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삼각지대와 황해도 남동부 사각지대를 모두 관통하는 중부 축선의 통로, 즉 영남-원주-춘천-철원-신계-평양 통로를 소개하고자 함
해당 통로를 아래 지도에 노란색으로 표시하였음
-> 영남에서 올라와 죽령을 넘어 영서지방의 원주, 횡성, 홍천, 춘천, 화천을 차례로 거쳐 김화, 철원으로 향함
-> 철원에서 서쪽으로 황해도-강원도 간 연결 통로를 지나 임진강을 건너 황해도 토산으로 진입 (그 유명한 황강댐은 이 통로와 임진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위치)
-> 토산에서 북서쪽으로 신계, 수안, 연산을 거쳐 언진산맥 방원령을 넘어 상원, 평양까지 도달
-> 남한강 중상류 유역 (단양, 제천, 원주, 횡성) - 북한강 중상류 유역 (홍천, 춘천, 화천) - 한탄강과 임진강 중상류 유역 (김화, 철원, 안협) - 예성강 중상류 유역 (토산, 신계, 수안) - 대동강 유역 (연산, 상원, 평양)을 서로 연결
-> 춘천 분지와 철의 삼각지대와 황해도 남동부 사각지대 및 황해도 북동부의 신계곡산용암대지를 모두 경유
-> 한강 하류, 임진강 하류 및 예성강 하류, 재령강 유역을 모두 거치지 않는다는 중요한 지리적 특성이 있음
이 영남-원주 간 경로는 예로부터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 제천을 지나 원주를 통해 서울로 가는 길로도 잘 활용되어 왔으며 현대에도 중앙선 및 중앙고속도로 건설로도 가치가 발휘되고 있음
-> 죽령로는 서울-영남을 최단거리로 잇는 이화령, 조령 루트에 비해 동쪽으로 우회하며 보은-상주 간 화령이나 영동-김천 간 추풍령 루트는 서쪽으로 우회하고 있음
-> 원주에서 북서쪽으로는 중앙선 철도가 양평을 거쳐 서울로 연결되고 북동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와 KTX 경강선이 강릉까지 잘 뚫림
-> 원주에서 더 북쪽으로는 횡성, 홍천을 지나 춘천까지 중앙고속도로가 잘 건설되어 영서를 남북으로 잘 이어주고 있ㅇ,ㅁ
-> 중앙고속도로는 현재 춘천이 종점인데 더 연장해 북쪽으로 화천, 김화를 지나 철원까지의 연장을 고려 중
-> 통일 후 철원에서 북서쪽으로 지나 이천, 곡산, 신평, 양덕을 거쳐 평안도, 자강도 내륙으로 가는 안이 장기 계획안
-> 또한 만종역에서 출발해 횡성-홍천-춘천-화천-김화를 지나 철원역까지 가는 영서내륙선이 장기 계획안
-> 철원역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안협, 토산, 신계, 수안, 연산을 지나 동평양까지 가는 관서내륙선이 통일 후 장기 계획안
-> 춘천에서 더 위로 가면 화천인데 화천에서 북서쪽으로 마현리 또는 수피령을 넘게 되는데 이 마현리 고개는 한북정맥이 지나는데 이 한북정맥은 임진강, 한탄강 수계와 북한강, 금성천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
이 곳을 넘으면 서쪽으로 향해 김화를 거쳐 철원평야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철원평야에서 서울에서 의정부, 동두천, 연천을 거쳐 올라오는 경원선로와 서울에서 의정부, 포천을 거쳐 올라오는 경흥로와 X자로 교차하게 되며 이 경원선로와 경흥로는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가 추가령, 철령을 넘어 원산으로 향함
한편 철원평야에서 더 서쪽으로 가게 되면 대마리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는데 아호비령 산맥과 마식령산맥을 북쪽으로 두고 임진북예성남정맥을 남쪽으로 두는 동서 방향 통로가 잘 펼쳐져 있음 (산맥 사이로 낮은 구릉과 평야)
이 통로로 현재의 안협, 즉 북한 철원군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게 되며 그 유명한 황강댐이 이 곳에 위치) 황해도로 접어들면 토산으로 향하는데 토산에서는 서쪽 방면으로는 금천, 평산으로 연결되며 여기서 경의선, 개성평양고속도로와 만나 서쪽으로는 사리원을 거쳐 평양으로, 남쪽으로는 개성을 거쳐 서울로 갈 수 있음
한편 토산에서 북쪽으로 꺾으면 신계곡산용암대지가 펼쳐지는데 이 신계곡산용암대지는 화산 폭발에 의해 산들이 깎이고 지대가 평평해지면서 생긴 넓은 대지로 동쪽의 평강고원과 철원평강용암대지와 나란히 쌍벽을 달리는 용암대지임. 이 신계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수안군이 나오고 여기에서 평양-원산고속도로와 만나서 연산군, 상원군을 지나 (연산-상원 사이에서 언진산맥 방원령을 넘게 됨) 드디어 평양에 도달
