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중간 중간에 요약 넣음)
2차 대전 말기인 1944년 6월 22일, 동부전선 벨라루스에서 독일 중부집단군 세 개 야전군(제3기갑, 제4, 제9)은 소련군 네 개 전선군의 공격을 받았고 철저하게 파괴됨.
소련군의 공세기간 약 2개월 동안, 중부집단군에서만 37개 사단 중에서 28개 사단이 섬멸되어 전투 서열에서 사라짐.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포위를 넘어서는 이 막대한 피해는 공세 개시 1주일이 채 안되는 시점에 발생한 사태.
이 빵꾸를 메꾸기 위해 29개 사단(10개 기갑, 19개 보병)과 7개 여단이 중부집단군 전선에 투입되었음. 이 사단들은 다른 여러 전선에서 돌려막기로 차출하고 궤멸된 기존 부대를 긴급히 재건한 것이었음. 그 결과 8월 중순 경에 간신히 바르샤바 앞에서 소련군의 진격을 일단 정지시키는 데 성공함.
인명피해도 무지막지했는데 특히 고위급 장교 손실이 컸음. 사단장 이상 지휘관만 무려 32명이 전사, 사망(자살), 실종, 포로가 됨.
여기서 한가지 요상한 점이 있었음.
위에는 작전 개시 전 전투서열의 일부.
중부집단군 유일의 짬찌 대령 사단장으로 197 사단장 대리를 하고 있는 프로이 대령이 보임(밑줄)
프로이 대령의 197사단이 속한 제6군단은 작전 초반 민스크 포위전에 휘말려서 거의 전멸하고 군단장 파이퍼 포병대장도 전사함.
다음은 중부집단군 지휘관 사상자 명단의 일부.
197 사단이 전투 결과 해산되었다고 하는데...
작전 중 실종된 사단장이 프로이 대령이 아니라 한스 한(Hans Hahne) 대령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옴.
대충 작전 중 뭐 한 대령이 지휘권 넘겨 받은 건가 아니면 프로이의 풀네임이 프로이 한? 쯤 되나 싶었는데 그렇다고 보기엔 다른 사상자 명단은 이전 편제표랑 달라진 부분이 없고 이 부분만 지휘관이 다르게 표기됨. 다들 별들 달고 있는데 이 사람들만 대령이라 눈길이 가서 한번 어찌 된 건지 대충 찾아봄.
== 요약: 전투 시작 전에 프로이라는 대령이 지휘관인데 전투 결과 집계에는 웬 한스라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있음 ==
한스 한 대령(Hans Hahne): 같은 이름의 유명한 수학자가 있나벼 검색할 때 중복이 많더라...;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더니 양덕들 중에 이 질문을 뒤져본 사람이 있었고(197사단장은 프로이 대령이여 한스 대령이여) 197사단 관련 전투기록을 찾아낸 사람이 있어서 덕분에 답을 찾은 거 같음.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바그라티온 이틀 쯤 전인 6월 20일 중부집단군에 인사이동이 있었음.
예정대로라면 프로이 대령은 다른 부대로 떠나고 대신 한 대령이 197사단장이 되었어야 했음. 하지만 공세가 개시되면서 두 대령은 사단에 함께 남아있게 된 것 같음. 프로이 대령은 전투 초반에 부상을 입었고 그 결과 원래 197 사단장이 되었을 한 대령이 사단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된 것으로 보임.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전투개시 3일 후인 6월 24일, 사단장인 한 대령은 실종되고 사단은 섬멸. 프로이 대령은 부상을 입은 채로 포로가 됨.
한 대령은 이전부터 이 197사단의 연대장으로 근무했었고 실종(사실상 사망) 이후 소장으로 진급했는데, 양덕에 따르면 이건 원래 사단장 달면서 소장(진)이 될 예정이었던 거라 사후 추서는 아니라고 함. 인사고과를 잘 받아 온 듯?
한편 프로이 대령이 예정대로 부임했어야할 부대는 역시 같은 중부집단군인 제9군에 속한 제296보병사단이었음.
그러면 이 296 사단에는 또 뭔 일이 있었느냐면
위 표에 있는 296 보병사단장인 아르투르 쿨머(Arthur Kullmer)중장이 6월 20일 부로 예비역 장교단으로 발령되서 그 빈자리로 프로이 대령이 사단장 대리직을 맡을 예정이었음. (뭔 찐빠가 있었길래 대공세를 앞둔 시점에서 인사 발령 됐을까나)
하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공세가 개시되었고 쿨머는 이미 독일 본토로 가고 있는 중. 새 사단장인 프로이 대령은 수백km 떨어진 기존부대에서 부상을 입은 상태였음.
결국 296사단은 사단장 없이 전투를 치뤄야 했고 사단 예하 연대장 중 한 명이 사단장 대리를 떠맡게 됨. 이 연대장은 작전 중 실종. 사단 역시 섬멸.
==요약: 공세개시 직전에 인사이동이 있었고 공세가 시작되면서 두 사단의 지휘권이 꼬여버렸음 ==
(아르투르 쿨머 중장)
기적적으로? 바그라티온 작전을 피해간 쿨머 중장은 그 끝이 영 좋지 못했음.
예비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중부집단군이 작전개시 1주일만에 섬멸될 위기에 처하면서 개같이 현역으로 복귀, 7월 15일(대략 작전개시 3주 시점)에 제558 국민척탄병 사단장으로 임명되서 전장에 투입됨. 종전이 3주도 안 남은 1945년 4월 20일에는 보병대장으로 진급. 군단장 자리에 앉는 호사 아닌 호사도 누리게 됨. 하지만 종전 이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고 1953년 소련군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 2년만 더 버텼으면 개 같이 석방인데
(테오도어 프로이 대령. 코가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이 난장판 속에서 오늘의 주인공인 프로이 대령은 드물게도 나름 해피 엔딩을 맞이했음. 이전에 지휘를 맡았던 부대와 지휘를 맡기로 예정한 부대는 다 갈려나갔고 본인도 부상을 입었지만 소련군의 포로가 됨.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서 1948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석방이 되었고 1974년 77세의 나이로 독일 바이에른에서 사망.
이리하야 여러 장교들의 엇갈린 운명이 끝을 맞이함.
이 밖에도 바그라티온 때 중부집단군 장성 중에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음.
당시 제2군 참모장으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가 자살한 트레슈코프나 아니면 포위되었다가 혼자서 6주 동안 부하들 몇십명 데리고 늪지대 수백 km 돌파해서 우군전선으로 귀환한 사단장이라던가. 히틀러가 포위된 비텝스크에 사수명령 때리고 이걸 참모장교 중 하나가 낙하산 투입해서 직접 서신으로 전달하라니까 그러면 내가 직접 가면 되겠냐고 해서 데꿀멍 시킨 라인하르트 상장이라던가.
바그라티온 작전 관련된 글 읽다가 신기해서 써본 건데 전쟁 중엔 참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거 같음.
나중에 시간 나면 다른 것도 정리해보고 싶네.
여튼 오늘의 교훈: 덕중의 덕은 양덕이며 양덕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참고자료:
- Stepehn A. Veal, The collapse of the German army in the East in the summer of 1944, (1991)
- https://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f=5&t=204953
- https://www.traceso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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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구글과 그 선지자인 양덕들이 보우하사..
사단장과 30인의 탈출기 라고 영화 만들어도 되겠는데
25기갑척탄병사단 이후로도 재건되서 베를린 전투까지 싸웠는데 중간에 사단장 짤렷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