)

해군기지 앞에서 우진은 성연에게 전화한다.

우진: 여보세요? 어, 성연아. 잘 지냈어?
성연: (전화음성) 아니, 별로. 왜 전화했어?
우진: 아 다름이 아니고, 이틀 뒤 알약이 배포되잖아. 그래서 너 보고 죽고 싶은데 가능할까?
성연: 말했잖아, 난 죽기가 싫다고. 몇 번을 얘기해야 해?
우진: 아니, 어차피 우린 다 죽잖아. 너가 보고 싶어. 나나 너나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건데 혼자 죽는 건…
성연: (전화음성) 너 어디 모자라? 난 애초에 죽기가 싫다고!
우진: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린…커플인데. 적어도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성연: 너 미쳤구나.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난 적어도 오래 살고 싶어. 너는 안 억울해?
우진: 아니, 왜 말을 그따위로밖에 못해? 누구는 죽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아?
성연: 적어도 내가 언젠가 죽더라도, 너랑 같이 함께하긴 싫어. 맨날 뻔한 소리나 하는 애랑 누가 함께하고 싶겠냐.
우진: (전화음성) 아 씨발, 진짜! 나도 죽기 싫다고 몇 번을 말해, 이 답답한 년아!
성연: 너 지금 나한테 욕했냐, 이 개새끼야? 니 일 때문에 남 죽는 거에 익숙해졌나 봐?
우진: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이 씹년아? 나도 떠나보낸 전우가 몇인데 그런 개소리를 쳐해?
성연: 아, 예예. 너 혼자 쳐 뒤지든지 말든지 난 좆도 신경 안 쓸 테니까 니 혼자 하세요.
우진: 용기 내서 전화한 사람한테 존나 싸가지 없네. 미친년. 끊어!

전화가 끊긴다. 우진, 기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있는 함장을 본다.

우진: (창피한 표정으로, 경례하며) 소위, 박우진! 안녕하십니까, 함장님!
함장: 아, 박 소위. 조금 시끄러워서 나와봤다. 일이 잘 안 풀렸나?
우진: 네, 실패했습니다. 용기 내서 전화했지만 결국 이 사단이 났습니다.
함장: (우진에게 다가가며) 박 소위.
우진: (함장에게 다가가며) 네.
함장: (우진 앞에 멈춰 선 다음) 안타깝게 되었다. 나도 옛날에 전 애인과 싸워서 헤어진 적이 있었다. 성연님이 먼저 차갑게 대하셨기에 박 소위 잘못이 아니야. 특히 마지막으로 관계를 개선하려고 전화한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는 건 매우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본다.
우진: 아,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함장: 그래.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뭘 할지 고민해봐라. 중요한 순간은 도둑같이 오는 법이다.
우진: 네, 감사합니다.

우진, 기지 안으로 들어간다. 함장은 밖에서 뒷짐을 지고 저 멀리 바다를 쳐다본다.

S#39. 대학 내 카페 (밤/안)

성연, 시민1과 커피를 마신다.

시민1: 그렇게 됐구나.
성연: 응. 결국 깨졌어.
시민1: 안타깝네. 너랑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성연: 뭐 어때. 그래도 너가 있잖아. 위로가 돼.
시민1: 그래. 근데 너 4잔째 커피인데 괜찮아? 잠 못 잘 것 같은데.
성연: 뭐 어때. 어차피 곧 죽을 건데.
시민1: 그래, 알았어. 나 내일 레이싱 보러 가야 해서 이만 가볼게.
성연: 그래. 잘 가.

시민1, 자리를 뜬다. 성연은 시민1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다.

성연: (마음의 소리) 나도 너처럼 가족들이랑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래에게 문자를 보내며) 선배님, 지금 뭐 하세요?
미래: (문자) 어, 우진이랑 얘기 좀 하다가 이제 곧 씻으려고.
성연: (문자) 소식 들으셨나요?
미래: (문자) 그래, 들었어. 내가 좀 미안하네.
성연: (문자) 실은 저 많이 외로운데, 저랑 함께 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미래: (문자) 미안. 난 혼자 헬기 타다가 갈 거라. 많이 힘드니?
성연: (문자) 지금 전화 가능하세요?

