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제도가 아르헨티나군의 점령하에 있다는 소식은 영국 국방부로 전달된 전문으로 처음 전달되고,

당일 오후 BBC에서 포클랜드 제도 구스그린 지역 거주민 한명과 아마추어 무전기로 교신한 결과 민간에도 알려지게 됨,

영국 정부는 마거릿 댓처 총리의 주도 하에 긴급 전쟁 내각 구성에 들어갔으며 포클랜드 제도 탈환작전은 코퍼레이트 작전으로 명명됨,

작전의 지휘관은 해군 대장 존 필드하우스 경이 지휘하고 2차대전 이후로 가장 큰 규모의 함대로 구성된 특임대였음,

처칠급 공격원잠 HMS Cconqueror가 4월 4일 스코틀랜드에서 포클랜드 제도로 향한것을 시작으로,

인빈시블급 경항모 HMS Invincible과 센타우로급 경항모 HMS Hermes가 포츠머스에서 호위함들과 함께 4월 5일 출항함,

4월 7일에는 민간 크루즈선인 SS Canberra가 징발되어 왕립 해병대 제3코만도연대와 함께 포클랜드 제도로 항해했고,

5월 12일에는 SS Queen Elizabeth II도 징발되어 영국 육군 제5보병연대와 함께 출항함,

특임대의 총 규모는 43척의 왕립 해군 함선들과 22척의 왕립 해군 예비대(보급부대) 함선들, 그리고 62척의 민간 함선들로 총 127척이였음,

(유명한 "제국의 반격" 표지)

(일부 함정들은 지브롤터에서 본토에서 출발한 병력들을 기다리고 있었음)

당시 미해군을 포함한 전세계에선 영국군이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할수 있을거라 보는 시선은 매우 적었는데 그 이유는,

122기의 아르헨티나 공군기와 비교해서 영국군이 보유한 전투기는 무장과 속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42기의 해리어 전투기가 전부로,

아르헨티나 공군은 조기경비기를 포함해서 엑조세 대함미사일도 보유하고 있어 영국 함대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수 있었음,

또한 비록 2척이긴 하지만 209급 디젤 잠수함도 영국 함대에 위협을 가할수 있는걸로 판명되었음,

왕립 공군은 남대서양의 어센션 제도에 공군기지를 건설하고 이 공군기지는 포클랜드 전쟁중 영국군이 사용할수 있었던 전진기지였음,

영국군의 첫 반격은 파라콰트(농약의 일종으로 그라목손이라고도 불림) 작전으로 명칭된 사우스 조지아섬 탈환으로,

제레미 무어 해병소장은 제3해병연대에서 최근에 노르웨이에서 혹한기 훈련을 마친 제42코만도대대에서 1개 중대를 소집함,

이 작전을 위해 SAS와 SBS, 그리고 왕립 해군에서 파견된 전방화력유도통제관도 합류하여 2척의 함선과 1척에 원잠에 탑승한채로 출발함,

6명의 SBS 대원들과 함께 4월 18일 처음으로 도착한 HMS Conqueror는 3개의 SBS 특임대를 침투시켜 정찰작전에 투입함,

20일에는 왕립 공군 소속 빅터 폭격기가 레이더 정찰을 실시한 결과 아르헨티나군은 딱히 섬을 보강하지도 않은 상태였음,

23일에는 아르헨티나 해군 소속 잠수함인 ARA Santa Fe가 사우스 조지아섬에 지원병력을 상륙시키고 나가던걸 발견하자,

영국군은 링스 헬기를 보내 끈질기게 공격했고, Santa Fe는 입항하자마자 전투불능+수리불능 판정을 받고 승조원들한테 버려짐,

이와 함께 진행된 코만도들의 헬기 강습으로 사우스 조지아섬의 아르헨티나군 전원이 당일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항복함,

5월에는 블랙 벅 작전으로 명명된 왕립 공군 아브로 벌컨 폭격기들의 7번에 걸친 대규모 폭격이 시작되었음,

(블랙 벅 작전에 참가한 아브로 벌컨 폭격기들은 수회에 달하는 공중급유가 필요했음)

(RAF 어센션에서 이륙하는 아브로 벌컨 폭격기)

