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던 중 갑자기 ‘슈웅~’ 하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소산진지 바로 앞에 떨어졌고, 무언가 좌측 발목 쪽을 때렸고,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계속해서 포탄이 소산진지 일대에 낙하되었고, 그때 내 앞에 문광욱 해병이 쓰러졌다. 계속해서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이라 나름대로 판단을 하여 후사면인 소산진지 출입문 옆쪽으로 문광욱 해병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이진규 해병이 얼굴에 파편상을 입은 채, 나와 문광욱해병이 있는 곳으로 와서 같이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 있으면서 문광욱 해병의 의식이 혼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 의식 상태를 확인하였다. 포탄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고, 일단 지통실과 의무실로 상황전파 및 구급차 요청을 하려고 전화를 시도하였지만 계속해서 불통이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던 이진규 해병에게 문광욱 해병을 부탁하고 의무실로 뛰어올라갔다. 뛰어 올라가는데 육거리에 포탄이 떨어져 있고, 의무실 또한 파편 및 충격파에 의해 유리창이 모두 깨어져 있었다. 의무실에 도착하여 군의관과 같이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의무행정관의 지시를 받은 의무병 2명이 들것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군의관이 문광욱 해병의 의식을 확인하였고, 잠깐 사이에 안색이 노랗게 변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들것에 문광욱 해병을 옮겨 의무실로 달려갔다. 의무실에 도착하여 응급조치를 취하며, 다른 환자들이 아직 많이 있다고 전파하였더니 의무행정관과함께 구급차로 현장으로 이동하였다. 중환자 및 상태가 심각한 환자는 구급차에 탑승 시키고, 경상자는 들것을 이용하여 대원들과 함께 의무실로 후송하였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후송하고 난 뒤 다른 환자들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산진지로 이동하였다. 소산진지에 복귀 했을 때에는 이미 통합생활관 간부들이 대원들을 안정시키고 통제하고 있었다
정비소대 화력수리 부속 담당관
2.
중대장의 소산 명령을 받고 조종수에게 소산 지시를 했는데 그 인원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부사수에게 야, 조종수 확인해봐!라고 지시를 했다. 확인해 보니 조종수가 포탄 소리에 많이 놀란 상태였습니다. 그 대원이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다급하게 조치한 후 자주포를 후방 포상으로 이동시켰다. 또한 당시에는 부사수가 사격 발사 버튼을 누르게 되어있었다. 0포가 장전까지 마친 상태였을 때 부사수가 저에게 반장님, 이거 정말 쏴야 합니까? 진짜 쏴야 됩니까? 라고 쉬지 않고 계속 되물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 겪는 실상황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부사수에게 야,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너는 내 명령만 들어! 라고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부사수에게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지시했다.
그 이후 그 대원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더 이상 묻지않고 포탄발사 전까지 대기후 사격을 실시하였다.
포7중대 0포반장
3.
갑작스런 포탄 소리에 중대 내에 잔류하던 대원들을 중앙 현관 쪽으로 집결지시하였고, 2층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나는 사태 파악을 위해 현장, 즉 1층으로 달려왔다. 상황의 긴박성과 위험을 느낀 나는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신속히 철모와 방탄복을 착용하도록 지시하고 몸을 엄폐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대원들은 처음으로 겪는 실상황에 심리적으로 당황한 상태였고 적이 쏜 포탄의 여파로 일어난 먼지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라 몇 명의 대원을 제외하고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때 중대 현관 바로 앞에 포탄이 떨어졌고 중대원들에게 엎드리라고 외치고 폭발에 의해 발생한 파편에 직접적으로 김지용 해병이 중상을 입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속이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즉시 부상당한 김지용 해병을 비교적안전하다 판단되는 식당 쪽으로 이동시키고 응급 지혈을 하였다. 그리고 중대 병력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였다. 지축을 흔드는 포성으로 대원들이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원들을 진정시킨 후 비상사태에 대피할 수 있는 소산진지인 탄약고로 소산할 계획을 전파하였다.
차후 포탄의 낙하지점을 면밀히 지켜보았고 낙하지점이 중대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기회를 포착하여 병력을 200m 가량 떨어져 있는 탄약고 쪽으로 신속하게 이동시켰다. 김지용 해병의 출혈이 심해졌으며 죽고 싶지 않다.,살려 달라.는 말에
나는 굳은 어조로 반드시 너는 내가 살린다., 꼭 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응급지혈을 하였다. 그때 시간이 약 00시 0분, 모든 일이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안에 이루어졌다.
중화기 중대 관측 담당관
4.
소산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밖에 노출되어 있던 인원들은 전부 사격 기재 같은 것들을 챙겨서 생존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포 진지 안으로 대피하였다. 이후 포대장이 각 포반에 연락을 취했지만 화재로 인해 통신망이 끊어져 연락이 잘 안됐습니다. 그래서 통제관으로 있던 간부들을 포상으로 올려보내고 핸드토키로 각 포반에 가서 이상 유무 확인하고 빨리 보고하세요.라고 지시했다. 간부들은 포상을 찾아다니며 병력들의 안전과 장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화재진압과 통신망 복구를 실시했다
당시 포7 중대 간부중 1인
5.