S#40. 대학 내 카페 (밤/밖)

성연, 미래와 통화한다.

성연: 아, 네네.
미래: (전화음성) 그래서 우진이도 많이 힘들어하더라.
성연: 그렇군요.
미래: 성연아, 근데 있지. 이건 내 경험인데, 말해도 될까?
성연: 네, 말씀하세요.
미래: (전화음성) 이 세상이 좆같더라도, 단 한 명만 있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곳이야. 이해하니?
성연: (전화음성) 정확히 무슨 말씀이시죠?
미래: 뭔 소리냐면 설사 세상이 내일 당장 망해버려도,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애인이든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워.

잠시 침묵.

성연: (전화음성) 아, 네. 그렇군요.
미래: 그래서 우진이도 많이 고심하는 것 같아. 얘도 내가 봤을 땐 사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 물론 누구나 죽고 싶진 않아. 그건 맞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단 적어도 그 전에 너희 둘 다 서로 사과하고 가는 게 어떨까 싶어. 물론 결정은 너의 몫이야. 나는 조언만 해줄 수 있고. 동의하지?
성연: 네네.
미래: (전화음성) 이건 내가 관계를 주선해줘서 그런 것만은 아냐. 다만 너희들은 내 소중한 후임 내지는 후배로서, 내 경험상으로 뭐가 더 좋은지에 대해서 조언만 하는 거야. 너희도 나처럼 후회하기는 싫을 거 아냐.
성연: 아…전에 말씀하신 그 동기 분?
미래: 그래. 내가 걔랑 전쟁 전날에 게임하다가 지고 돈 내줘서 걔한테 싸가지 없게 대했던 거. (살짝 흐느끼며) 전쟁 때 걔가 인천으로 전출되고 나서 영영 사과 못한 거 있잖아. 난 지금도 걔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아파.
성연: 아, 네…괜히 상기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
미래: (전화음성) 아냐. 죄송할 것까진 없고, 다만 어떤 게 더 너를 마지막에서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는 거야.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알았지?
성연: 네. 선배님. 조언 감사합니다.
미래: 그래, 들어줘서 고마워. 아 근데 지금 시간이 벌써 늦었네. (전화음성) 나 내일 헬기 타고 레이싱 중계해야 하거든. 그래서 일찍 자야 하는데, 전화를 지금 끊어도 괜찮을까?
성연: 아, 레이싱. 저도 소식 들었어요. 마지막 경기라면서요. 먼저 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래: (전화음성) 그래, 나중에 또 보자.
성연: 네.

전화가 끊어진다. 성연, 카페 앞을 걷다가 달을 쳐다본다.

성연: (마음의 소리) 어떡하지…. 화해할 수 있을까.

S#41. 다음날, 강릉 인근 고속도로 (아침/밖)

오늘의 피폭량은 85mSv이다. 미래가 조종하는 해군 헬기가 하늘을 날며 경기장을 녹화 및 중계하고 있다. 도로에는 깡패의 람보를 포함해 포니, 싼타페, 랭글러, 랜드로버(약칭 랜드), 레토나, 에쿠스, A클래스(이하 A), 레이 등의 차량이 카메라를 부착한 채로 모여 있다. 도로 양쪽에는 바리케이드가 이중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바리케이드 안쪽에는 진행자석 및 관객석, 대형 스크린이 있다.

관리인: (마이크를 쥐고)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인근 캠핑장 관리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강릉 최후의 자동차 레이싱을 곧 보시게 될 텐데요. 참가자분들께서는 출발시간을 준수하시는 것 외에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걸 상기하면서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관객분들께서는 저기 나오는 스크린과 강릉 MBC 방송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레이싱을 관람하실 수 있으십니다. 또한 하늘에서 중계해주시기로 한 해군 장교님 정미래 중위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다들 준비 되셨죠?

