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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7대왕 세조 시기.



조선의 동북면인 함경도와 맞닿은 두만강 유역 여진족들은 아주 고달픈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얘네는 조선 개국세력인 이성계 집안의 진퉁 나와바리 소속이었던 탓에 조선 개국과 동시에 조선의 속국 비스무리한 처지로 대충 딸려 들어갔는데, 개국 초기에 몇 번 크게 털려나간 것 빼고는 그래도 그럭저럭 원래 친분도 있고 해서 나름 동북면은 큰 일 없이 조선 말 들으면서 대충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만주 및 몽골지역의 유목민들에게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견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명나라가 이를 두고보지 않았으니.


명은 지속적으로 만주 일대 여진 부족들을 여러 위로 나누어 분할 통치하고 명나라 휘하로 포섭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여진족 입장에서는 조선 따까리로 가만히 있자니 천하의 대국인 명의 눈치밥이 장난 아니고 그렇다고 '어이쿠 우리 큰성님 밑으로 드가겠습니더~'하려고 했다가는 원래 왕초인 조선이 대번에 줄빠따를 휘둘러대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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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보면 얘네가 지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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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보면 얘네가 지랄하는 상황.



그래서 대충 두만강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추고 있던 모련위, 그 중에서도 일대의 왕초 노릇을 하던 니마차부를 중심으로 동북면 여진족들은 명으로부터는 신종하면서 얼렁뚱땅 관직 같은 걸 받아 넘기고, 동시에 실질적으로는 조선에 사대하는 일종의 중립외교로 눈물 젖은 눈치밥을 집어 삼키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런다 이 애매한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건 좀 안타깝게도 세조의 유화책이 발단이었다. 


세조는 즉위 초기부터 동북면 여진족들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쳤다. 세종대 서북면 파저위 정벌 이후로 조선 북방의 여진족들은 대거 쫄아붙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인지 세조 초기에는 서로 간의 관계가 어지간히 소원해졌는데, 이걸 그나마 확실하게 조선 따까리 순도가 높았던 동북면을 중심으로 타개하려고 했던 것. 이것저것 선물공세도 하고 주요 부족들의 추장도 불러들여서 술도 멕이고 하는 등 세조는 정력적으로 동북면 여진족들을 위무했다. 


헌데 이게 좀 과했는지 역으로 니마차부를 중심으로 조선이 자기네들을 한 빳따 돌리려고 시동 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병이 도져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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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잘해주는 거 보이, 조만간 말 안듣는 애들 걸러낸답시고 빳따 돌릴 각이 보인다이."



개중에 제일 겁에 질린 사람이 바로 니마차부의 족장 낭발하안이었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세조가 여진 족장들을 불러들였을 때 몸이 아파서 참석을 못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주옥될 각이 선 것으로 오인한 낭발하안은 전에 명나라로부터 받아든 관직을 십분 활용해서 이참에 조선에 개겨보기로 한다. 


그렇게 곧 낭발하안을 다시 불러들이는 세조의 사신이 니마차부를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여진족들이 화살을 겨누는 사태가 터지고 만다. 거기다 세조의 힐난에도 니마차부는 아예 제대로 개겨 보기로 했는지 대충 '우리가 잘못해쏘'라고 변명은 하면서도 조선의 말을 들어먹지 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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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건사고는 고대로 조선 조정에 전달되었는데.


모련위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니마차부의 낭발하안이 마음대로 명나라의 관직을 받아들고, 거기다 조선 조정에 대놓고 반항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의 반응은 순식간에 살기를 띄기 시작한다. 조선 입장에서는 여진족을 사이에 두고 명나라와 대놓고 기싸움 중이었는데 명에 가까운 서북 여진족도 아니고 조선 나와바리라 여겨오던 동북 여진족의 거추가 명나라로 휘떡 넘어가려 든다는 소리였으니 당연히 용납이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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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발하안의 운명은 걱정했던 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낭발하안의 일가 전체가 조선군에게 체포 당해 고대로 전원 참살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낭발하안의 아들이 조선 몰래 명나라로 직접 넘어가려다 체포 당했다고 하는데, 낭발하안 나름대로 어떻게든 칼 맞기 전에 명나라의 뒷배를 얻어두려 수를 썼던 것 같다. 근데 잡혀부렀으요.


피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인데, 이 와중 낭발하안의 아들 중 하나였던 아지거가 간신히 목숨줄을 간수하여 탈주하는 병크가 벌어진다. 


조선에 일가 전체가 도륙 당한 아지거는 원한에 피눈물을 흘리며 곧장 니마차부를 결집시키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모련위 전체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개중 가장 세력이 컸던 니마차부는 모련위의 여러 부족들을 설득하거나 힘으로 위협하여 휘하로 끌어들인 뒤 본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조선 성니메가 어지간히 두려웠던 여러 소부족들은 조선에 협력하여 아지거의 움직임을 조선 측에 제보하는 등 본격적으로 동북면에 전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 와중 어지간히 승질머리가 상한 명나라는 세조에다가 '느네 왜 우리 관직 받은 명나라 신하를 아무 통지도 없이 참살함? 미쳤음? 지금 대드는 거임?'이라고 한 소리 던졌으나 이미 서로 눈깔에 핏발이 서기 시작한 시점에서 명나라의 힐문은 세조에게 가볍게 씹히고 만다. 


