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4월 24일,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독일제 전차 A7V는 이전에 연합군이 맞닥드렸던 노획된 자국전차와는 확연하게 다른 존재였다.
이는 연합군의 상부가 1918년 4월 24일의 전투에 등장한 독일 기갑부대 자체보다 그 기갑부대의 구성전력을 분석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이 때 독일군에게는 불운이었지만 연합국에게는 쾌재가 아닐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A7V 542호 "Elfriede"를 온전한 상태로 노획하는것에 성공한것이었다.
A7V 542호 "Elfriede"는 작전 당일 포격에 의해 만들어진 구덩이에 걸려 전복되어 독일군이 유기한 전차였다.
독일군은 견인을 시도하였지만 시간과 장비 부족으로 폭파나 장비파괴같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유기하고 후퇴하였는데 이것을 프랑스와 영국측이 발견하여 후방으로 이송하는것에 성공하였고 해당 전차는 곧바로 정밀조사에 들어간다
조사 항목은 대체적으로 전차의 장갑에 집중하여 이루어졌는데 이는 독일이 자력생산한 전차의 장갑이 기존의 연합국 병기로 상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신무기 개발의 방향과 전술의 변화가 불가피했기때문이었다.
장갑의 분석은 피탄실험과 장갑 표본을 통한 성분, 특성 검사로 이루어졌고 이번 글에서는 피탄실험 당시의 결과를 서술하려한다.
장갑 표본 검사의 자료는 (https://blog.naver.com/skforhrl/220977639838)에서 확인 가능하다.
1918년 6월 30일에 1046/3번 총사령부 산하 북북동 주둔군 - EM 3부서를 통해 하달된 피탄실험은 1918년 7월 1일부터 5일까지 전선 후방의 Bourron이라는 장소에서 프랑스군이 보유하고있는 37mm Bethléem속사포와 37mm Puteaux속사포의 유효성을 검증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검증은 크게 포병화기와 보병화기로 나누어져 시험할것을 명령받았는데 포병화기를 사용한 실험의 경우 장갑의 대탄능력을 시험하기위한것이고 보병화기를 사용한 실험은 파편발생으로 인한 승무원 부상발생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실험이다.
이 글은 포병화기시험 결과만을 다룬다.
(시험장소 항공사진.1)
(시험장소 항공사진.2)
(시험장소 항공사진.3, 시험결과 대조군으로 사용하기위해 함께 배치된 프랑스제 Schneider전차)
포병화기 실험 결과
(37mm Bethléem, 미제 속사포로 원어는 Bethlehem이지만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불어로 대체표기되었다)
37mm Bethléem속사포 피탄실험
사격 거리
-200m
-100m
-50m
사용탄종
-고폭철갑탄(제식명 불명)
사격 대상
-A7V 정면장갑 (30mm)
-A7V 측면장갑 (20mm)
-A7V 후면장갑 (16mm)
-실험결과 대조군으로 사용하기위한 프랑스제 Schneider전차 장갑 (16mm)
결과
사격거리 200m와 100m에서의 고폭철갑탄 피격은 전면(30mm)과 측면(20mm)의 장갑에 깊이 약 1~3mm의 피탄흔을 만들어내었으며 후면(16mm)의 장갑에서는 지름 30cm의 원의 형태로 분포된 깊이 약 1~4mm의 날카로운 피탄흔을 만들어냄
후면 한정으로 같은 부분 피탄 3회째에 이르자 장갑 가장자리에 균열발생
사격거리 50m에서 전면(30mm)과 측면(20mm)의 피격부위는 작은 반구형의 피탄흔이 생겼으며 관통자체는 실패하였지만 피탄흔에 의해 장갑이 변형되어 피탄면의 뒷면에서 튀어나온 부분이 관측됨
후면(16mm)의 경우는 피탄흔의 깊이가 더 깊고 피탄면 반대쪽으로 돌출된 흔적이 더 뚜렸해졌으며 장갑 가장자리에 30cm가량의 균열이 생긴것 이외에는 전면, 측면과 동일
시험 이후 회수된 탄두는 타원형 모양으로 형상이 변형되었으며 이는 관통상을 입히기에 탄의 재질이 무르다는것을 보여줌
시험 대조군으로 사용된 Schneider의 장갑(16mm)은 사격거리 100m의 피탄시험부터 장갑이 완파되어 두동강 나버림
(37mm Puteaux, 르노에 장착된 주포와 동일한 속사포이다)
