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역사학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한 이야기인데
정작 한국 대중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의 스승이란 이야기만 듣지 이새끼가 헬레-나치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과 알렉산더가 탈민족주의자였단 사실이 간과되거나 못듣는 경우가 많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 평생의 스승인 냥 간주될 때가 종종 있음
사실 멀리 안가고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유사학자 시장바닥 역사팔이들 기어나와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의 스승이여서~~ 두 시대의 거인은 서로를 인정하고~~ 같은 개씹소리해대는 경우가 잦음
근데 정작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이룩한 후로 둘은 사이가 틀어지다 못해 걍 연을 끊고 없는 취급했음. 왜? 상술했듯 아리스토텔레스는 헬레나 민족이 아닌 나머지 바르바로이들은 상종하거나 대우할 가치가 없는 내츄럴 본 노예새끼라 주장한 반면, 알렉산더는 "내가 가서 싸워보니까 저새끼들 잘싸우던데? 이야기도 들어보면 자기들 나름의 문화도 충실함ㅇㅇ" 이라고 말했거든
스승이 뭔 지랄을 하든 직접 기어가서 본 알렉산더가 보기에 다른 민족들도 다 제 앞가림 잘했음, 좆같으냐 아니냐는 민족이 아닌 사람의 문제였고
다 떠나서 이새끼는 나중가서 초창기부터 들고다닌 그리스인 부대들은 전쟁피로도 좆되서+유력 부대장 중 하나를 반란 사건 연루로 갈아버린 탓에 붉은 얼굴 띄운 상태라 아시아인 부대를 중용할 수 밖에 없었음
거기다 알렉산더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 외의 스승들을 많이 두기도 했고 특히 이집트 원정 중 만난 프삼몬에게선 신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평등론을 주입박고 철학적 토대까지 갖춰둔 상태였음
군대에도 아시아 출신이 상당하고, 철학적 기반도 마련됐고, 결정적으로 원정 중에 정략적 목적에서 -야사에 따르면 미모에 홀려- 자기도 아시아 여자랑 결혼했고 부하들 상당수도 아시아 여편네 옆구리에 끼고 있는 판에 헬레나치즘을 신봉할 이유가 없었지
상식적으로 장군 하나가 개인능력으로 이룩해 사망과 동시에 해체된, 100년은 커녕 30년도 못간 병신국가가 이후 확고한 정체성과 동일한 집단의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음
신 아래 만민이 평등하고 온민족이 형제이다- 라는 알렉산더의 사상이 페르시아의 수백년 전통과 역사를 깔아뭉개고 그 지역들을 하나로 묶어놓은거임. 얘의 빅픽처는 거기서 "그 신이 사실 나임ㅋㅋㅋ" 까지 집어넣는건데 그건 너무 일찍 뒤져서 실패했고...
이게 교과서에서 배우는 알렉산더의 세계시민주의이고, 알렉산더 사후로 헬레니즘의 딱지가 붙여진 시대가 열리게 된 이유임. 특히 알렉산더가 인종믹싱을 위해 곳곳에 그리스계 식민지를 박아둔 덕에 그 사후로도 서아시아 일대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크게 남게됨
그 여파 중 하나가 기독교인데, 어찌저찌해서 전파되고 재해석된 알렉산더의 세계시민주의는 사도 바울에 의해 채택되었고 예수의 가르침과도 상통하는 알렉산더의 주장은 기독교의 숨겨진 뿌리 중 하나가 됐음ㅇㅇ
글은 알렉산더 대가리만 많이 퍼졌지 통짜는 알지도 못하는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의 모자이크(로마시대 당시 복원화)로 마침 + 새벽정신에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이랑 혼동해 적어놔서 수정 후 재업
가서 얼굴맞대고 칼질하던 놈이 오히려 개방적이었네
알렉산더가 말타고 칼질하던 새끼라고
칼질 다음 쿵떡쿵떡 해서 그런 듯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너무 빨아줘서 밑에 장군들이 불만이 많았다던데 ㅋㅋㅋ
ㅇㅇ 마케돈 귀족들 입장에선 동맹군 총사령관으로 스타팅 끊은 새끼가 동맹들은 내팽개치고 점령지 노예새끼들 우대하는 꼴이니 근데 그것도 나중가선 "이새끼 없으면 나라 좆될 거 같은데..." + 신격화의 부분 성공으로 잠잠해짐... 진짜 온갖 난관과 고난을 능력 하나로 헤쳐나간 미친새끼
뭣보다 불만있는 놈들은 진작에 고향돌아가서 부유한 은퇴라이프를 즐기던가, 은퇴 싫은 놈들은 알박다가 암살 이슈에 걸려 모가지(물리적) 당하던가 양자택일이었기도 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조카가 알렉산드로스한테 죽었나 그렇지 않나 ㅋㅋㅋ
개추 - dc App
문명 5 그리스의 종특이 도시국가와 관련된 보너스가 있는데 그거 저거 때문인건가
그냥 센세가 그리스인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걸 대놓고 반대로 해서 별로 안친했구나 추정하는 거지. 가정교사 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기록된 내용이 있기나 한가
그래서 알렉산더빠였던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동방 순행 다니면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철학자들 처형시켰지 - dc App
그리스인 우월주의? 알빠임! 해버렸다는 거네 - dc App
군인들이 묘하게 개방적이더라 - dc App
저동네 얘기겠지?
