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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50년 11월 8일 군우리에서 터키군들이 중공군 포로를 무장해제 시킨다'는 설명이 들어가 있음.


그런데 저 두 포로는 한국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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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방한장구류는 중공군을 연상시키는 누비솜옷이었음. 이 옷은 유엔군이 북진에 들어간 1950년 10월 경 강추위로 유명한 평안도, 함경도에서의 작전을 염두해두고 대한민국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보급한 것이었음. 미군의 스키파카 디자인을 참고하여 국방색 면포 속에 목화솜을 넣은 이 옷은 뒤집어서 입으면 설상위장복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음. (이는 중공군도 동일함.)


국방부는 이 누비솜옷을 '국산'이라고 선전했으나, 실제로 기능성에서는 미군의 방한장구보다 훨씬 뒤떨어졌음. 사정이 되는 장교들이나 장군들은 죄다 미군옷을 구해서 입음.


그래도 이 옷은 11월쯤 되니까 전방에서 진군중인 부대들에게 꽤 많이 지급되어 한국군에게 최소한의 보온성을 제공함. 흥남철수 사진들에서 보이는 한국군 부대는 대부분 이 솜옷들을 착용한 것을 볼 수 있음.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당시 덕천에서 중공군에게 격파 당해 후퇴하던 한국군들이 군우리에 주둔 중이던 터키여단의 방어선에 도달하였고, 터키군들은 누비솜옷을 입은 눈 째진 동양인들을 죄다 중공군이라고 생각하고 오인사격을 가함. 이 때문에 한국군 상당수가 죽거나 다쳤으며 포로로 잡힌 후에야 진상이 밝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