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볼은 양구군 북쪽의 해안면에 위치한 분지이며 정식 명칭은 해안분지. 한국전쟁 시절 미군 장군이 이 분지가 마치 운석을 맞아 뻥 뚫린 원형의 모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펀치볼이라는 영어 별명을 붙여 주었고 우리에게는 해안분지보다 이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함


펀치볼은 주위가 높은 고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하며 또한 병력과 물자의 집결지로 제격인데다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형으로 양구와 인제 방면으로 동시에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라 국군, 유엔군이 그렇게 힘든 전투를 치러 찾은 소중한 지역임


이 펀치볼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들을 치렀는데 그 중 펀치볼 북서쪽에 있는 가칠봉을 차지하기 위한 가칠봉 전투는 우리가 승전한 여러 전투들 중 하나


가칠봉에서 북쪽에 있는 고지들 중 1211고지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함


1211고지는 산의 높이가 1211m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가칠봉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사분계선 바로 위, 북한의 비무장지대에 위치함.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금강군 청두리에 속하며 1945년 기준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청두리에 속함. (청두리는 기존의 청송리와 두포리를 합해 신설한 리)


이 1211고지의 위치는 펀치볼 북서부의 가칠봉 바로 위쪽에 있으며 좌표는 북위 38도19분13초, 동경 128도04분43초에 위치

아래는 1211고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다음으로는 1211고지의 위치 및 고지를 주변으로 한 지형도를 구글 어스 2D, 3D로 나타낸 지도

: 빨간색 표지로 된 곳이 1211고지이며 가칠봉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

(아래 두 지도는 남쪽에서 1211고지와 그 북쪽을 바라본 지형도. 분지는 말 그대로 펀치볼)




(아래 지도는 북한 측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본 1211고지 및 그 이북의 지형도)



이 주변의 고지들 중에서도 1211고지는 군사적으로 엄청나게 중요성이 큰 고지인데 이는 이 고지를 북한이 사수함으로서 금강산을 방어하고 지킬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동부전선이 북쪽으로 후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


그럼 왜 1211고지가 중요성이 이토록 큰 지 위의 지도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1. 펀치볼의 북서쪽인 가칠봉과 그 능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1211고지는 이보다 더 북쪽으로는 점점 고도가 낮아지며 이 축선의 북쪽으로는 1211고지만한 높은 산이 없음


2. 만약 북한이 1211고지를 우리에게 빼앗긴다면 우리는 이 1211고지를 이용해 그 북쪽의 능선들과 금강군 서쪽의 협곡, 분지들을 모두 감제할 수 있게 되고 그럼 북한은 이 축선을 방어하지 못하고 쭉 위로 밀려나게 됨


3. 그럼 우리는 금강산을 기준으로 동쪽의 고성군 지역과 서쪽의 양구-내금강 축선에서 모두 금강산을 에워싸 공격할 수 있으며 그럼 북한은 금강산을 동쪽, 서쪽, 남쪽의 3방면에서 공격받아 포위되므로 방어를 할 수 없게 됨


4. 이렇게 금강산을 우리가 수복하게 되면 여기를 발판 삼아 더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럼 서로 간의 전선 평형점이 이루어지는 곳은 강원도 통천군 부근이 됨


즉 1211고지를 우리가 수복했다면 이 고지를 기준으로 연쇄적인 작용을 일으켜 금강산을 빼앗고 강원도 통천군까지 전진하게 되었을 것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9월 경 동부전선의 요충지인 펀치볼을 완전히 수복하고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벌어진 가칠봉 전투에서 승리하여 남쪽으로 움푹 내려온 만곡부를 없애고 전선을 한층 더 안정화 하였음


이렇게 펀치볼을 완전히 우리가 안정적으로 지키고 방어할 수 있게 한 다음 국군과 유엔군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빼앗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었음


그러나 1211고지를 공격하기 전에 그 바로 아래인 1052고지를 먼저 빼앗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에 따라 먼저 1052고지를 공격하여 탈환하였는데 이는 지형상 1052고지를 먼저 빼앗지 않고서는 1211고지를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이 1052고지를 확보한 국군과 유엔군은 이제 1211고지를 빼앗기 위해 1951년 10월 말 1211고지를 향해 공격을 개시

-> 국군은 841고지와 1052고지 양쪽에서 북쪽의 1211고지를 향해 공격함


그러나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오성산과 마찬가지로 이 1211고지도 군사적 가치가 매우 큰 고지인 만큼 죽을 힘을 다해 사수하고 절대 빼앗기지 말라고 당부함. 북한군은 국군이 사력을 다해 북진하고, 유엔군과 미군이 하늘 위에서 수없이 포격을 하였음에도 이를 어떻게든 사수하였고 우리는 북한, 중공군의 공격으로 한 때 밀려나 1052고지까지 빼앗겼으나 다행히 1052고지를 다시 탈환하였지만 1211고지는 확보하지 못한 채 이 전선이 그대로 휴전 때까지 유지되었고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게 됨


엄청난 폭격으로 이 고지의 높이는 원래보다 1m나 낮아졌다고 하며 양구군 최전방에 근무하는 군인이라면 가칠봉 등에서 이 1211고지를 항상 잘 볼 수 있음


해당 전투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올라온 간행물 중 6.25 전쟁사 제9권-휴전회담 개막과 고지쟁탈전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 -> https://medcmd.mil.kr/user/imhc/upload/pblictn/PBLICTNEBOOK_201509150449393490.pdf


북한은 이 1211고지를 끝까지 미군, 국군의 공격과 포격으로부터 지켜 냈다고 대단히 선전하고 있으며 이 고지를 사수함으로서 금강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며 휴전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숭상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음

https://www.joongang.co.kr/article/1332905#home (가칠봉 전투, 고지 쟁탈전)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5/2008072501326.html (북한 주민들, 금강산을 남조선에 빼앗겼다)


아래는 1211고지를 수복했을 경우 바뀌었을 동부전선의 예상도이며 노란색으로 표시

(단 어은산은 지금처럼 북한이 끝까지 사수하였다고 가정)

-> 어은산을 지나고 나서 바로 군사분계선이 급격히 북쪽, 북동쪽으로 휘게 되며 현재 금강군, 고성군 및 통천군의 남부를 모두 대한민국이 수복하게 됨

-> 만약 어은산까지 우리가 빼앗았을 경우 중동부전선 쪽도 더 급격히 북상하게 되어 금성지구는 물론 임남호 및 금강산댐 주변까지 다 수복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