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아프가니스탄 함락 시리즈???
· 버림 받은 자의 이야기-레트로그레이드(NGC 다큐)




기사의 내용은 22년 10월 기준임.



이 글을 쓴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진은 탈레반의 협조 아래 취재를 하였다. 당연히 일부 편향 적인 인터뷰와 내용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선 요약


1. 기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은 쳐 망해야 하는 개XXXX 국가다.


2. 아프가니스탄 상태 노답, 탈레반도 심각한 걸 인지하고 있음.


3. 탈레반 좋다는 사람은 있긴 함. 그대신 말할 자유 포기해야 함. 국가 전체가 입 다문 벙어리임.


4. 그럼에도 저항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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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탈레반에 의해 멸망되고 1년 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탈레반의 협조를 받아 함락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취재를 갔다.(물론 이건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탈레반의 유화책일 가능성이 크다.)


취재를 나온 기자와 사진 작가는 모두 아프가니스탄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기자의 경우 이 순환 도로에서 수 없이 많은 탈레반의 습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생사를 오갔지만, 지금은 탈레반의 협조 하에 취재를 하고 있어서 다행히 긴장감은 덜하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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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말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로 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2003년 미국 특사 잘메이 칼릴자드의 말


아프가니스탄 순환 도로 즉, 1번 국도는 1950년대와 60년대 냉전 관계의 소련과 미국이 카불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였다. 이 도로는 미국의 막대한 자금(약 40억 달러, 지금 환율로도 한화 5조 2,060억 원의 금액이다.)으로 건설되었다. 심지어 일부 구간은 치안 문제로 인해 1.6Km 당 500만 달러의 막대한 비용이 들어 가기도 했다.(호스트주와 팍티아주의 50Km 일대)


그러나 막대한 자금이 든 이 순환도로는 탈레반의 테러(2014년 기준, 아프간 군대는 6개월 동안 200개의 폭탄을 발견했다. 찾지 못한 일부는 당연히 터졌다.)와 부패로 인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완전히 황폐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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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시의 아프가니스탄 순환 외곽 도로, 22년 취재 당시에도 곳곳이 탈레반의 폭탄 투하로 인해 구멍 투성이가 되어 있다. 워낙 위험한 상태라 트럭들은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럭 기사들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당시를 회상한다. 급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부패가 만연한 지난 정부로 인해 경찰들이 화물 운송을 허락한 대가로 뇌물을 요구했으며, 지금 탈레반 정부는 그런 부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망가진 도로의 보수는 어린 아이들이 하루에 2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파인 곳을 흙으로 메우며 보수한다. 망가진 도로를 보수할 남자는 없다. 성인들은 병자거나,먼 곳으로 도주했거나, 마약 중독자 밖에 없다.


그들은 취재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겉으로 다시 찾아온 질서 회복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번 탈레반 역시 지난 탈레반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들의 절망감도 커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아프가니스탄 점령 이후 탈레반은 관용을 약속했지만, 이슬람 종파 간의 갈등은 커지고, 항복한 옛 정부군을 즉시 처형하며, 여성 인권에 탄압하는 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 원조에 의지해 왔던 지난 정권과는 다르게 이번 탈레반 정권은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지 못해 인구의 95%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취재 팀은 취재하면서 미국이 원조한 막대한 근대화 사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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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아프가니스탄 국회의원 로샤나크 워다크(Roshanak Wardak)


"이것은 이슬람교가 아니에요. 탈레반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가 송두리째 바뀌었죠.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의사이자 탈레반 이후 최초의 여성 국회 의원인 그녀는 탈레반 재집권 이후 다시금 여성 인권이 후퇴하자 절망했다. 그녀가 운영하던 병원은 아프간 변경의 외국인의 후원으로 운영하던 병원이었는데, 탈레반 재집권 이후 이런 지원이 끊겨 곤란에 겪고 있다. 의료진은 탈레반 재집권 이후 모두 도망갔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의료진도 의약품도 모두 부족한 상태다.


부족한 인력과 물자와 다르게 외상병동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워다크는 전쟁 당시 정부군과 탈레반의 시신이 나뭇단 마냥 쌓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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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참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죠. 지금은 너무 따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전쟁이 그리워요."

탈레반 전사 엘함


정부군이 도망간 직후 탈레반 전사들은 각 지방의 공무직을 차지 했다. 험란한 힌두쿠시 산맥의 동굴에서 미군 타도라던 목적의식을 갖던 그들은 정작 미군이 물러가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 무기력증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여자는 집중을 방해하죠"

탈레반 전사 빌람


전에 연재(레트로그레이드, 디즈니플러스에서 감상 ㄱㄱ)했던 헬만드 주의 주도 라슈카르가의 한 탈레반은 자폭하기에 아깝다는 탈레반 간부의 판단으로 12년 간 탈레반과 시간제 대학생이란 이중 생활을 보냈다. 대학의 진보적인 학풍도 그의 탈레반적 기질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그는 현재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 빠져 있는 쾌할한 성격의 청년이지만 탈레반다운 극단적인 성향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지난 정부 사람들은 나를 마구 두들겨 패고 내 왼손을 부러트렸죠. 토후국 체제로 돌아와 기쁩니다. 이번 정부는 독재자의 의지가 아니라 알라의 법을 받드니까요."

