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이 기존의 국궁 대신에
조총을 주무기로 사용해서
교환비를 올렸다고 생각
조선 선조 때 이미 여진족(훗날 청)의 기병이
중국 갑옷을 착용해서 활을 다 튕겨냈고
최신 화약무기인 승자총통으로 잡을 수 있었음
조선 북방군이 일반적인 유엽전(조선군 표준 화살)
이외에 착전(화살촉이 긴 화살)을
대대적으로 사용한걸 감안하면
여진족 기병의 갑옷 수준이
조선군의 강력한 활, 특수 화살로도
못 뚫을 정도로 향상됬었음
(*조선초까지는 여진 기병 중에 철갑옷을 입은 자가 거의 없고
화살촉도 종종 동물뼈를 갈아서 만들었을 정도였는데..)
조선군의 활도 각궁이 쎈거지
목궁 죽궁은 타국의 활보다 우위에 있지 않은데
조선 후기 기준으로 각궁은 활 중에서 50% 내외였음
조선군이 조총 대신에 활로 주무장을 하였다면
내 예상에는 활 중에서 각궁은 많아야
30%이지 않을까 싶음
각궁이 충분하지 않은걸 조선군이 참고했는지
조선 후기 병법서에는
조총이 활보다 10보 먼저 발사함
병자호란 때 조총이 주무기가 아니였다면
팔기군의 견고한 갑옷에 화살이 튕겨서
조선군의 몇 안되는 공세 저지도 아주 어려웠을 것임
쌍령전투 때 조선군 군관이 팔기군에게 화살을 여러번 날렸지만
나무 방패에 전부 막혀서 아무 효과가 없었던 기록도 있음
경상도 근왕군 몇 명의 조총 사격이
군관의 움직이는 기병을 맞추는 활솜씨보다
더 위력적이었던 것임
조선이 일본군에게 조총을 배운게
의도치 않게 갑옷이 향상된 북방 민족을
적절하게 상대할 수 있게 된 결과를 낳았음
각궁과 편전의 조합이었다면 대응 가능했을걸? 다만 이게 애깃살을 쏠대 통아를 사용해야 했기에 일반 궁보다 제대로 다루는데 숙련도가 상당히 필요했던터라 일반 습사수들보다는 군관급 이상의 숙련된 무사들이 써야 제위력이 나왔던터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게 컸던거 같음
그리고 솔직히 여름만 되면 높은 습도와 온도때문에 아교가 풀어지고 해서 각궁도 흐물흐물해지는 조선날씨를 생각한다면 화승총으로 편제를 바꾼건 잘했다고 생각이 되긴함 다만 화층총의 가장 큰 단점인 짧은 사거리와 긴 장전시간을 커버할수 있는 야포술과 더불어 연속사격 대형과 뒤를 받쳐줄 대기병용 파이크병과 같은 준비없이 사르후로 내보냈던게 너무 큰 패착이었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