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날씨 맑은 날 원철원 지역 즉 철원읍에 있는 백마고지 전적비를 다녀와 찍은 백마고지 풍경들을 소개하고자 함


우선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세리에 있는 해발 395m의 고지이며 좌표로는 북위 38도18분, 동경 127도08분에 위치하고 구 철원읍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12km 떨어져 있음

-> 군사분계선에 판문점에서부터 북동쪽으로 올라오다가 갑자기 꺾여 위도와 대체로 수평으로 양구 펀치볼 북방까지 따라가는 것으로 바뀌는 변곡점에 위치 (즉 군사분계선이 상대적으로 북한 쪽으로 가장 돌출되어 나간 곳에 해당)

-> 이 모양을 보고 상당수 사람들이 군사분계선이 여기서 급격히 남서쪽으로 내려가 한강 하구까지 가는 대신 그대로 수평으로 쭉 서쪽으로 달려 (대략 북위 38도 19분선) 서해까지 닿는 선으로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아쉬워도 함 ㅋ 

(현 황해남도 과일군과 장연군까지 감. 게다가 38도선 분단 때와 달리 해서정맥=멸악산맥 일대를 다 확보해서 방어할 라인도 만들기 쉽고 북한의 재령평야를 일방적으로 감제할 수 있어 전선이 길어져도 지금보다 매우 유리해짐)


이 백마고지는 역사가, 군사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대부분 알 정도로 유명한 고지이며 이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인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사 수업에서 항상 언급될 정도로 매우 유명함


한국전쟁 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갑자기 밀려난 1.4후퇴 이후 전선을 가다듬고 유엔군과 국군은 다시 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으나 곧 이어 중공군은 봄 무렵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의 공격, 즉 춘계 공세들을 벌임


이로 인해 서울을 자칫 한 번 더 공산군에게 빼앗길 뻔 하기도 했으나 서울 북쪽에서 잘 물리쳐 다시는 서울을 공산군에게 공격받는 걸 허용하지 않게 하였고 유엔군 사령부는 방어에 필요한 여러 선들을 (캔자스선, 유타선, 와이오밍선, 신캔자스선, 제임스타운선 등) 설정하면서 서서히 북진함

-> 이 서울을 다시 빼앗기지 않게 된 사실은 전쟁의 큰 변곡점이 되었는데 이는 이미 두 번이나 서울을 적에게 점령당했던 경험과 전선의 변화를 고려하면 한 번 더 서울을 적에게 내주면 자칫 전선이 한강 일대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


1951년 중반부터는 전선의 급격한 변동은 점점 줄어들고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양쪽 모두 인지하였음. 


이로 인해 전쟁을 쉬자는 휴전, 즉 휴전을 위한 협상이 1951년 7월 개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때부터 실제 휴전이 이루어진 1953년 7월 27일까지 양측은 장장 2년 동안 고착화된 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에 걸쳐 고지들을 서로 하나라도 더 뺏으려는 고지쟁탈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이 고지쟁탈전 2년 동안 발생한 부상자, 사망자 수는 전쟁 초기 1년 동안의 것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이 때 참혹한 전쟁의 실상이 가장 많이 나왔음


이 고지쟁탈전에 대해 고작 고지 하나 먹으려고 쓸데없이 인명과 물자를 갈아 넣었다면서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지를 하나 먹는다는 것은 그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 수km 내지 넓게는 수십km의 땅을 같이 방어하고 지킬 수 있으냐 아니면 방어 못해서 결국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에 폄하하면 안 됨

->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의 아픔과 노고를 생각해야 하며 생명의 존엄성과 전쟁의 잔혹함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나 그 전쟁의 가치를 깎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국민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함

-> 해당 고지가 얼마 반경의 땅 범위를 감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지는 고지의 높이, 고지 주변의 지형, 고지에 인접한 다른 고지의 수 및 거리 등에 의해 결정됨

-> 고지가 높을수록, 해당 고지 주위에 다른 고지가 적을수록 감제하는 반경은 더 넓어지며 그만큼 중요성도 더 큼 (예: 오성산, 어은산, 대성산, 백암산, 1211고지 등)

-> 반면 고지가 낮을수록, 해당 고지 주위에 다른 고지가 많을수록 감제하는 반경은 더 줄어들며 그만큼 중요성은 더 작음 (중요성이 매우 낮은 고지는 그만큼 전쟁에서 양쪽 모두 먹으려고 사활을 걸지도 않았고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해 포기하기도 함)


실제로 38도선 분단 시절 개성 지역과 옹진반도, 연안반도는 이 곳을 방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임진북예성남정맥과 해서정맥 (멸악산맥) 줄기가 모두 북한 영토여서 이 지역이 북한의 고지들에 일방적으로 감제당했기 때문에 방어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음. 또, 한강 이북의 서울은 남측에서 방어하려면 북악산~북한산~도봉산 줄기들을 확보해야 방어가 가능하며 이 산들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한강 이북의 방어가 불가능하므로 결국 한강 일대까지 후퇴해야 함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하면 그 고지만 잃는 것이 아닌 고지가 감제하는 해당 반경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버려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백마고지도 지형 구조상 이런 측면에서 중요성 및 가치가 매우 높은 고지임


아래는 백마고지 주변의 지형도 (아래 하늘색 표시가 백마고지, 북한 영토에 표시된 철원읍이 안협)

-> 백마고지의 북쪽으로는 안협에서 평강으로 가는 좁은 보조 통로가 위치. (산과 산 사이라 좁음.)

