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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어떤 군붕이가 공군 포병으로 포탄 세례 깔면 육군이 들어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올려 쓰는 글이다.

육군에겐 공군과 포병을 카운터치는 뽀삐 궁이 있다. 지금은 케일 궁이라고 해야할듯.

바로 '땅파고 들어가기'

위 사진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유일하게 쪽바리보다 사상자가 많았던 이오지마 전투 사진이다.

당시 이오지마는 제일 긴 쪽이 9km가 안되는 코딱지만한 섬이었는데 여기 주둔중일 일본군은 2만여명. 지금 한국군 기준 약 2개 사단급이 주둔중이었다.

당시 이오 섬 주둔군 지휘관이었던 구리바야시 중장은 병사들에게 땅파고 들어가기, 산파고 들어가기 신공을 지시했고,

여기에 미 해군과 해군항공대는 무려 9개월 동안 고폭탄 찜질을 해주었는데 그러고도 저 2만명을 전부 쓸어버리는데 실패했다.

참고로 저 고폭탄 찜질이란게 지금 기준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화력이었는데 주력 투사수단이 무려 '함포'였다.

한국군 K9 155mm가 약 6인치인데 당시 미군 전함 주포는 최소가 12인치~중함포는 16인치였다. 지면에 착탄하면서 생긴 탄공에서 물받아놓고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미군들이 부르던 별명이 수영장제조기였을 정도. 그리고 당시 전함의 주포는 보통 9문에서 12문이었는데 이걸 한 척도 아니고 수 척이 수개월 동안 함내 탄약고가 텅 비도록 쏴갈겼다. 전함이 사라진 지금은 되려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화력지랄이었던 셈.

정작 상륙개시일 기준으로 상륙군은 10일간의 추가함포지원을 요청했으나 포탄이 부족해 3일 밖에 더 못 쏠 정도로 쏴갈겼다.

그러고도 저 코딱지만한 섬에 꽉꽉 들어찬 일본군 2만명 중 과반수 이상을 못 죽였다.

결국 이오지마 전투는 미 해병대 상륙군의 피로써 종료되었고.

물론 지금은 벙커버스터가 존재해 일부 지하갱도는 타격이 가능하겠지만 방어군이 각잡고 파놓은 갱도 전체에 그 비싼 벙커버스터를 박아주는건 그 미군도 억 소리 나올 정도의 돈지랄이니, 앞으로도 땅개들의 땅파고 들어가기 신공은 당분간 쭉 유효할 예정 되시겠다.

결론은 폭탄 포탄 찜질로 대비되어있는 육상병력을 궤멸시킨다는 발상은 허상이고,

설사 궤멸시켰다해도 그걸 확인하려면 보병이 들어가야한다.

이러나 저러나 점령은 보병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