자동차 운전자들이 “네!”라고 외친다.

관리인: 그렇다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10, 9, 8, …
깡패: (자동차의 소리를 높이고, 담배를 피운다) 씨발, 쩔겠네.
관리인: 4, 3, 2, 1, …
깡패: 가즈아!
관리인: 출발!

자동차들이 일제히 출발한다. 헬기가 차들을 따라다니며 중계한다. A가 제일 앞서고, 그 뒤로 레토나, 에쿠스가 따라간다. 람보는 맨 뒤에 있다.

깡패: (마음의 소리) 일단 제일 바깥에서 달리니까, 안쪽으로 들어가야겠다.

람보가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랭글러가 앞길을 막는다.

깡패: 아 씨발, 진짜. (경적을 울리며) 저리 안 꺼져?

랭글러, 여전히 비키지 않는다. 람보는 랭글러의 옆 레이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깡패: (마음의 소리) 휴, 꼴찌는 면했다!

관객석의 시민1, 시민2, 시민3, 시민4는 레이싱을 지켜본다.

시민1: 와, 진짜 치열하다!
시민4: 그러게…저러다가 큰 사고라도 나면 어떡할까 싶네.
시민2: 뭐 어때. 다들 어른이고, 이래 죽든 저래 죽든 마찬가지지.
시민4: 당신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아무리 그래도 누구 죽을 일 있어?
시민2: 아니, 다들 죽는 거 감수하고 온 거니까 그런 거지.
시민3: 자자, 두 분 모두 지방방송 끄시고 일단 지켜봅시다.

람보는 어느새 6등이다. 그의 사이로 싼타페와 랜드가 있었다. 잠시 후 랜드와 싼타페가 람보의 양옆으로 온다.

깡패: 뭐야, 이 새끼들? 설마?

랜드와 싼타페가 간격을 좁히자, 람보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 사이로 포니가 들어와서 충돌한다. 양옆의 차들이 빠져나가자 포니는 결국 미끄러져서 바리케이드와 충돌한다.

관리인: 아, 결국 한 분께서 탈락하셨습니다. 안타깝네요.

깡패: 씨발, 이 새끼들 봐라? 좆같은 새끼들.

람보는 싼타페와 랜드 뒤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양옆으로 왔다갔다 한다.

깡패: 흠…방법이 없을까? (뒤에 오는 랭글러를 보고) 아, 생각났다!

깡패는 랭글러에게 길을 내준다. 랭글러가 속도를 더 올리자, 싼타페와 충돌한다. 이에 랜드는 랭글러의 옆을 공격한다. 그러나 랭글러는 크게 부서지지 않고 랜드의 옆을 공격한다. 이에 싼타페가 다시 랭글러의 옆을 공격해서 붙어버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랭글러가 옆으로 미끄러지자 싼타페와 랜드도 튕겨져 나가 바리케이드와 충돌한다. 싼타페와 랜드는 폭발하고, 랭글러도 몇 바퀴 회전하다가 결국 뒤집힌다.

관리인: 오! 한 번에 세 분이나 끝장났습니다! 게다가 폭발했네요!
미래: 와, 레알 아슬아슬하네.
깡패: 후! (웃으며) 잘 가라, 병신들아.
시민1: 아! (눈을 가리며) 못 보겠어!
시민2: 알겠어. 대신 알려줄까?
시민1: 어, 어. 그렇게 해줘.
시민3: 아, 근데 진짜 다시 없을 경기긴 하네요.
시민4: 그러네요. 이게 참, 운명이니까요….

S#42. 강릉시청 (낮/밖)

해진과 직원들은 납 상자들을 옯겨가며 작업하고 있다.

