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좌측은 옹진반도, 중간은 연백평야, 우측은 개성.
옹진반도는 1949년 중순부터 국경분쟁이 연대급으로 확대되었고 국군은 1사단 12, 13연대를 증원하였음. 이에 미 군사고문단은 1사단의 병력 이동이 개성, 연백의 방어태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음. 다만 1949년 11월 옹진반도의 경비, 방어는 독립 17연대가 맡으면서 옹진의 1사단 병력은 다시 원위치하였음.
전쟁이 발발하고 17연대가 사전에 수립해놓은 작계대로 철수하였음에도 워낙 전황이 급박하고 철수작전의 디테일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지라 결국 중장비를 망실한 걸 보면 1사단이 옹진까지 맡았을 경우 벌어질 상황은 실제 결과보다 더 처참했을 거임.
그리고 연백평야와 개성 일대는 새로 수립된 방어계획에 따라 1사단 12연대가 맡았는데 방어정면은 63km였음. 연백은 3대대, 개성은 2대대, 그리고 개성 후방에 예비로 1대대가 배치되었었음. 참고로 12연대의 방어정면는 38도선에 배치된 다른 국군 사단에 필적했고, 1사단이 다부동 전투에서 상림동~다부동 간에 설치한 방어선보다 3배 길었음. 물론 경찰로부터 경계 지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이 10여 km 발생했으며, (참고로 경찰은 야간에 근무를 서지 않았단 증언이 있음) 전쟁 직전에는 장병들의 휴가, 외출 등이 이뤄지면서 개전 당일 12연대의 경계 병력은 800여 명이 전부였음. 이러니 최근 연구대로 북한군이 개전 전에 이미 산에서 내려와 개성시까지 침투할 수 있었겠지.
더군다나 연백평야나 개성이나 교통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금새 고립되어버린다는 문제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음. 미 군사고문단과 1사단이 전쟁 전에 실시한 CPX에서 12연대는 괴멸 판정을 받았으며 북한이 남침해왔을 때, 12연대는 위에 언급한 모든 문제들이 다 터져나오면서 계획대로 임진강을 넘어 사단 본대에 합류한 이들은 연대장(부상)과 소수 병력 뿐이었고 나머지는 분산 철수하여 한강을 건너 강화도와 김포반도로 가야 했음. (이때 일부는 사단으로 복귀하였으나 2대대, 3대대 일부는 서부전선 자체가 백도어 당한 탓에 김포지구전투사령부으로 배속), 아니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음.
아 참고로 개전시 1사단은 개성과 연백을 포기하고 임진강을 연해 단계적으로 적을 방어하기로 작전계획을 짜놓았는데 워낙 담당구역의 넓이가 조실부모한 탓에 12연대가 개성에서 후퇴하면서 생긴 빈 공간으로 북한군 6사단이 김포반도에 드랍해버렸음. 공간사에선 이 문제의 책임을 육본으로 돌림.
38선 위의 임진북예성남정맥과 해서정맥 (멸악산맥)을 먹지 못하면 남측에서 저 세 곳은 방어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수준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