37mm Puteaux속사포의 피탄실험
사격 거리
-100m
-50m
사용탄종
-고폭탄(Mdle 1916)
-해군용 철갑탄(제식명 불명)
사격 대상
-A7V 정면장갑 (30mm)
-A7V 측면장갑 (20mm)
-A7V 후면장갑 (16mm)
-실험결과 대조군으로 사용하기위한 프랑스제 Schneider전차 장갑 (16mm)
결과
-고폭탄(Mdle 1916)
불발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격거리와 모든 방면의 장갑에 피탄시 피해를 주지못하고 연기만 관측되었으며 그 어떠한 형태로든지 장갑의 변형이 관측되지 않음
시험 대조군으로 사용된 Schneider의 장갑(16mm)은 약간의 피탄흔이 생성됨
-해군용 철갑탄(제식명 불명)
사격거리 100m와 50m에서 전면(30mm)과 측면(20mm)의 관통은 실패하였지만 탄두가 장갑에 깊게 박혔고 탄두의 충격에 밀려 형성된 그릇모양의 피탄흔은 그 가장자리가 매우 날카로웠으며 후면(16mm)은 관통직전에 탄이 진행을 멈춤
해당 시험에서 전면 측면 후면 모두 유의미한 수준의 파편이 발생함
시험 대조군으로 사용된 Schneider의 장갑(16mm)은 사격거리 100m의 피탄시험부터 장갑이 관통됨
이 실험결과를 토대로 프랑스군은 37mm구경의 포가 대전차임무를 수행할수 있는지에 대해 최종적으로 정리하게 되는데 원본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끔찍하리만치 소용이 없다"라고 평가하였다.
이어서 평가하길 궤도나 기타 구동계통에 한해서는 유효타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여지나 궤도가 외부에 노출된 연합군측의 전차들과 달리 A7V는 이 부분들이 장갑으로 가려져 사실상 명중을 노릴수 없을것이라고 서술하였다.
결국 프랑스군은 37mm구경의 포가 A7V대상으로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37mm Bethléem속사포를 장비한 176포병연대의 제101, 제107, 제109, 제117 대전차포부대는 해체되었다.
이 때 남겨진 37mm Bethléem속사포들은 최전선에서 무의미할것이라는 상부의 판단에 따라 퇴역처분되었고 프랑스 각지의 공원이나 포병학교의 전시물로 전락하게되었다.
37mm Puteaux속사포 또한 절망적인 실험결과로 인해 르노의 주포로 사용되는것을 끝으로 본격적인 대전차임무를 상정한 전차에게서는 퇴출시키기로 결정되었으며 차기 전차의 주포 구경은 반드시 75mm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장착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생겼다.
이 결정은 당시 프랑스가 개발중이던 FCM 2C중전차의 주포선정에 큰 영향을 미쳐 기본 주포의 구경이 37mm가 아닌 75mm부터 시작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파급효과가 컸던 실험이었던 만큼 프랑스군은 그에 대처하기위해 대전차전술과 병기에 관하여 당시로서는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들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는 헛수고를 한 셈이 되었다.
경기일으키게 만든놈이 20대만 만들어지고 끝날줄 누가 알았을까.


갈수록 이걸 전차로 취급해줘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ㄴ전탄 방어성공했는데 왱
에칠비가 생각보다 튼튼했네요? 1대전 전차는 20밀리만 넘어가도 간당간딩해지는줄 알았는데
ㄴ아무래도 실험에 사용된 포가 대보병전 특화이다보니 그렇긴한데 당시 널리 쓰이던 포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튼튼했단걸 알수있음
근데 기관포는 또 다른문제라 그건 다음에 쓸 보병화기편을 기대해주쎄용
난 가끔 1차대전기전차관련 국내 최고의 권위자는 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ㄴ좆문가일뿐인데스...
생각보다 튼튼한관짝이였네
A7V쨩 체고다-! - dc App
끔찍하리만치 소용이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원문이 저럼?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