IT 전문가 아흐마드 자베드


주즈잔 주에서는 도스툼에 대한 탈레반의 증오와 더불어 정부의 부패로 인한 지식인의 반감도 있었다. 특히 도스툼이 탈레반 2,000명을 컨테이너에 넣어 질식 시킨 다쉬트이레일리는 탈레반이 한창 시체 발굴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부패로 인해 땅을 뺏긴 수많은 사람들이 판사가 아닌 이슬람 성직자들 앞에서 탄원하며, 아우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전쟁 당시 외국인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 적개심이 누그러들자 취재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인지 호의적으로 대했다. 일부 탈레반은 취재진을 집으로 초대에 식사를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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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이미지로 대체


위에서 이야기한 경제 불황은 막상 정권을 잡은 탈레반들에겐 커다란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는 아프가니스탄 경제는 바다 위의 모래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수천 만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아프가니스탄 인구들! 00년대 초의 탈레반 집권기와 2020년대의 탈레반 집권기는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탈레반은 다시 아편을 금지시켰지만, 이미 다른 먹거리가 없기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탈레반 정부의 말을 무시하고 아편을 재배한다.



"탈레반 정부는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없어요."

헤라트 북부 다즈와리 이장 아르밥 나데르


헤라트 북부와 같은 일부 지역은 너무나 빈곤하여 딸을 조혼으로 내몰고 그마저도 없으면 신장을 팔아 연명한다. 끊어진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밀 수확량은 절반으로 죽고 양들은 떼죽음 당하고 있다. 마을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포장도로를 따라 세워진 난민촌은 오지도 않는 구호물자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탈레반 재집권으로 인해 기술 관료, 의사, 기술자, 외교관, 공직자 등 국정 운영에 필요한 전문가들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탈레반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여행 제한 조치를 통해 지식인의 유출을 막았다. 여행 증명서가 없는 아프가니스탄 인들은 특별 허가 없이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


주즈잔주 부주지사는 90년대 탈레반 정권이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이전의 탈레반 지도자들과 다르게 국제사회와 교류하기 원한다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1조 달러의 광물은 개발만 잘 된다면 수백만명의 절대적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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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좋다고 말하거든요."

칸다하르 시민 사보르 사보리의 발언


기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선 박봉에 시달리던 경찰들은 상인들에게 뇌물을 요구했다. 심지어 지난 정부 칸다하르 경찰 총장인 압둘 라지크의 경우 미군의 비호를 받으며, 칸다하르를 개인 영지처럼 다스렸다. 칸다하르에서 나오는 적잖은 수입이 압둘 라지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압둘 라지크는 2018년 탈레반으로 전향한 경호원의 사격으로 사망했다.


그런 부패한 경찰들 이후 탈레반은 최소한 치안은 안정시켰다. 그러나 그 대가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이상 자유롭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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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시르 계곡의 저항군


"아마 100가구 중 다섯 가구 정도만 남아 있을 거예요. 떠날 여력이 없는 사람들만 남은 거죠."

판지시르 협곡의 주민


취재의 마지막은 판지시르 협곡이다. 취재진이 판지시르에 왔을 때는 판지시르 계곡의 저항군은 없다고 써있다. 분위기는 반탈레반 정서로 고조 되어 있지만, 판지시르의 저항군은 이 당시에 고산지대로 모두 올라간 상태였다. 그에 반해 카불의 와지르아크바르칸 언덕은 전국 각지로 모여든 탈레반들로 붐벼 있었다, 커다란 탈레반 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떠들석한 분위기로 가득찼다. 한 가지 요소만 빼고 말이다. "성"


이런 암울한 상황에도 탈레반의 압제에 저항의 의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앞서 말한 전 국회의원 워다크는 자신이 숨겨 놓은 건물을 보여주며 취재진에게 말했다. 탈레반 정부가 여학생들을 다시 학교로 보내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이 여기에 학교를 지을 거라고,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 어떻게든 맞서기로, 그것이 교육받은 자의 의무라고 말이다.


희망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에도 아직 마지막 잔불은 남아 있었다.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2022년 10월호

roshanak wardak - Google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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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ogle.com



https://www.google.com/search?q=roshanak+wardak&hl=ko&sxsrf=AJOqlzXP76vBwzKiRolTjXlNRlqNn21jCw:1676994686449&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kyc2E_Kb9AhXPet4KHf6iDREQ_AUoAXoECAEQAw&biw=1920&bih=880&dpr=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771686





https://www.nationalgeographic.co.uk/history-and-civilisation/2022/08/what-a-2000-mile-journey-around-afghanistan-uncovers-a-year-after-the-taliban-takeover




https://www.arkansasonline.com/news/2014/feb/02/us-built-afghan-roads-neglected-perilous-201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