ㄴㄴ 어디던 실전뛰는 군대는 문화던 기술이던 묘하게 이상한데서 개방적인 경우가많음 - dc App
군인들이 개방적이라기 보다는 허구헌날 방구석에서 책만 보던 것들이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은데...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 입장에서 너가 쓴 글도 만만치 않게 편파적인데?
혹시 철학 전공함?
철학 전공했으면 어떤 새끼가 철학전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지 조언 부탁한다 게이야
알렉산드로스 이전에도 그리스 세계에서는 견유학파 등에 의해서 코스모폴리테스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고 있었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기가 엘레아의 제논 등을 비롯한 초기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인 주장이 성립하고 있던 시기였기도하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이러한 영향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님. 글쓴이 본인이 "헬레나치즘"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도 도시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보편적인 정의, 도시국가의 법률이 미치는 경계를 넘어선 보편적으로 좋은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음.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코스모폴리타니즘보다 편파적인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점은 알렉산드로스의 이러한 급진적인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로스 개인적 수준에서만 견지될 수 있는 것이지 그 당시 헬라스 세계와 근동세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있었다는 것임. 정복의 대상이 된 근동지방의 주민들에 대해 정복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헬라스 세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단 정복 당했지만 그 전에는 헬라스 사람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여겼던 근동지방 사람들에게도 알렉산드로스식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개소리에 가까웠음. 그래서 알렉산드로스가 죽자마자 그의 제국을 상속받은 디아도코이들은 다시 헬라스인을 지배계급으로 삼고, 근동지방의 원주민들은 군사와 고위행정에서 최대한 배제하는 형태의 국가들을 건설한 것이고.
나도 글 보면서 약간 이 새끼도 편파적인데 생각했는데 지적 잘 해줬네 ㅋㅋㅋㅋㅋ
알렉산드로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사도바울이 계승했다고 하는데 그건 진짜 무리한 주장임. 일단 로마제국 시기에 들어와서는 도시국가의 국경을 초월하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현자들만이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점차 옅어지고 모든 인간이 코스모폴리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라나게 됨. 이것은 곧 그리스 스토아학파가 로만 스토아학파로 변화하기 시작하기 때문이었기도 한데, 과거 자신들을 타 민족에 대해 우월하게 생각했던 그리스 철학자들이 로마의 지배를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노예의 신분일지라도 탁월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진게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보면 됨. 로마는 보편제국을 지향하는 입장 상,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상당부분을 자국 정치체제와 지배의 정당성 확보를
밀어주게 되었고. 즉, 사도바울이 알렉산드로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채택한 게 아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있던 시기부터 싹을 틔웠던 그리스 철학의 한 부분이었고, 로마시대에 들어와 그 보편적 성격이 강조되고 로마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위해 강조되었고, 이런 토양 위에서 그리스 철학에 친숙했던 사도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을 사실상 만들 때 상당부분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참조하게 된 것. 알렉산드로스를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자 선각자로 로마에서 칭송하였을지언정, 이는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로스라는 한 인물에 대한 찬사와 존경에 가깝지 그의 사상이 후대의 철학이나 정치 이념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희박하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3년이 지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서찰을 통해 교류를 주고 받았고, 알렉산드로스가 친이민족 행보를 보이며 둘 사이의 관계가 냉랭해지기는 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죽기 전까지 뭐라고 딱 잡아서 말하기 힘든 복잡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정보는 ㅊㅊ
사도 바울이 원래 몸 담은 데는 바리새 랍비 학파였는데, 걔네들이 원래 맞서 싸운 쪽은 알렉산더 수하 장군이 세운 셀레우코스였음. 물론 사도 바울 출생지가 소아시아 쪽 다소였고, 로마 시민권자라 그리스-로마 문화에 익숙한 것도 맞는데... 그와 반대되는 부분도 컸다는 것도 깔고 가야 함.
프삼몬영어 스펠링 어떻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