이 노란색 통로의 군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로 영남지방, 영서지방에서 서울과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평양과 관서지방으로 오갈 수 있다는 게 핵심 (즉 영남-영서-철원-산중삼읍-관서를 연결)
-> 이는 남한강, 북한강 중상류 유역에서 한강 하류 및 예성강 하류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동강 유역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가짐
실제 삼국시대부터 이 통로는 군사적으로 엄청나게 활용이 되었는데 고구려가 백제, 신라를 향해 남진을 할 때도 매우 자주 이용을 하였으며 신라가 전성기 이후 고구려를 향해 북진할 때에도 자주 이용 하였음
1. 고구려가 남진을 할 때 백제 쪽을 치려면 연백 치양성을 함락한 후 한강하구, 예성강을 넘어 관미성을 점령하고 그대로 임진강 유역과 한강 하류 일대로 진출하는 것이 기본
2. 그러나 이 경우 백제는 여전히 임진강 이남을 장악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한강 중상류, 남한강 유역을 그대로 영유할 수 있어 고구려가 남진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
3. 바로 이 점을 간파하고 고구려는 저 위의 루트를 통해 평양에서 서울,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 남동쪽으로 우회해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을 공략하고 점령했음
4. 남한강 일대인 충주, 제천, 원주와 북한강 일대인 가평, 춘천을 점령한 고구려는 백제의 물줄기를 동쪽에서 차단할 수 있게 되었고 백제의 영토는 북쪽으로 임진강-감악산-소요산-왕방산-포천-내촌-남양주-양수리 선으로 축소되게 되는데 이는 고구려는 백제를 북서쪽, 북쪽, 북동쪽, 동쪽에서 모조리 포위할 수 있게 됨
5. 이로 인해 백제는 추후 475년 장수왕의 침략시 고구려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개로왕이 살해당하고 도읍을 멀리 남쪽 웅진으로 내려감
결국 이 통로의 가치를 효율적으로 알아보고 적극 활용한 고구려의 남진으로 백제는 요소 하나하나가 빼앗기게 되면서 결국 한성 함락을 초래하게 되었고 또 고구려는 신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펼쳤는데 신라를 칠 때 바로 이 통로를 매우 잘 활용했음
1. 평양에서 신라 영역인 소백산맥 이남으로 진출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음
2. 첫 번째는 원산까지 먼저 낭림산맥을 뚫어서 간 후 그곳에서 그대로 동해안을 따라 계속 남하하는 방법
-> 영동 지방으로 가서 동해안을 따라 쭉 영남까지 직으로 남하
3. 두 번째는 위 노란색 루트를 통해 신계, 철원, 춘천, 원주를 지나 쭉 남하해서 죽령을 넘어 경상도로 내려가는 방법
-> 산중삼읍, 철원, 영서 지방을 차례로 경유해 죽령 넘어 영남으로 남하
4. 장수왕의 남진은 이 두 가지 경로를 다 사용하였는데 백제의 영역이었던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지배를 어느 정도 공고화 한 후 이 영서 지방을 발판으로 그대로 죽령을 넘어 경상도로 진출할 수 있게 됨
5. 그 기세를 몰아 길지는 않지만 고구려의 남하 한계는 동쪽으로 경북 북부는 물론 한때는 포항 북쪽까지도 내려올 수 있었음
게다가 진흥왕 이후 신라가 전성기를 맞고 급격히 영토가 북쪽으로 늘어난 후 신라는 중부 축선의 이 통로를 적극 활용하여 고구려의 남진을 막아내고 고구려를 향해 공격하였으며 실제 고구려와 신라는 임진강 중류, 한탄강, 북한강 상류 유역에서 서로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전선을 형성함. 또한 백제 멸망 후 고구려 멸망 시기 신라는 이 통로를 이용해 철원을 거쳐 황해도로 진입하였고 평양성까지 북진할 수 있게 됨