-> 그 보조 통로 위로는 마식령, 아호비령 산맥의 봉우리들이 끝임없이 이어지며 북으로 갈수록 고도가 올라감

-> 백마고지의 남서쪽으로는 철원읍에서 안협을 거쳐 임진강 넘어 황해도 토산으로 가는 통로가 위치

-> 백마고지의 남동쪽으로는 철원평야 중부 일대가 펼쳐짐

-> 백마고지의 북동쪽으로는 평강고원이 위치





위 지형도를 토대로 알 수 있는 백마고지가 가진 군사적인 중요성은 다음과 같음


1. 백마고지는 북쪽으로는 더 높은 산들이 펼쳐지는 반면 (아호비령 산맥 및 마식령 산맥의 줄기가 끝없이 펼쳐짐) 남쪽으로는 광활한 철원평야가 펼쳐짐

-> 지형도에서 철원 위로 이천, 판교, 법동 등 북으로 끊기지 않고 펼쳐지는 아호비령 산맥, 마식령 산맥을 보면 됨


2. 이 백마고지를 북한이 차지하게 되면 철원평야가 북쪽으로부터 방어가 불가능하게 되어 우리는 철원평야 중부 일대를 방어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이 중부 지역을 다 포기하고 전선을 남쪽인 고대산-금학산까지 후퇴해야 했음


3. 또한 이렇게 되면 철원평야 중부를 전부 북한이 장악하게 되므로 남측 입장에서 철원과 김화를 동서로 잇는 통로를 활용 못하게 되거나 혹은 아예 빼앗겨 버리게 되며 북한은 안협과 평강을 잇는 보조 통로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되고 토산-안협-철원 간 동서 통로도 확보해 이용할 수 있으므로 이는 군사적으로 북한에게 매우 유리해짐

-> 황해도-강원도 간 연결이 38도선 분단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보다 훨씬 원활해짐


4. 반면 백마고지를 우리가 차지하게 되면 철원평야 중부 일대를 북쪽에서 감시하고 방어할 수 있는 고지를 얻게 되며 이로 인해 안정적인 전선 유지가 가능하게 됨


5. 따라서 우리는 철원과 김화를 동서로 잇는 통로를 완전히 차지하여 이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반면 북한은 안협과 평강을 잇는 보조 통로를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전선에 너무 가까운데다 백마고지에 의해 감시당하게 되므로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함

-> 실제로 안협과 평강을 잇는 통로는 현재 북한이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상태

-> 북한이 이용 가능한 황해도-강원도 간 동서 연결 통로는 신계-지하리-이천-평강이며 여기는 산맥 사이 낮은 구릉, 평야를 지나는 토산-안협-철원 통로에 비해 험한 산맥을 뚫어 선형이 불량해 활용 가치가 낮음 (지금 청년이천선은 선형이 불량하고 북한은 이를 제대로 활용 하나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됨)


이 백마고지는 1951년 9월까지 북한, 중공군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철의 삼각지대의 남쪽인 철원과 김화를 차지하기 위해 북상하였고 유엔군 수뇌부는 이 철원평야 중부를 안정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백마고지가 매우 중요하며 어떻게 해서든 탈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림. 따라서 양측은 이 고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1951년 10월 6일부터 시작해 15일까지 장장 열흘 동안 하루도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벌어졌고 서로 빼앗고 뺏기기를 반복해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끝에 결국 국군이 최종적으로 이를 사수하였고 이 이후 백마고지는 다시는 북한, 중공군에게 넘어가지 않게 됨


이로 인해 철의 삼각지대의 반 이상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북한은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와 강원도를 가장 원활하게 연결하는 동서 통로를 차단당해 한국전쟁 이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고 이 점은 역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음 (평강고원은 북한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서 간 연결이 어렵기는 해도 가능함)


아래부터는 작년 봄에 다녀온 백마고지 전적비 및 백마고지의 모습들임


우선 주차장에서 정자까지 따라 올라가며 찍은 사진들임


그리고 아래는 정자에서 훤히 보이는 백마고지와 주변 비무장지대, 민통선 풍경들임

서쪽으로는 안협을 거쳐 토산 방면으로 가는 동서 축 통로가 펼쳐지고 바로 앞에 백마고지가 선명히 잘 보임

그리고 백마고지 오른쪽 저 뒤로 김일성고지가 가려진 상태로 관찰되고 북쪽 방면으로는 평강고원이 넓게 펼쳐지며 지평선이 보임




(아래 사진에서 들판 바로 앞에 말이 누워있는 형상이 백마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