해진: 근데, 이 자료들은 어디다 둘 건가요?
직원1: 여러 군데 둘 예정입니다. 일단 주요 관공서 지하에 매장했고요. 이제 제왕산 정상까지 (상자들을 가리키며) 얘네들을 옮기시면 주요 작업은 마무리됩니다. 그 외엔 각자 알아서 자료를 보존하고 있고요
해진: (놀라며) 제왕산이요? 거기까지 어떻게 올라갑니까?
직원2: 걱정 마세요. 해군 정미래 중위님께서 헬기를 타시고 곧 오실 겁니다. 그게 유일하게 강릉에 남아있는 헬기인데, 이번 레이싱 경기가 끝나면 다 거기로 옮기실 예정이에요. 시간 보니까 이제 거의 끝나갈 타이밍입니다.
해진: 알겠습니다.

해진, 하늘 저 멀리서 움직이는 헬기를 본다.

S#43. 강릉 인근 고속도로 (저녁/밖)

람보를 탄 깡패가 1등을 했다. 2등과 3등 사이로 깡패가 1등으로 올라와 있다.

관리인: (트로피와 엠블럼을 건네며) 우승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깡패: 네네, 감사합니다. 상금은 약속대로 포기할게요.
관리인: 감사합니다! 정말 치열한 경기였습니다.

관객석에서는 사람들이 질서 있게 벗어나고 있다. 시민1, 시민2, 시민3, 시민4는 여전히 앉아서 대화한다.

시민1: 하, 예상 못한 결과네요.
시민2: 그러게.
시민4: 아, 저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해….
시민3: 뭐,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사히 들어왔다는 게 제일 중요하죠.

깡패, 잠시 코스를 돌아본다. 코스 이곳저곳에는 부서지거나 불이 붙은 차들이 널려 있었다.

깡패: (마음의 소리) 시발, 다들 지 좆대로 운전하니까 나까지 뒤질 뻔했네….

S#44. 해군기지 (저녁/밖)

함장과 모든 해군 승조원들은 기지 앞에 집합한다. 함장 앞에 승조원들이 서서 함장의 말을 듣는다.

함장: 드디어 내일이다. 내일이면 안락사약이 배포된다. 다들 알고는 있겠지?

승조원들, 동시에 “네!”라고 외친다.

함장: 내 바람이지만, 적어도 나는 해군답게 강릉 앞바다에서 자침하여 먼저 떠난 전우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하지만 나 홀로 잠수함을 몰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제군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럴 땐 다들 알다시피 모두가 동등한 위치이기에 계급을 들먹이며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괜찮나?

승조원들, 모두 “네!”라고 외친다.

함장: 좋아. 그러면 나와 함께 잠수함에서 먼저 떠난 전우들을 만날 제군들은 손을 들어라.

우진과 미래를 제외한 모든 승조원이 손을 든다. 함장, 미래에게 다가간다.

미래: (경례하며) 중위, 정미래!
함장: 그래, 정 중위는 어떻게 최후를 맞이할 예정인가?
미래: 저는 해군 헬기를 마지막으로 타다가 따라가겠습니다.
함장: 그래, 알겠다. (우진에게 다가간다) 박 소위는?
우진: 저는…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친과도 헤어졌지만 여전히 그립습니다. 그래서 걔와 최후를 함께하고 싶지만, 얼마 전에 전화로 욕하고 싸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함장: 그래, 알겠다. 내일 다시 결정할 기회를 줄 테니 그때라도 말해줄 수 있나?
우진: 네! 내일 확실히 결정하겠습니다!

S#45. 해군기지 (밤/안)

우진, 침대에 앉아서 달력을 쳐다본다.

우진: (마음의 소리) 드디어 내일…. 바닷속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성연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안녕. 지금 뭐해? (잠시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다가, 읽었어도 답장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내일 드디어 동기들이 바다로 돌아가. 오후 5시쯤에 안목해변 앞바다에서 자침할 건데, 아직 결정은 못했지만 와줬으면 좋겠어.
성연: (문자) 글쎄, 나도 모르겠어. 생각해 볼게.
우진: (문자로) 그래도 최대한 너와 함께하기 위해서 나오도록 할게. 여전히 좋아해. 안녕. (자리에 누워 한숨을 쉬며 마음의 소리로) 어떡하지? 동기들이 과연 이해해줄까…? 성연이가 안 나오면 어떡하고? 하아, 어렵다, 어려워.