포탄을 맞았을 때는 ‘이제 죽는다.’ 라는 생각뿐이었는데, 갑자기 청력이 돌아오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무조건 적에게 포탄을 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대원들은 크게 이상이 없었고 장비에만 이상이 있었다. 대원들과 함께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은 뒤 무조건 북한에 공격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포반원들은 평소에 지속적인 훈련을 해왔고, 사격 임무가 몸에 숙달이 되어있었기 때문에제 지시에 따라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조건 적에게 포탄을 쏘겠다는 마음뿐이었으며, 이를 대원들에게 소리치며 포반 전원이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포7 중대 0포 담당관
6.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반드시 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1년동안, 2010년 1월 1일부터 11월 22일까지, 포격전이 있었던 그 바로 전날까지 실시한 전투배치 횟수가 통계를 내어보니 455회였습니다. 455회라는 그만큼의 노력을 한 것이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시간과 관계없이 적의 조그마한 움직임에 대응하고, 아 함정 기동 시에도 수차례 해왔던 훈련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연평도 포격전 당시 포7중대의 대응이었습니다. 시커먼 연기와 흙먼지 때문에 눈도 잘 안보이고, 쾅!하는 폭음소리 때문에 귀도 안 들리는 상황에서 우리 대원들은 손짓,발짓으로 대응사격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했으니까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이었던 것이죠.
포7 중대장
7.
그렇지만 곧 레이더와 고성능 감시 카메라를 운용할 수 있는 10여 명의 대원들만 남기고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대피시켰다. 남아있는 대원들에게는 지금 이곳은 전장이다,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조기 경보를 하고 임무를 수행하겠다. 우리가 조기경보를 해야지만 연평부대를 지킬 수 있고, 만약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연평부대에서 K-9으로 적들을 괴멸시킬 것이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가 맡은 임무만 열심히 하자, 다른 생각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하며 끝까지 대원들을 독려하여 조기경보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000 해군 감시 대장
8.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의지의 충돌이다. 그때 당시에 포7중대는 우리가 아니면안된다. 포7중대가 아니면 절대 적에게 대응할 수 있는 부대는 없다. 무조건 쏴야 한다.라는 일념이 무척 강했다. 반면에 북한은 포7중대가 포격 원점에 3차 대응사격을 하고 난 이후에는 더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포7중대의 강한 의지가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은 것이죠. 또 포격전 후 한 달 동안 우리 대원들은 혹시 모를 적의 도발에 더 빨리, 더 강하게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자주포 안에서 대기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내세운 도발의 이유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북한 해상에 포7중대가 사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럼 한 달 뒤에 우리가 다시 한 번 사격할 테니까 다시 도발해봐.라는 생각이 강했다. 한 달 뒤 연평부대가 동일한 해상에 훈련사격을 했을 때 적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바다가 대한민국의 영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죠
포7 중대장
9.
1포와 3포가 적 포탄에 의해 화염에 휩쌓인 모습을 보고 공포감이나 당황함조차도 느낄 여력이 없었다. 오로지 ‘포탄을 쏴야 한다!’, ‘빨리 쏘고 싶다!’, ‘보복하고 싶다!’, ‘적을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했고, 대원들에게 ‘우리가 빨리 사격해야 적을 죽이고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을 소리치며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포7중대 포술 담당관
10.
포탄을 맞았을 때는 ‘이제 죽는다.’ 라는 생각뿐이었는데, 갑자기 청력이 돌아오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무조건 적에게 포탄을 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대원들은 크게 이상이 없었고 장비에만 이상이 있었다. 대원들과 함께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은 뒤 무조건 북한에 공격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포반원들은 평소에 지속적인 훈련을 해왔고, 사격 임무가 몸에 숙달이 되어있었기 때문에제 지시에 따라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조건 적에게 포탄을 쏘겠다는 마음뿐이었으며, 이를 대원들에게 소리치며 포반 전원이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포7 중대 0포 담당관
11.
탄약 운반 도충 통증이 심했지만 당시에는 골절을 당한 지도 몰랐다. 다른 생각보다는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라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했다. 지속적인 사격을 해야만 적군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통증을 참고 탄약 운반을 통제하였다.
당시 해병대원
12.
