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겨울,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독일 제6군은 소련군에 반격에 밀려난 상태로 고립되기 직전의 상태로 몰렸으며 보급선도 같이 축소됨,
당시 고립되거나 고립되기 직전인 병력들은 29만여명에 달했고 괴링은 29만명이 필요한 보급품을 오직 공중보급만으로 때울수 있다고 자만함,
물론 괴링의 허풍과는 달리 고립된 29만명의 병사들은 공중보급으로 떨어지는 보급품만으로는 허기를 채울수 없었음,
독일 국방군의 일일 식사는 750g의 빵, 150g의 지방(라드, 버터, 식물성 기름), 120g의 통조림 소세지, 생선, 치즈, 200g의 잼이나 인공꿀,
그리고 7개피의 담배나 2개피의 시가나, 1000g의 감자요리에서 250g의 신선한 채소(혹은 150g의 통조림 채소), 125g의 파스타나 곡물로 만든 요리를 먹었음,
포위 전의 독일군 병사들은 배급받는 식량에서 최소 450g의 빵(1,200 칼로리)를 받을수 있었지만 12월이 되자 고작 56g(빵 1~2조각)만 받을수 있었음,
일부 부대들은 가지고 있던 말을 도살해서 만든 말고기 수프를 인당 정확히 500ml로 배급하거나 아주 운좋은 일부 병사들이 집에서 오는 음식을 받을수 있었음,
평균적으로 병사가 전투후 소모하는 칼로리는 2,500kcal로 독일군 병사들이 굶어 죽는 확률이 급격하기 늘어나는 이유가 되었음,
고립 직후인 11월 23일 제6군 사령부는 빵 배급을 기존의 16온스(450g)에서 반갈죽낸 8온스(225g)으로 줄이라고 명령함,
이는 기존의 식빵 한덩어리에서 식빵 9조각하고도 반쪼가리로 불과 600칼로리밖에 안되었으며 독일군 병사들은 이때부터 슬슬 조졌다는걸 깨달음,
71일동안의 포위였다는걸 가정하면 하루에 500칼로리 정도만 섭취하면 1주일마다 900g의 몸무게가 감소함,
10주면 이는 9kg에 달하는 무게로 이것조차 배급량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가정한 결과로,
12월 26일에 달하면 2온스(56g, 150칼로리)으로 빵 배급량이 줄었음, 또한 일부 병사들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말고기를 먹을수 있었는데,
200g의 말고기는 286칼로리로 포함된 30g의 지방도 계산하면 556칼로리를 섭취할수 있었음,
담배는 그나마 꼬박꼬박 나온 기호품으로 12월에도 매일 3개피씩 배급되었음,
12월쯤 되어도 아직 38일이 남았는데 이정도 칼로리만 섭취하면 1주에 5파운드(2kg)의 몸무게를 상실함,
38일은 대충 5주니깐 몸무게중 9kg을 상실함,
당시 국방군 참모총장이던 쿠르트 자이틀러는 6군의 상황을 듣고 6군이 먹는 식량을 2주동안 먹은 결과,
히틀러가 갈!! 하기 전인 2주동안 26파운드(12kg)의 살이 빠짐,
6군중에서 포로로 잡힌 10만 7천명과 전사한 9만 9천명을 계산하면 대충 얼마나 굶어 죽었는지 알수 있는데,
11월 21일에는 4만명이 전투에 투입될수 있었지만, 12월 6일에는 3만 4천, 18일에는 불과 28,200명밖에 안남았음,
그러면 전사자로 기록된 나머지 5만 4천명을 포함한 인원들은 포격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사망했을수도 있지만,
현대에 와서 정설로 받아지는거는 그냥 굶어 죽었다는게 정설로,
포로로 잡힌 10만 7천명도 불과 5천여명만이 살아서 독일에 도착할수 있었음, 이 포로들도 굶어 죽기 직전에 잡힌 상황이였음,
140만명에 달하던 독일군 포로중에서도 도중에 사망한 인원은 45만명으로 대충 32.4%의 사망률을 보였음,
6군 포로들의 사망률은 무려 95%로 71일간의 포위중에서 섭취한 칼로리 수를 생각하면 왜 포로 사망률이 높은지 알수 있음,
이외에도 독일군 포위망내의 소련군 포로수용소도 포위와 함께 식량 보급이 팍 줄었음,
독일군이 둘라그-205 포로임시수용소에서 기록한 포로들의 모습은 가히 가관으로,
음식 보급은 오지도 않았기에 소련군 포로들은 바닥에 쌓인 더러운 눈과 가끔식 던져지는 말 시체를 가지고 요리를 했는데,
음식도 안오는데 땔감도 나오지 않았기에 죽은 시체의 옷을 찢어서 연료로 삼아 요리했음,
이렇게 나온 음식의 양도 충분하지 않아서 나중에는 식인까지 했으며 식인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끝내 식량 배급은 나오지 않았음,
결론
전쟁이라도 밥은 잘주자
아이스크림 화물선 굴리던 미군 보고 개같이 오열
니들이 밥먹으려고 군대 왔어? 어?