S#46. 다음날, 강릉 이곳저곳 (아침/밖, 안)

전광판도 꺼져 있다. 알약통에 적시된 설명서를 보이며 보이스오버로 설명서를 읽어 주고, 강릉 시민들이 물과 함께 알약을 먹는 장면이 중간중간에 보인다.

보이스오버: 경고. 이 약을 안락사를 위한 약입니다. 반드시 물과 함께 복용하십시오. 어린 유아나 반려동물에는 주사기를 활용하십시오. 약을 복용하실 경우, 30분 이내로 졸음이 옵니다. 복용 후 1시간 후에는 뇌사상태에 빠지고, 안락사하게 됩니다.

S#47. 강릉의 한 가정집 (아침/안)

시민1과 시민2, 시민3, 시민4, 서로 모여서 강아지와 함께 파티를 연다.

시민1: 아빠!
시민2: 응? 왜, 우리 마님?
시민1: 아빠는 이번 전쟁의 원인을 뭐라고 생각해?
시민2: 글쎄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 북한도 있을 거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유럽도 자기 딴에는 스스로 지키려고 만들었겠지만, 결국 모두 지키지 못했으니까.
시민3: 개인적으로 과학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구나. 특히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들이 무기를 만들지 않았어도 이 사단은 나지 않았을 테니까.
시민1: 아저씨, 과학자들도 엄청난 노력을 했어요. 언급하신 아인슈타인도 그렇고요. 반핵 운동의 시초였죠. 제가 과학사를 배워서 알거든요. 자기 밥그릇 싸움하는 정치인이 문제죠.
시민3: 뭐, 어찌 되었건 인류가 약간의 쇳덩이와 돌덩어리만으로 멸망할 수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니?
시민1: 네, 그건 맞죠.
시민4: (짖는 강아지에 고개를 돌리며) 괜찮아, 괜찮아, 토토야. 엄마가 곧 낫게 해줄게.
시민2: 누가 먼저 쐈든, 얼마나 쐈든 이런 꼴이 됐다는 게 참 슬프구나. 우리 딸내미 아기 때 사진만 핵미사일에 붙였어도…. (흐느낀다)
시민4: (약을 꺼내며) 자, 그럼 가야지.
시민1: (한 손을 펼쳐 들며) 엄마, 잠깐만!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찍자!
시민4: 글쎄,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시민1: 뭐 어때. 소중한 추억이니까.

4명과 강아지가 소파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서로 한 번씩 안아준다.

시민3: 다들 고생 많았어요. (시민2를 바라보며) 특히 우리 동창,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객식구로 날 받아준 거 고맙다.
시민2: 에이, 뭘…. 괜찮아, 임마.
시민3: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즐기고 도우며 살아왔으니까, 하늘에 있는 우리 집사람과 아들도 대견스러워하면 좋겠다.

시민1과 시민4가 강아지에게 먼저 함께 주사를 놓은 다음, 다들 그 자리에서 술과 함께 알약을 삼킨다.

S#48. 데스티니 술집 (낮/안)

불도 다 꺼져 있는 술집의 문을 활짝 연 사장은 옆에 약통을 두고 술을 홀로 마신다.

사장: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과 건배하면서) 이제 끝이네. 그동안 고생했다!

사장, 한 모금 마신 뒤에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사장: (고개를 돌리며) 누구세요?
종업원, 카운터: (미소지으며) 사장님, 저희 왔어요!
사장: 너희들이? 왜 왔어? 친구들이랑 약 안 먹을 거야?
종업원: 아, 그냥 저희는 사장님 달래드리고 싶어서요.
카운터: 네네, 저도요.
사장: 고마워, 얘들아. (의자를 책상에 끌고 오며) 여기 좀 앉아라.

