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때보다 도쿄폭격쪽이 피해가 더 컸는데도 항복은 커녕
저기 나가노 산골짜기에 대본영을 옮겨서(마츠모토 대본영) 버틴다는 아큐보다 더한 곤조를 가진 놈들이라 좀 더 쌘 폭탄 떨어졌다고 겁을 먹지 않지
결정적인 이유는 외교적으로는 일본과 중립상태인 소련이 갑자기 만주로 와서 그것도 빠른 시간에 관동군을 개박살내고 조선과 사할린을 점령하니
소련의 본토침공이 현실화 되었고 완전히 좆됐다는걸 이제서야 안 군부에선 무조건 항복함
히로시마때보다 도쿄폭격쪽이 피해가 더 컸는데도 항복은 커녕
저기 나가노 산골짜기에 대본영을 옮겨서(마츠모토 대본영) 버틴다는 아큐보다 더한 곤조를 가진 놈들이라 좀 더 쌘 폭탄 떨어졌다고 겁을 먹지 않지
결정적인 이유는 외교적으로는 일본과 중립상태인 소련이 갑자기 만주로 와서 그것도 빠른 시간에 관동군을 개박살내고 조선과 사할린을 점령하니
소련의 본토침공이 현실화 되었고 완전히 좆됐다는걸 이제서야 안 군부에선 무조건 항복함
소련이 만주 관통하던 시점에 이미 히로히토가 항복을 결정했기 때문에 소련이 일본 본토 운운은 너무 비약임. 다만 대충 8월 10일 쯤에 항복하자 그랬는데 군부가 하도 삐대서… - dc App
어전회의에서 이른바 성단이라고 명확하게 천황 본인이 그만하자라고 의사표명한건 니가 말한 8월 10일의 일임. 그 이전의 2차례의 원폭 투하를 다룬 대본영연락회의/내각 각의 에서도 항복은 결정되지 않았음
왜냐면 그 때까지도 일격화평 이외에 항복 같은 소리를 입밖으로 꺼낸 자가 아무도 없었잖음. - dc App
그런데 어떻게 천황이 항복을 소련이 만주 관통하는 시점에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냐, 내각이고 중신이고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한걸 혼자 결정하고 끙끙거렸다는거임?
소위 성단이 결정된 게 8월 10일이고 자바이칼 방면군이 요이 땅 한게 8월 9일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음? - dc App
9일 소련의 침공 이후 하루만에 3방면군이 만주국 수도 점령하고 뤼순까지 밀고 내려온 것도 아니잖아. 관동군과 참모본부도 마비상태에 빠져서 파악을 못하는 만주 전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련을 통한 평화협상 가능성이 0이 되었고, 향후 소련이 세력 확장을 이뤄 일본의 장래 정치지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 화평파가 항복하자고 압박한건데?
그거는 오해한 거 같은데. 나는 시점상 그랬다는 걸 언급한 거고 만주의 전황이 소위 성단에 영향을 끼쳤다 말하지는 않음. - dc App
적어도 수상이 항복을 결심한건 소련참전 영향이 맞음. 스즈키가 대놓고 소련 들어오기 전에 미국선에서 끝내야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