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글이 올라가는 시점으로는 502일이 지났다.


탈레반의 압제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내건 아흐마드 마수드가 판지시르행 헬기에 몸을 맡긴 날로부터 말이다.





시 군사 갤러리를 비롯한 커뮤니티와 세계 언론은 이들을 "아프간의 마지막 구원자"로 여기며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Panjshir province로 알려진 판지시르 주 공무원에게 수많은 한국인의 응원 댓글이 쏟아졌으며,


군사 갤러리에서는 아들 마수드와 아버지 마수드의 관상을 비교하며 칭찬하는 글도 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기대를 건 것은 아프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에 패배감을 안고 있던 경찰, 군인, 코만도, 그리고 지역 주민들까지 저항의 상징이었던 판지시르 주로 몰려들었다.


한쪽 눈을 다쳤고, 의사가 휴식을 강권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판지시르 주로 합류한 크테카스 지휘관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아프간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NRF는 기세를 몰아 점령전을 통해 마을들을 하나 하나 해방시켰다.


역공해온 탈레반들을 오히려 포위공격을 감행해 사로잡기도 했다.





(필자가 직접 만든 요약 지도.)


그러나 너무 큰 관심이 탈레반을 자극한건지, 탈레반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다.


평화 협상을 하던 탈레반은 협상이 결렬되자, 삼면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바글란 주의 3개 구와 판지시르 주 전체를 차지했던 NRF였지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원과 인력을 보유한 탈레반이 삼면에서 공격해오자 NRF는 중과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제작한 요약 지도중 일부.)


결국 9월 4일, T-54/55 전차와, ISI의 드론 공격까지 앞세운 탈레반이 총공세를 감행해오자 NRF는 두가지의 선택지만이 남게 되었다.


싸우다 모두 죽어버려 아프가니스탄이 어둠 속에 빠지게 하거나,
전력을 보존한 채 후퇴하여 훗날을 도모하거나.






NRF는 후자를 선택했다.


총사령관인 아흐마드 마수드와 대통령 대행 암룰라 살레는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갔다.


저항군 병력들은 병력을 보전한 채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20년간 대반란전을 주도해왔던 이들은, 국부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반란작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 뒤로 벌써 일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저항군은 산속에서 다닐 수 없는 험비 대신 당나귀를 끌고,

따뜻한 집 대신 22개 가량의 산중 캠프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 대신 탈레반을 디지털 열상 조준경을 통해 바라보며,

열피로가 심한 PASGT 헬멧 대신 비니와 반다나를 쓰고 전투에 임하고 있다.


모두가 잊은 저항군들은, 나름대로의 성과도 세웠다.

NRF 중앙군은 소화기를 이용한 밀집 사격으로 대공화망을 구성해 탈레반 Mi-17을 격추하고 조종사를 생포하기도 했으며,

공격하러 계곡 깊숙히 들어온 탈레반 40여명을 생포한 후 돌려보내기도 했다.

반면에 탈레반은 저항군 포로를 처형하고 그 영상을 SNS에 올리는 추태까지 보여주었다.

저항군은 미친듯이 잘 싸운다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항군의 앞날이 장밋빛이라고,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탈레반은 여전히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인력풀과, 미군이 남기고 간 장비를 최소 5년간은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을것이며, 저항군은 장비와 인력 보충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탈레반 20명을 죽이면, 이튿날 300명이 충원된다.


저항군은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심지어 탈레반이 압도적인 병력차이로 공격을 해와도 최소 4:1의 교환비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문제는 저항군 1명의 손실이 탈레반 1명의 손실과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외에 있는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으며, NRF를 제외한 다른 저항군끼리 내분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도 장담할 수 없다.


영하 20도의 산속에서 침낭 하나로 버티는 것 자체로도 전투력 손실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저항군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도 장담할 수는 없다.


스스로 정복자라고 여기는 탈레반은, 나라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긴다.


탈레반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게 아닌, 샤리아 법과 탈레반 자신들을 위해 일한다.


경제는 박살이 났으며, 물가와 세금은 몇십 배씩 뛰어오르고, 여성 인권은 땅에 추락했다.


"변화하는 탈레반"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폭력적이고, 무능하며, 광신적인 탈레반은 소련제 무전기와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값싼 자동소총을 쓰는 대신, 모토롤라 워키토키와 콜트제 자동소총을 쓴다는 점만 빼면 딱히 달라진 건 없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위한 회의에서도 아프간의 통치자인 탈레반은 초대받지 못했다.


UAE와 카타르, 중국 등지에서 소기의 성과를 얻기는 했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서방 세계는 NRF를 지원해서 탈레반의 심기를 거스리기도 꺼리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탈레반과 뭔가를 하기도 꺼리는 모양새다.


게다가 탈레반의 전쟁 범죄, 여성에 대한 범죄, 전직 군인들에 대한 보복 살인, 납치, 고문은 "변화하는 탈레반"을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서방 세계가 더더욱 미심쩍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인도적 지원"으로 대표되는 달러 지원이 탈레반의 손에 들어가게 놔두는 걸 서방 세계 국민들이 더이상 용인할 수 없게 되면, 탈레반의 앞날은 아프간의 인프라와 함께 블랙 아웃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누군가는 물어볼 수 있겠다.


탈레반이 먼저 엎어질까? 아니면 저항군이 먼저 스스로 고꾸라질까?


필자는 여기서 감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다.


그것은 탈레반의 선전대로 저항군은 SNS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힌두쿠시의 높고 혹독한 산속에서 아직도 아프간 사람들의 자유 민주주의와 희망, 그리고 테러리즘의 확산 방지라는 낭만적인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국내에 아직은 못 들어가는 NRF 수뇌부는 탈레반의 만행을 널리 퍼뜨리고 반 탈레반 저항군 지원을 촉구하는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비록 아직 그 지원이 충분치는 않고, 국가 단위의 군사적 지원도 아직 아무도 선뜻 나서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항군 수뇌부가 타지키스탄에 앉아 배만 벅벅 긁고 폼잡으며 인터뷰만 하고 있지는 않다는 소리다.


총을 들고 싸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줌 클래스와 가정학습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지켜나가려고 애쓰고 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4,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과 집을 떠나 산속 은신처를 보금자리 삼아 싸우고 있다.


인내하며 이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탈레반 정권의 무능함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저항군에게도 기회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UCLA를 졸업하고 NRF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중인 Ali Nazary의 연합뉴스 인터뷰로 글의 끝을 맺어 본다.


- 많은 한국인이 아프간 정부 붕괴 이후 NRF의 저항에 대해 사회관계망네트워크(SNS) 등을 통해 지지를 보냈는데.

x1f53c; 매우 감사하다.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한국과 NRF는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는 압제와 테러리즘, 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싸운다. 한국인들과 같다. 아프간과 한국 사이에는 수천㎞의 거리가 있음에도 우리는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소식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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