당시 군 가족들이 우리 신랑은 안전한 거죠? 눈물을 흘리며 안부를 묻는 가족들에게 당부와 안심을 시키고 인사과장에게 대피완료 보고를 하니, 연평아파트로 빨리가 대피를 시키라고 했다. 이때 마을 여기저기서 ‘꽝!’,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사과장이 원망스러웠다. 나가면 죽을 것만 같았다. 차량을 타고 초등학교에서 연평아파트로 향하던 중 도로에 군데군데 포탄이 박혀있었으며, 신유류고는 ‘꽝! 하는소리와 함께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문자로 부부대장, 인사과장, 지통실에 신 유류고 화재 발생이라고 보고하고, 연평아파트로 계속 향했다. 도착해보니 다행히 군관사 지역에 포탄의 흔적은 없었다.
연병부대 인사담당관
12.
대원들을 잘 통제하고 격려하라는 중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0포 쪽에서부터 대응사격을 실시하는 우리 대원들을 뛰어다니면서 격려하기 시작하였고, 0포 쪽에서 거세게 화재가 발생하였고, 전방 관측반 임무를 중단하고 중대로 복귀한 측지담당과 함께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측으로 포탄이 지속적으로 쏟아졌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막사에 있던 중본 대원과 정비담당, 기상반장 등이 힘을 합쳐 화재 진압을 실시하였다. 중본 대원들은 등짐펌프와 소화기를 들고, 간부들은 중대막사에 위치한 소화전을 끌고 0포상까지 이동하여 화재진압을 실시했다.
포7 중대 행정관
13.
2010년 11월 23일 포격전 당일, 적의 기습을 받고 13분 후에 대응사격을 할 수있었던 것은 평소에 실전적 훈련으로 조건반사적인 즉각사격태세를 강구한 결과이다.
특히, 적 포탄낙하 상황을 상정하여 실전적인 사격절차 숙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포상 내 사격에 필요한 품목들의 기능발휘가 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신속정확한 사격제원 산출과 화재 발생, 정전, 유·무선 단선, 환자 발생 등 다양한 우발상황을 상정한 조치절차 숙달의 결과 적의 기습을 받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대응사격을할 수 있었다.
연평 부대장
14.
급히 0포를 부르는 목소리에 응답을 하자, 바로 임무를 실시하라는 명령에 우린 사격준비를 했다. 전시기는 고장이 나서 포가 잠기지 않았다. 전시기 고장으로 사격 불가라고 보고는했지만 다른 포반들이 사격하는 소리에 우리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한편으로 우리 기준 0포가 강하다는 걸 적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도 수동으로 방열하여 사격을 실시했다. 서로 똘똘 뭉쳐 평소에 담당관님한테 다그치며 연습하는 훈련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 포반은 정말 실력 좋은 대원들과 반장님이함께여서 당황하지 않고 멋지게 대응을 했다
포7중대 소속 해병대원
15.
실제로 대응사격 할 당시에는 여러 가지 제한사항이 많았었다. 적의 포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서 병력들이 중간에 숨도 쉬지 못했었고, 시커먼 매연 속에서 병력들을 다 빼내던 과정, 화재를 진압하던 과정. 그리고 0포 같은 경우 파편으로 인해 구동 제어 케이블이 단락되었던 것.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0포는 포반장이 오랜 장비 운용 노하우를 발휘하여 수동으로 3차 대응사격을 준비했고, 이렇게 여러 제한사항을 다 극복해냈지만 그한 상황들이 사실은 굉장히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정말 잘 대응해주었습니다.
포7 중대장
첫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문광욱 일병은 결국 전사했음. RIP
기억하자 북괴 무찌르자 북괴
비장하네
벌써 13년전이네
북괴 개씹년들
평양에 원점타격을 했어야했음 - dc App
씨발색기들 - dc App
이때 해안포 싹다 밀어버렸어야 하는데
영웅들의 증언
북괴보다 포격전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넘들이 진짜 나쁜거.. - dc App
최소 주체사상탑이라도 박살 냈어야함
저때는 입대 전이라 저 13분이 얼마나 빠른 건지 몰랐었다.. 그것도 중장비인데. 입대 하고 훈련 하면서 저게 얼마나 미치도록 빠른건지 깨달았지. 나중에 실무 있을때 6여단-연평부대 쪽들 훈련 숙달도와 준비태세 점검 빈도 이야기 듣고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비추누른 ㅆ벌 새끼들 집주소랑 연락처 남겨라 찾아가줄께
오바하지마 병신아
ㅋㅋ 다른 군에서 사건사고는 쯧쯧으로 끝나면서 해병대 사건사고만 해체하라 해체하라 웅얼거리는 곳에서 뭘 바람?
단순히 해병대가 싫어서 비추누른 사람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사람들은 해끼칠 생각없다 근데 이 게시물까지!와서 비추누른다?.. 그 간첩새끼가 해병대만 싫어서 눌렀을까?.. 간첩이면 진짜 찾아가준다니까? 꼴리는 놈은 바로 적으라고. 오바아니니까.
ㅂㅅ
비추 뭐냐 ㅋㅋㅋ ㄹㅇ 이새끼들 해병문학에 뇌가 함몰됐나보네
이거 영화 안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