종업원과 카운터, 둘 다 의자에 앉고 약통을 꺼낸다. 셋 모두가 술잔을 들며 건배할 준비를 한다.

사장: 자, 건배해야지. 근데 너희들은 뭘로 건배할지 생각해 봤어?
종업원: 저는 다음 생애를 위해서요.
사장: 그래, 다음 생애는 안전해야지. (카운터를 보며) 너는?
카운터: 저는 눈먼 자들의 세상을 위해서요.
사장: 표현이 좀 특이하네. 이유가 있어?
카운터: 네. 극소수의 윗대가리 말고는 이번 전쟁에 대해 대비하거나 살아남지 못한, 눈먼 사람들이잖아요. 적어도 다음 생애에서는 모두 눈을 뜨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사장: 좋아. 그럼 난…미국에 있던 우리 집사람과 따님을 위해서.

셋 모두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알약을 입에 넣고 술과 함께 삼킨다.

S#49. 강릉 시내 (낮/밖)

약통을 든 깡패는 람보에 탔다. 창문은 모두 열려 있고, 운전석 바깥문에 ‘최후의 승자’ 엠블럼이 보인다.

깡패: (알약통을 바깥에 내팽겨친다) 인생, 그래도 화끈하게 살다 가야지!

깡패가 빈 도로를 빠른 속도로 운전한다. 자동차의 속도가 200km/h로 올라간다.

깡패: 이 맛에 살았다!

자동차의 속도가 280km/h로 올라간다. 저 멀리 차 앞에는 광고판이 보인다.

깡패: (핸들을 놓으며) 간다!

자동차 속도는 350km/h에 다다른다. 잠시 후 자동차가 날아오르고, 광고판과 충돌하면서 폭발한다.

S#50. 대학 사무실 (낮/안)

해진만 있는 사무실은 납 상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에는 ‘유언,’ ‘나의 인생사,’ ‘핵전쟁,’ ‘우리 대학교’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해진은 상자 하나를 들어서 확인한다.

해진: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상자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이 정도면 후대인들도 같은 실수 안 하겠지.

해진, 물과 알약을 삼키고 의자에 눕는다.

S#51. 대학 기숙사 (낮/안)

성연은 홀로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다. 성연은 시민1의 집에 갔을 때 시민1, 시민2, 시민3, 시민4가 현관문을 연 채로 소파에 앉아서 죽어있었던 것과, 시민1의 핸드폰 배경이 안락사 직전에 찍은 단체 사진이었던 것을 상기한다.

성연: (마음의 소리) 엄마, 아빠도 없고…이대로 외롭게 죽는 걸까….

성연, 우진에게 안목해변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나 문자 서비스도 종료되어 보내지 못했다는 알림이 온다.

성연: (마음의 소리) 못 보내네. 그래도 안목해변 쪽으로 한 번 나가볼까. 5시에 자침한다고 했는데. 지금 시간이… (놀라며) 벌써 4시 16분이야?

S#52. 대학 인근 (낮/밖)

밖으로 나온 성연은 공공자전거 정류장에 가서 아직 사용이 가능한 자전거가 있는지 확인해본다.

성연: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아, 이건 된다!

성연, 자전거 바구니에 실린 헬멧을 쓰고 출발한다.

S#53. 잠수함 (낮/안)

함장: 오늘은…

미래를 제외한 승조원들이 전부 모여 있다.

함장: 우리가 바닷속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비장한 표정을 한 승조원들의 모습을 각각 보여준다.

함장: 해군의 본문에 맞게 죽는 거다.

한 손으로는 금팔찌를 차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지손톱을 깨무는 우진의 모습이 보인다.

함장: 지금이라도 빠질 인원은 없나? 있으면 지금 얘기하도록.

우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며 천천히 손을 든다.

