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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28일, 강화-파주 섹터를 담당하던 한국군 제1사단은 북한지역 후방을 타격하기 위한 유격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1.4 후퇴 이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있던 강화도에서 민간인 1,240명을 선발하여 직속 유격대인 ‘제5816 부대’를 편성함. 이들은 처음에는 편의대(便衣隊)라고 불렸으며, 한달간의 훈련을 받고서 강화도 방위는 물론이고 해안침투, 첩보활통, 유엔군 파일럿 및 피난민 구조등을 수행하며 중공군의 측면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음. 



1951년 4월 4일, 1사단 지휘부는 중공군이 차기 공세를 위해 병력을 집결 시키는 것을 관측하고선 주공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황해도 지역에 대한 대규모 게릴라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함. 이에 따라 5816 부대는 한강 이북의 요충지인 개성과 개풍군 일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함.


이에 따라 개성공격을 위한 3개 중대가 편성됨. 1중대는 전원 개성 출신 대원들로 채워졌고 2중대와 3중대 역시 전부 황해도 출신들이었음.





수차례에 걸친 정찰등을 통해 방어선과 감시초소를 파악한 유격대는 1951년 4월 9일 새벽, 강화도 북부의 철산포에서 나룻배에 나눠타고  개풍군 남면 당두포에 기습상륙함. 이들은 근처 감제고지를 지키던 북한군 2개 소대를 섬멸한 뒤, 1중대와 2중대가 개성시내로 진입하였고 3중대는 개풍군 일대를 점거함.


5186부대는 돌입 4시간만에 용산동까지 진입하였으며, 이곳에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북한군을 완전히 몰아낸 뒤 도시 대부분을 장악해버림.


이들은 개성에 남아있던 반공인사들을 불러모아 무기를 나눠주고 치안유지를 맡김. 4월 11일에는 아예 1사단 소속 정찰대까지 지원을 왔음.


눈 뜨고 개성을 빼앗긴 북한군과 중공군은 1951년 춘계공세에 투입할 예정이었던 상당수의 병력을 후방으로 빼내야 했음.


미공군과 1사단 포병대의 화력지원을 받은 유격대는 15일간 개성을 사수하다가 다시 강화도로 철수함. 또한 이 기간동안 공산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간인들 수백명을 강화도로 소개시켰음. 중공군 162명 사살, 북한군 장교 27명 생포라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5816부대는 사단장 표창장을 받았음.



이에 빡친 중공군은 4월 22일, 70만명을 동원한 춘계 공세를 펼쳐 의정부를 넘어 서울 북쪽 8km 지점까지 치고 내려옴. 하지만 유엔군의 방어에 가로막힌 중공군은 서울을 손에 넣는 것에는 실패함. 유엔군은 5월말 대대적인 반격을 펼치기에 앞서, 중공군의 배후를 흔들어 놓기 위해 5816부대를 이용하여 또 한번 개성일대를 공격하는 작전을 입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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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23일, 5816 부대 180명은 김포지구의 한국 해병대와 미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개풍군 월포, 영정포에 상륙함. 하지만 저번 작전과 달리 이번에 미군은 5816부대에게 주간에 상륙할 것을 요구함. 어차피 이건 적의 시선을 돌리는 양동작전인데다가 미군은 5816부대의 작전역량을 직접 보고 싶어했음.


하지만 조수간만이나 풍향 등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낮에 목선  수십척이 한강 하구를 건너오자 북한군의 집중 사격을 받았고, 유격대는 상륙하기도 전에 수십명이 전사, 포로가 됐음. 


하지만 5816부대는 밤이 되자 재충원한 병력까지 동원하여 다시 상륙을 감행했고 기어이 북한군의 방어선을 뚫고 개성 시내까지 진출했지만 단 몇시간만에 철수함


2차 상륙작전에 투입된 유격대원 180명 중 단 38명만이 생환했음. 결국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음.





이후로도 6월 11일에는 훨씬 더 많은 600명 규모의 2개 제대가 3차 상륙작전을 벌여서 6월 14일 또 다시 개성시내에 발을 들였음. 하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은 유격대가 시내 중심부까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포위섬멸을 시도함. 결국 이번에도 상당수의 유격대원들이 전사하였고 살아남은 병력은 미군의 공중지원이 이어지는 틈을 타서 강화도와 김포로 분산탈출했음.


참고로 이때 개성에 진입한 유격대원들은 고향집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뵙기도 함. 개성에 남아있던 이들의 가족들도 유격대가 3번이나 찾아오자 아마 곧 전쟁이 끝나겠구나 싶어 함. 철수할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대원들이 가족들에게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인사를 올렸음.


하지만 그 이후로 5816부대는 다시는 개성 땅을 밟지 못함.



반복되는 작전으로 더 이상 기습효과가 먹히질 않자, 유엔군 사령부는 이들을 더 이상 개성에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음. 그래도 나름대로 적의 배후를 충분히 뒤흔들어놨다는 것에 만족했고, 1951년 7월부터 5816부대는 미군 소속의 '주한 유엔유격군(UNPIK)'에 편입되어 황해도 남부섹터를 담당하는 유격대인 울프팩(Wolfpack) 부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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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LzBpJGE50HY&ab_channel=

최초 공개 1951년 4월 12일 강화 유격대(컬러화)최초 공개 1951년 4월 12일 강화 유격대해당 흑백 영상을 발굴하여 올드튜브 채널이 세계 최초로 직접 컬러화 제작하였습니다. 주요 장면은 설명을 위해 자막을 기재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국내에 최초로 발굴 소개되는 강화유격대의 활동 모습을 담았습니다. 배경음악 No.5 Th...www.youtube.com



위 동영상은 현존하는 5816부대의 유일한 영상자료임. 보다시피, 부대원 대부분이 요즘 기준으로도 매우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