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이었으나 신라에 의해 버림받은 궁예는 신라에 반기를 들기로 결심하고 양길 밑에 부하로 들어감
세력을 키운 궁예는 양길로부터 독자적으로 독립을 하였으며 현재 철원 지역을 근거지로 두고 무섭게 성장하였는데 이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울 결심을 하게 됨
여기서 개성 출신의 유력한 호족인 왕융은 궁예의 큰 세력을 보고 진작에 궁예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하고 아들 왕건을 궁예의 신하가 되게끔 함. 그리고 궁예에게 개성의 수도로서의 장점을 설득하며 개성으로 수도를 정하게끔 하였으며 결국 궁예는 901년 개성을 수도로 후고구려를 세움
하지만 머지않아 4년 뒤인 905년 궁예는 다시 자신의 옛 근거지인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선포를 하고 다시 철원으로 돌아갔음
이 궁예의 철원으로의 이전은 아무 이유 없이 한 것은 절대 아니며 나름의 근거들이 있었음
1) 개성에 세력을 둔 호족들이 힘이 너무 세지고 이들을 왕으로서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
-> 그러려면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호족들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고 개성 호족들의 성장도 꺾임
-> 실제 철원으로 옮긴 후 개성 호족들을 견제하고 궁예는 더 왕권을 키울 수 있게 됨
2)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는 것을 후고구려 건국의 목표로 삼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북으로 올라가 도읍을 정하는 것이 수월함
-> 이 말은 근거가 있는 것이 실제 서울과 평양 간 중간에 있어 서울, 평양 방면으로의 진출만 수월한 개성과 달리 한반도 중부의 중앙에 자리잡은 철원은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잇는 통로의 교차로에 있어 동서남북 어디로든 진출하기 수월한 요지임
-> 한국전쟁 시기에도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한 후 북진을 할 때 이 철원 지역을 차지한 후 동시에 원산과 신계-평양 방면으로 동시 진격하였음
3) 신라 왕족 출신으로 신라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해
신라를 멸도로 부르며 신라를 무너뜨리고 싶은 궁예는 신라 진출을 위해서 개성보다 철원이 더 낫다고 생각함
-> 실제 철원에서는 춘천, 원주를 거쳐 죽령 넘어 영남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이용해 개성보다 신라를 공격하기 더 유리했음
-> 철원은 서울-원산의 경원선로, 경흥로 축선 외에 남동-북서 방향으로 원주-춘천-철원-신계-평양을 잇는 통로가 지나는데 이 통로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가 남진할 때, 신라가 북진할 때 항상 중요하게 이용된 경로임
4) 개성은 의외로 동쪽으론 임진강, 서쪽으론 예성강, 남쪽에는 한강하구가 있어 부지가 좁고 도시의 확장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는데다 북쪽으론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남북 30km에 걸쳐 길게 자리잡고 있어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도시의 확장은 불리한 형국
-> 이 문제는 고려 시대 내내 발목을 잡았으며 실제 고려 때에도 수도를 개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고 함
5) 철원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농업에도 유리하고 또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가 빙 둘러싸고 있어 방어와 공격에도 엄청 유리한 위치로 요새의 기능을 함
-> 실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 후의 조선과 한국전쟁 시기 남북한 모두 이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를 매우 중시하였음
-> 북한과 중공은 한국전쟁에서 이 지역을 매우 중시하고 다시 되찾기 위해 38도선 원상복귀를 매우 강하게 주장함
아래는 철원이 있는 철의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지나는 통로들을 나타낸 지도
-> 좌측 사각형이 황해도 남동부 사각지대 (한포리, 시변리, 침교리, 평산), 우측 삼각형이 철의 삼각지대 (철원, 김화, 평강)
아래 지도는 위 지역을 더 확대하여 보조 통로들까지 표시한 지도
-> 좌측 사각형은 황해도 남동부 사각지대, 우측 삼각형은 철의 삼각지대
-> 하늘색 실선은 주요 통로, 노란색 점선은 보조 통로
아래는 영남에서 영서지방, 철의 삼각지대, 산중삼읍 ( 신계, 수안 지역)을 거쳐 평양으로 오가는 중요한 통로를 표시한 지도
-> 즉 영남에서부터 단양-제천-원주-횡성-홍천-춘천-화천-김화-철원-안협-토산-신계-수안-연산-상원-평양을 이어주는 경로
아래는 소이산 전망대에서 북쪽과 서쪽으로 바라본 철원평야의 전망이며 말 그대로 드넓은 고원, 평야가 펼쳐짐
-> 북쪽으로는 가깝게는 철원평야, 멀리는 평강고원이 먼 거리까지 조망됨
-> 서쪽으로는 철원읍의 철원평야가 펼쳐지며 그 너머로 안협을 거쳐 임진강 너머 황해도 토산으로 가는 통로가 펼쳐짐
그러나 철원은 주요한 교통의 교차로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는 아주 제격이나 수도로서는 부적합했다는 것이 문제임.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음
1) 철원을 흐르는 한탄강은 강 양옆의 절벽들이 경사가 높고 지형이 험하며 무엇보다 강 폭이 좁아서 내륙 수운이 도저히 불가능함
-> 고대, 중세 시대에는 강으로 배가 드나들면서 내륙 수운이 가능하냐 여부가 매우 중요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도로서 영 꽝임
-> 실제 지금도 임진강-한탄강 수계는 장단 호로고루, 고랑포까지만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그보다 상류로는 폭이 좁아져 배가 다니기 매우 어려움 (임진강의 경우 한 때는 황해도-강원도 경계에 있는 안협까지도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함)
2) 넓은 평야가 자리잡아 농업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중세 시절의 철원평야는 개발과 개간이 되지 않아 농업 생산력이 지금에 비해 훨씬 낮았음
-> 실제 철원평야가 황금빛 벼가 출렁거리고 맛있는 오대쌀이 나는 곳이 된 건 1923년 평강군 봉래호가 완공된 후임.