S#54. 강릉 시내 (낮/밖)

자전거 소리가 들린다. 성연이 헬멧을 쓴 채로 자전거를 통해 빠른 속도로 빈 도로를 달린다.

성연: (슬픈 표정으로) 제발…제발…!

S#55. 잠수함(낮/밖)

잠수함 위에 우진이 맨 앞에 나와서 그의 바로 앞 함장과 함장 뒤에 있는 승조원들에게 경례한다.

우진: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신 함장님, 그리고 승조원들께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함장: 그래, 고생 많았다!
우진: 특히 함장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다음 생애에서도 기억하겠습니다.

함장이 미소짓는다. 우진, 그의 뒤에 있는 고무보트를 바다로 내려놓는다. 우진은 거기로 떨어진다.

승조원4: 야! 박우진!
우진: (고개를 돌리며) 네, 왜요?
승조원4: 만약 다음 생애에 또 핵전쟁 나면, 그땐 내가 막는다, 새끼야!
우진: (웃으며) 뭐라고요? 알겠습니다! 중위님 다 해쳐먹으십시오!

모두 웃는다. 승조원들과 함장은 우진이 고무보트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S#56. 안목해변 (저녁/밖)

성연은 잠시 후 안목해변에 도착한다. 성연은 자전거에서 내린 뒤, 해변으로 다가가며 헬멧을 내팽겨친다.

성연: (주위를 둘러보고) 누구 없어요? 있으면 제발 나와 주세요!

한편 미래의 헬기가 하늘을 날고 있다. 헬기는 검은 연기를 내며, 저 멀리서 추락하고 있었다. 잠시 화면이 전환되어 헬기 내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미래: 히~하!

헬기가 추락하여 폭발한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성연은 쭈그리고 앉아서 운다.

성연: 혼자 죽기 싫어…. (바다를 바라보며) 우진아! 미래 선배! 함장님!

성연, 계속 운다. 잠시 아무도 없었다가 저 멀리서 누군가 고무보트를 뒤로 하고 양팔을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우진: (멀리서 희미하게) 성연아!
성연: 우진아! (우진에게 뛰어간다) 우진아!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아 운다.

성연: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우진: 나도, 나도!
성연: 전에 쌀쌀맞게 굴고 상처 줘서 미안해.
우진: 괜찮아, 괜찮아! 나도 너에게 먼저 욕해서 미안해.
성연: 아냐, 아냐. 괜찮아! 이제 함께하면 되니까.

우진, 성연에게 끼지 않은 금팔찌 한쪽을 건넨다. 성연은 그걸 찬다.

S#57. 안목해변(밤/밖)

해변에서 돗자리를 펴고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잔잔한 음악이 나오며,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고 약을 먹는다.

우진: 다음 생애에서도 다시 만나자.
성연: 그래. 꼭 만나자.

장면 전환. 물이 새는 잠수함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거기엔 함장과 승조원3이 있었다.

함장: 발사.
승조원3: 발사!

승조원3가 버튼을 누르자, 바닷속 잠수함에서 흰 물살이 위로 솟으며 미사일이 발사된다. 화면이 바뀌어 저 멀리 바다에서 미사일들이 불꽃놀이처럼 밤하늘에 올라와 터진다. 이어서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텅 빈 강릉 거리, 레이싱장, 허난설헌 기념관, 캠핑장, 대도호부관아, 술집, 그리고 대학을 거쳐서 두 남녀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우진: 멋있다! 오길 잘했네.
성연: 그러게. (우진에게 고개를 돌린다) 직접 부탁드렸어?
우진: (성연을 쳐다보며) 응. 가능하시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
성연: 그렇구나. (우진과 함께 앞을 바라본다) 하긴 이제 쓸 일도 없으니까….

두 남녀가 각자의 금팔찌를 찬 손을 서로 잡는다. 장면이 전환되어 불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변에서, 두 남녀가 자전거 옆의 돗자리를 편 자리에 누우며 영화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