첫 공중 전투는 각각 2기의 아르헨티나군 미라주 III 전투기와 시해리어들이 조우하면서 시작되었음,

결과는 총체적인 영국군의 승리로 1기의 미라주 전투기는 AIM-9L 공대공미사일에 격추되고 나머지 1기는 스탠리 공항에 비상착륙했음,

스탠리 공항은 아르헨티나군이 롤랑 대공미사일과 영국제 타이거캣 대공미사일을 비롯한 다수의 대공포로 방어되고 있었음,

4월 30일에는 영국군이 포클랜드 제도로부터 370km에 달하는 접근금지구역을 지정함,

5월 1일 새벽 왕립 해군 함대가 TEZ에 진입하고 당일 낮에는 HMS Conqueror가 헤네랄 발그라노를 포함한 아르헨티나 해군 함대를 포착함,

5월 2일에는 아르헨티나 정찰기가 태스크포스의 레이더에 탐지되고 1기의 시해리어 전투기가 발진해서 요격에 나섬,

정찰기는 찾지 못했지만 시해리어 전투기는 태스크포스로부터 불과 321km 떨어진곳에서 다수의 함선을 포착함,

또한 레이더 전파가 영국군이 사용하던 42형 구축함의 레이더와 똑같다는것을 기반으로 이 함대는 아르헨티나 해군의,

유일한 항모전단이라는걸 추측해내었음, 이는 남쪽의 헤네랄 발그라노 전단과 함께 양측에서 압박할수도 있다는 증거로,

헤네랄 발그라노 전단이 최대 35노트로 기동할수 있다는걸 생각하면 불과 6시간만에 양측에서 공격받을수 있었음,

북동쪽에서 공습을 막기위해 구축함들을 재배치하면 남쪽에선 16발의 엑조세 대함미사일이 날아올수도 있다는 계산을 마친 태스크포스는,

헤네랄 발그라노 전단을 죄다 격침시키거나 최소한 기함인 헤네랄 발그라노 순양함을 격침시켜야된다는 결론을 내림,

문제는 당시 배치된 잠수함들의 지휘권은 영국 본토의 왕립 해군 지휘부에 있었지 일게 준장이 내릴수 없었음,

당일 이 문제는 영국 본토에 보고하자 바로 소집된 비상회의에서 존 필드우드 중장과 피터 허버트 준장, 그리고 마거릿 댓처의 결론은 하나였음,

"아르헨티나군의 구축함, 순양함, 항공모함, 호위함, 초계함, 잠수함으로 판명되는 함선들은 공격할수도 있다"

이 결론이 태스크포스에 전달되었을땐 이미 헤네랄 발그라노 전단이 서쪽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음,

악화된 기상상황으로 북쪽의 항모전단이 항공기를 발진시킬수 없자 아르헨티나군은 작전을 취소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함,

그럼에도 영국군은 아르헨티나군이 구라핑을 찍고 다시 공격할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자 헤네랄 발그라노를 격침시키기로 결정함,

HMS Conqueror는 5월 2일 2시 57분, 3발의 2차대전기 마크 8 어뢰를 발사함,

3발중 1발은 함수에 직격하여 반갈죽 내버리고 다른 1발은 기관실에 맞아 동력을 상실함,

3시 17분 데미지 컨트롤이 실패하자 함장이던 헥터 본조 대령은 전원 퇴함 명령을 내리고 헤네랄 발그라노는 곧 침몰함,

321명의 승조원과 2명의 민간인이 전사하고 772명의 승조원들은 좁아터진 구명정에서 30시간을 버틴후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함정들에게 구조됨,

헤네랄 발그라노의 격침이 TEZ 밖에서 이루어졌기에 국제적인 분노가 있었지만 미국이 영국을 계속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전쟁은 계속됨,

아르헨티나 정부는 아직까지 격침을 전쟁범죄라고 주장하지만 아르헨티나 해군과 함장이던 헥터 본조 대령은 정당한 격침이였다고 주장함,

헥터 본조 대령은 만약 컨쿼러가 부상했다면 당연히 15문의 함포로 격침시켰을거라며 전쟁중이였던 당시 상황을 강조했고,

아르헨티나 해군도 헤네랄 발그라노 전단이 영국 해군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을 진행중이였기에 격침은 전쟁중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함,

그럼에도 헤네랄 발그라노의 격침은 이후로도 수년간 마거릿 댓처 총리의 논란거리가 됨,

(침몰하는 헤네랄 발그라노)

(더 썬에서 헤드라인에 "잡았지롱!"이라 보도한 5월 4일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