밥 먹는건 전쟁때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쓰앵님^^
7개피의 종이담배나 시가 둘중 하나면 너무 균형이 안맞는데 진짜임?
그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고오급 시가가 아니라 그냥 일반 보급용보단 퀄 좋은 싸제 담배라고 생각하셈
시가 하나로 오래 피우긴 함
그걸 또 직접 먹어본 참모총장은....
노먼 슈워프코프였나 전쟁은 깨끗한 화장실 있는 군대가 이긴다였나 그런 말을 했었는데 ㄹㅇ.. - dc App
ㄹㅇ 최소한 먹고 싸는 게 돼야 싸울 맛도 나지.. 거기에 더하면 씻는 거랑 옷갈아입는 거. 루씨가 괜히 변기와 세탁기에 목숨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듬.. ㅋㅋ
https://youtu.be/occOOTk6OKY
4년
전에 다룬 영상이 있었내
머 저거랑 청색작전 당시 투입 병력 수가 원래 계획했던 수보다 적어진 거랑 합해서 따져보면 그 이유는 결국 독일군의 대규모 보급/수송의 역량이 특히 남부집단군 방면에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지
청색 작전-I의 목표도 중부집단군 방면에서 내려오는 철도의 중간 거점인 보로네즈를 점령해 캅카스로 내려갈 보급용 철도망을 확보하는 것이였고 땅크에 돌아갈 연료마저 부족한(그나마 이것도 독일 본토의 민간용 연료 재고마저 쥐어짜서 나은 상황)마당에 보급용 수송차량에 돌아갈 연료는 여유따윈 없었으며 그나마 사정이 낫던 석탄을 소모하고 한 번 왕복에 많은 양을
실어 나를 수 있던 열차를 이용한 보급에 목을 메고 있었던 게 당시 독일군이였는데
(소름돋게 현재 우러전의 러시아군의 형편과 맞아떨어지는 보급 상황)
이미 스탈린그라드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커피 한모금으로 매 끼니를 때우며 사단장 명의로 민간 용품들을 쓸데없이 불태우거나 못쓰게 만들지 말라고(자기네들이 약탈해 써야하니까)공문이 내려왔으며 탄약이 부족해서 기관총 못쓰는 기관총반이 생기지를 않나 여러모로 X망판이였음
저거 책에서 봤는데 웃긴거 많았음. 히틀러가 상황 듣고 사령부 술담배 금지시켰는데 정작 지는 애초에 안하던거라 단순 꼬장이였다는 이야기
래퍼가 어디임? - dc App
이거 TIKhistory의 스탈린그라드 연작이 출처 맞지? 내용이 그대로네
고립되기 직전 병력이 29만이면 전사자+포로 숫자가 약 20만명이니 나머지 9만명은 빠져나오는데 성공하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