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왕국과 달리) 치스라이타니엔에는 공식 언어가 없었으므로 의회 운영에 쓰이는 단일 공식 언어도 없었다. 독일어, 체코어, 폴란드어, 루테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 슬로베니아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러시아어가 모두 허용되었다. 하지만 통역사는 제공되지 않았고, 독일어로 말하지 않는 연설의 내용을 기록하거나 감시하는 장치가 없었으며, 독일어가 아닌 언어의 연설을 기록하려면 의원이 자기 연설의 번역문을 의회에 직접 제출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변변찮은 분파의 의원일지라도 한 줌의 동료들만 알아듣는 말로 길게 연설하는 방법으로 달갑지 않은 안건 발의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가 발의한 안건에 관해 연설하는지 아니면 자기 민족의 방언으로 긴 시를 낭독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특히 체코인 의원들은 의사 진행 방해 전술로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치스라이타니엔 의회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특히 방청석에 난방을 하는 겨울에는 빈의 행랑객들로 붐볐다.
한 베를린 기자가 비꼬듯 말했듯이 빈의 극장 및 오페라하우스와 달리 의회 회기 입장료는 무료였다.
[저자 주석 : 의원들의 고약한 언동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 당시 떠돌이 청년 아돌프 히틀러가 있었다. 체코인 의원들의 의사 진행 방해가 절정에 달했던 1908년 2월부터 1909년 여름까지, 히틀러는 의회 방청석에 자주 나타났다. 훗날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젊은 시절에 가졌던 의회제에 대한 동경을 버리게됬을지도 모른다.]
인용 : 몽유병자들: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133-134 페이지
걍 억지로라도 미대 입학 시켜줬어야 했음
럭키군붕이 그자체
미대를 가지말고 정치외교쪽으로 가던가,.,,
오헝새끼들 의회돌아가는 꼴보고 의회제 혐오자가 됐다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