그 후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철원에서 세력을 키우고 나라를 세운 뒤 첫 수도를 개성(송악)으로 잡았지만 머지않아 다시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몇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신라를 치기 위해 남진하기에 개성보다 철원이 더 적격이었기 때문
-> 즉 위 통로를 따라 철원에서 영서를 거쳐 그대로 영남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개성보다 신라 남침이 더 수월했다는 것이 장점
게다가 한국전쟁 시기에도 백선엽 장군과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통로, 축선이 한반도 중부의 군사적 뼈대라고 직접 일컬었으며 이 뼈대를 잘 지키고 사수하는 것이 승리, 패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하였음
-> 북한이 남침할 때 북한은 철원, 김화 지역으로부터 화천을 거쳐 춘천 방면으로 남침함
-> 우리가 북진할 때 철원, 김화 지역을 수복한 후 여기서 서쪽으로 향해 신계, 수안 방면으로 진출해 평양을 동쪽에서 공격하였음
즉 정리하자면
1. 영남-영서-철원-산중삼읍-평양을 잇는 경로는 한반도 동남부인 영남지방과 영서지방에서 서울을 거치지 않고 바로 관서지방으로 오갈 수 있는 중요한 통로
2.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있어서 이 통로는 군사적 가치가 엄청 높았음. 즉 백제의 중심지역인 한성 유역을 먼저 뚫지 않고 주변지역인 영서지방을 먼저 우회해서 점령하여 백제의 방어를 취약하게 만들고 물줄기를 차단하고자 하였음
3. 고구려는 평양에서 이 통로를 통해 백제의 영토였던 북한강 유역인 가평, 춘천, 화천을 점령하고 남한강 유역인 원주, 충주, 제천까지 점령해 백제를 북쪽은 물론 동쪽에서도 포위할 수 있게 되었고 백제의 물줄기를 차단하는 성과를 거둠. 이 성과는 475년 장수왕의 한성 점령 시 매우 큰 이점으로 작용했고 백제는 한성을 함락당하고 수도를 웅진으로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음
4. 이 영서지방의 지배를 공고히 한 후 고구려는 신라에 대해서도 이 통로를 적극 활용해 그대로 동남쪽으로 향해 죽령을 넘어 경상도로 진출하게 되어 신라 쪽으로도 크게 남진할 수 있었음
5. 신라가 진흥왕 이후 영토를 확장한 후에도 신라는 이 통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고구려의 침공을 막고 고구려에 대하여 공세를 펼칠 수 있었으며 고구려 멸망 시 평양성으로의 진출 및 함락에도 활용하였음
6. 한국전쟁 시기에도 북한과 중공이 남진할 때, 한국과 유엔이 북진할 때 모두 주요하게 이용하여 가치가 매우 높은 통로였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 중부의 군사적 뼈대라고 불림
https://ggc.ggcf.kr/p/5bf284c88ba1f97bb60a2fcc
-> 임진강 유역 통로에 대한 지리적, 역사적 정보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용으로 좋음
아래는 이에 대해 언급되어 있거나 주요하게 다루는 대표적인 역사지리 논문들을 소개하고자 함 ->
4세기 후반_5세기 초반 고구려의 남진과 임진강 유역 지배방식
5_6세기 고구려의 남진과 영역 범위
고구려 남진 양상
고구려 유적을 통해 본 고대 연천
고구려의 백제 공격과 남진
백제 초기의 동,북방 진출
한성 백제의 교통로 상실과 웅진천도
신라비와 신라의 철원 진출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지배
삼국시대 임진강 유역 관방체계와 덕진산성
동북으로 가는 길의 역사적 전개― 慶興路에서 京元線으로
임진강 용암대지의 분포 및 지형 발달 과정
신립이 나대지말고 계획대로 조령고개에서 우주방어만 했어도 임란 초기 양상이 180도 달랐을텐데 에휴
농민들 위주의 지방군으로는 그게 어렵다고 판단했던 거지
고구려 온달이 이 루트로 신라 공격하다 전사한 건가요? - dc App
ㅇㅇ 평양에서 위 통로로 신라를 공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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ㄳㄳ. 문헌들, 자료들 읽어보니 철의 삼각지대가 삼국시대부터 중요하게 이용된 요충지인 이유가 다 있더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