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유엔 유격군(UNPIK, 통칭 '8240부대', 혹은 'KLO부대') 산하 제3유격보병연대 소속 아벤리(avanlee)중대는 1952년 12월 하순, 북한의 물자운송 수단 및 보급물자 차단을 위하여 황해도 평산의 경의선 철도 타격을 목표로 3개조 30명이 유엔 측 항공자산을 이용하여 공중침투 하였다.
호출부호 '제시 제임스(Jessie James I, II, III)'를 부여받은 3개 팀은 1952년 12월 28일, 30일 두번에 걸쳐 투입되었고, 1주일간 활동 후 귀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 전원은 작전지역에 도달하기 전 위치가 노출되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UNPIK 측에서는 철로 타격과 지뢰매설 등을 목표로 약 750명 규모의 대규모 .유격대를 북한 전 지역에 투입하는 '프로젝트 사우스윈드(Project Southwind, 남풍계획)'을 입안했다. 이를 위한 밑작업으로 1차로 1953년 2월 7일경, 호출부호 '복서(Boxer I–IV)'를 부여받은 12명 1개조 총 4개 팀이 공중침투를 통해 성진과 흥남 사이에 투입되어 철로를 타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이 성공하면 2차로 4월 경 2인 1조 래빗팀(Rabbit team)으로 구성된 50명을 추가 투입하여 평양 이북지역과 영흥, 개천, 희천, 함흥등을 타격할 예정이었다.
1차 투입된 48명의 인원은 훈련편제 상 다음과 같았다.
파인애플(Pineapple)대 - 20명
리바이벌(revival)대 - 9명
턴코트(Turncoat)대 - 6명
블루보이(blueboy)대 - 7명
하지만 이들이 투입되고 2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연락이 두절되었고 UNPIK 측은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이후 모든 작전들을 연기시켰다.
90년대 이후 중국측의 자료를 조사해본 결과, 1953년 3월 31일자 동북조선인민보(東北朝鮮人民報)에서 '1953년 2월 함경남도 신포·광천·이원 등지에 항공기로 침투한 미국 극동사령부 8240부대 소속 '무장특무' 46명을 일망타진하였다'는 기사를 통해 이들이 전원 전사-혹은 생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의 내용에는 이들이 전원 북조선 인민군으로 위장하였고 공장·철도·교량·군수창고 등을 파괴하려 했으나 북한 인민군과 보안대, 중공군들에게 체포되거나 사살되었다고 적혀있다. 최소 2명의 인원이 발각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이들 역시 부상으로 인한 사망, 혹은 귀환도중 실종처리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시 공중침투작전 고찰 - 군사편찬연구소
HQ Partisan Command, FEC LD(K), 8240th AU, “Monthly Command Report”Feb. 1,1953, CCRAK, 8242nd AU, “Combat Report File”1 9 5 2–53, 군사편찬연구소, SN 196
cia 역사책 보면 한국전쟁때 대공작전 뻘짓 ㅈㄴ 했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더라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여러 공중침투작전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침투대원들에 대한 훈련이나 지원작전의 미비 외에도 새로운 곳에 유격근거지를 만들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동조자를 포섭하여 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미군들은 한국인들이 모두 같으므로 한국인을 침투시키면북한주민들이 그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할 것으로 여겼지만, 북한주민들은 마을에 낯선사람을 곧 의심하고 내무서나 북한군에게 신고를 했다. 오직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대 특전사는 공중침투로 들어가서 비트에서 몇개월 버티면서 유격전해서 유의미한 전과 내고 천리행군으로 복귀 가능함?
시라소니가 간다~
ㅠㅠ
편히 쉬십시오
선서 한번만 하면 전향 완료한거로 보고 아무 조건 없이 한국군에 입대시켜서 군 조직 내 공산당 사조직 활개치게 만들고...(결국 여순 반란으로 이어짐) 미군정이 광복직후~한국전쟁때 개뻘짓 많이 했지
미군정 때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입대할 수 있긴 했다만 그 대신 미군정의 레드 퍼지 작업 때 싸그리 축출 당했음. 당장 인민혁명군 사건만 해도 5연대 대원 300명이 취조 당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