-> 이 봉래호를 이용해 농업에 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철원평야의 생산성이 급증하게 됨
3)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겨울의 혹독하고 무서운 추위임. 일명 시베리아 같이 철원의 겨울이 춥다고 해서 붙인 별명 철베리아
아래는 1월 한파날 철원의 기온으로 북쪽의 중강진, 북만주,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추운 철원의 겨울을 알게 해 줌
-> 물론 아래는 기압계 배치가 워낙 특이해 극단적으로 저렇게 나온 경우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철원은 대한민국 지역에서도 독보적으로 추움
-> 북한으로 가도 청진 이남의 동해안 지역은 물론 황해도의 경우도 북동쪽 산악지대인 신계, 수안, 곡산을 제외하면 철원보다 겨울이 더 따뜻함 (평양이 철원과 겨울 기온이 비슷하다고 보면 됨)
궁예는 신하들이 다 반대했는데도 혹한지 철베리아로 고집을 부리고 수도를 삼은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반성하지 않고 겨울이 너무 추워 하나같이 감기에 걸려 기침 소리를 해대자 기침 소리 했다고 철퇴로 신하를 때려 죽이는 미친 짓을 벌임
결국 이러한 궁예의 만행과 너무 심한 겨울의 엄청난 추위를 못 견딘 왕건과 신하들은 참다참다 결국 못 참고 918년 드디어 반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 궁예는 처음에 군사를 이끌고 철원-포천 경계의 명성산에 올라가 비탄한 심정을 통곡하며 울었다고 하며 계속 쫓기게 되자 다시 북으로 달아나 평강고원 너머 강원도 세포군의 어느 한 마을에서 몰래 이삭을 훔쳐 먹다 분노한 농민들의 손에 맞아 죽었다고 함
-> 궁예의 무덤은 강원도 세포군에 있어 분단 상태인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리고 1년 뒤 왕건은 신하들도 찬성하고 자신의 가문의 기반이기도 한 개성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게 됨
일단 개추 먼저 누르고
철의 삼각지대랑 사각지대는 연재할때마다 계속 나오는구랴
충청도쪽 호족들이 궁예파가 많았다던데 그쪽도 못 믿었던 모양이네
충청도는 후백제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사실 후백제도 전라도 기반이긴 했었을건데.. ㅋㅋ 어찌됐건 전선에 붙여서 도읍을 잡을 수는 없었던게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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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철원평야로 우리 땅이고 멀리는 평강고원이고 북괴 땅 ㅋ
북쪽 방면으로는 평강읍, 오리산, 검불랑 보이고 저 멀리 끝이 추가령임
그래서 북쪽으로는 원산과 함경도로 갈 수 있고 서쪽으로는 황해도로 향해 사리원, 평양으로 갈 수 있음
통일되면 옥뮤다에 비견되는 철뮤다가 들어설 것 ㅎㅎㅎㅎㅎ
그래도 통일되면 입지가 너무 ㅆㅅㅌㅊ라 지역거점도시 이상으로 성장할거같은
금강산선 부활하고 여기서 서쪽으로 평양으로 가는 관서내륙선, 남동쪽으로 춘천과 원주로 가는 영서내륙선 신설할 가능성 높음
통일됐다면 천지개벽급으로 달랐을 건 확실하고 우리가 청천강-원산 선까지 북진하거나 중공이 평택-삼척 선까지 남진한 대체역사였다면 얼마나 발전했을지 궁금해지는 지역
아마 춘천 ~ 천안 어딘가? 정도 되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 도청 이전관련 이야기도 나오던 곳이라.. 통일되면 대박이긴 할듯요
늘 감사
어째 개성 철원 관계가 후한시대 장안 낙양이 생각나냐
2년 군생활 동안 지겹게 봤지만 개인적으로 철원은 통일 이후에도 개발 못하게했음 좋겠음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라
나 군생활할때 겨울에 제설작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화동이랑 산정호수인가 그 주변 지나가다가 어떤 선임이 그러더라 군대만 아니었으면 진짜 절경이라고 - dc App
택배 철원 hub 생김
위성 사진만 보다가 갑자기 평야가 쫘악 펼쳐지는 사진 보니 감이 확 오네 - dc App
아예 평양으로 가면 안되었을까? 신라랑 싸워야하는데 너무 멀어서 그런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