아지거의 공세는 세조 6년 두만강이 얼어붙은 한겨울인 1월에 감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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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기에 달하는 모련위 여진족 대부대가 두만강을 넘어 조선의 회령부를 급습한 것. 



이전까지 동북면 여진족의 준동이라고 하면 여러 소부족들이 대충 몇십 기, 정말 많이 들고 일어나봤자 몇백 기 정도로 깔짝대던 것이 큰 난리였다. 근데 갑자기 천기 대로 규모가 불어난 놈들이 약탈전 깔짝도 아니고 대놓고 조선 행정구역을 향해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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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발렸다.


조선군은 조선 쪽에 협력하는 여진족들의 제보를 미리 받아 700명의 병력이 대기 타고 있었다. 



회령부를 둘러싼 책성 외부의 목책 일부를 허물고 밀고 들어온 여진족이었지만 대기하고 있던 조선군의 반격에 크게 대응도 못하고 털려나갔다. 짧은 접전 끝에 20여 명이 참살 당한 여진족은 몰고 온 숫자가 무색하게도 더 이상의 공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후퇴했고, 그날 밤 성 밖 목책과 성문에 불을 지르는 등 간을 봤지만 그게 끝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역으로 조선군이 출진해 여진족을 몰아붙였고 모련위 대부대는 그대로 흩어져 줄행랑을 놓고 만다. 


이후 2달이 지난 3월 아지거는 다시 한 번 휘하 여진족들을 규합해 회령부로 쳐들어오는데, 이 때 병력은 고작 1백여 기. 병력이 10분지 1로 줄어든 것을 보면 1차 공격 때 조선에게 단단히 털려나가 여러 부족들이 일시에 이탈해버린 모양이다. 이 3월 전투에서는 아지거까지 요격에 나선 조선군에게 사살 당하고 만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린 전투였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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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게는 이제 줄빳따의 명분이 생겨버린 셈이었으니까.



조선은 본격적으로 동북면 여진족들을 위압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동북면 여진 족장들의 입조 및 조공 사례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니마차부의 야심찬 반항도 졸전으로 끝나버리자 본격적으로 조선의 살기에 질려버린 여러 부족들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조선은 입조하는 여진 족장들을 적당히 위무하면서 은근한 어조로 위협하는데, 바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시 조선에 협력하여 살기를 도모하라'는 위협이었다. 거기에 여진족 여러 부족 간의 사이도 이간질하여 니마차부를 상대로 원한이 있던 여러 소부족들에게는 니마차부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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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조선군의 공격준비는 착착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경도 전체의 경계태세가 강화되었고, 전체적인 준비를 감독하기 위해 함길도 체찰사로 세조의 측근이었던 신숙주가 파견되었다. 거기에 원정군 준비를 위해 전국 여러 지역에서 철과 목재 등의 군수물자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병력 또한 인근 북방지역인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병력이 차출되었고 삼남지방에서도 병력들이 몰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준비기간 내내 세조는 원정군 준비태세에 대해 일일이 직접 보고 받으며 원정 준비를 주도했고, 각궁 등 여러 병기들의 분배와 보급에도 차질이 없도록 지시하는 등 아주 작정하고 모련위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각오를 내비친다. 



어찰(御札)로 구치관(具致寬)·홍윤성(洪允成)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야인(野人)들이 발호(跋扈)하여 중국(中國)의 명(命)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서 이를 무서워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사(每事)에 명(命)을 어기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가볍게 보고 야인(野人)과 비교하여 양국(兩國)으로 보니,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능히 오랑캐를 제어(制御)하지 못한 소치이다. 지금까지 야인(野人)들이 와서 침입할 적마다 중국에서는 문책(問責)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양 명(命)을 따르는데, 야인(野人)들이 날마다 이와 같이 교만(驕慢)하여진다면. 나라의 위신은 다 깎여서 장차 중국의 군(郡)·현(縣)이 되고 말 것이다. 지혜스러운 자는 싹이 나기 전에 본다는데, 어느 때에나 볼 것인가? 내가 분(憤)하여 밤낮으로 문득 누웠다가 문득 일어났다가 하면서 활을 끌어 잡고 칼을 어루만지지만, 이윽고 책을 펴고 거문고를 뜯으면서 얼굴을 억지로 두터이 하여 말하고 웃는다. 이미 일을 꾀할 사세(事勢)가 아니니, 경륜(經綸)390) 할 기회를 바로잡도록 할 뿐이요, 능히 번거롭게 말할 것이 없다. 애오라지 고굉(股肱)의 신하와는 서로 마음으로 통하니, 가을이 깊어지기까지 기다리도록 하라."하였다.



조선에게 있어 이번 전쟁은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드는 동북면 여진 세력에 대해 이탈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조선의 동북면 나와바리를 갉아들려는 명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여기까지는 건들지 마라'라는 경고등을 띄우려는 시도였다. 목숨줄이 걸린 모련위는 물론이거니와 공격하는 입장인 조선 측에서도 물러 설 수 없는 한 판이었던 것. 상황이 오죽 심상치 않았는지, 서북면의 건주위까지 조선의 눈치를 보며 입조하기 시작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전쟁 준비에 매진한 세조가 명령한 작전 개시의 기일은 그 해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