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쯤 전에 한국 신문에서  보도된 물건임.


이 보고서는 2년 전에 갑갤에서 한 번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 말도 없더라.


한국 신문은 이 위안부의 전체적 내용에서, 정보를 체리피킹해서 기사화했고, 일본 언론이나 학자들도 이 글에서 유리한 부분만 체리피킹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음.


양이 꽤 많고 판독이 안 되는 글자도 많기 때문에 요점만 추려서 번역.


한일 양측에게 민감한 부분임.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 Psychocogical Warfare Team. Attached to U.S. Army Forces India-Burma Theater. APO G89


(Japanese Prisoner of War Information Report)


일본 포로 심문 보고서 NO.49. 1944.08.20.


Alex Yorichi(일본계 미국인으로 추정됨)


서론: 버마에서 1944년에 생포된 20명의 한국인 '위안부'들과, 2명의 일본 시민을 대상으로 함. '위안부'는, 매춘부, 즉 "Camp follower" 따위와 차이가 없었다.(주: 이 부분은 일본 우익들이 즐겨 인용하는 부분)


모집: 1942년 5월 초, 일본인 Agent들이 동남아에서 일본군을 대상으로 한 '위문 서비스'를 할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 중개업자들은 이 업무를 '부상병의 간호, 붕대 감기, 군인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 이라고 알렸다. (주 : 성적 서비스에 관한 고지가 아니었음.) 여성들에게는 전차금 형식으로 돈이 지불되었고, 감언에 혹해서 지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주 : 사기로 볼 수 있음). 


여성 대부분은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하였으며, 몇몇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주 : 매춘부)'였다. (주 : 원래 매춘부였던 여성들이 지원한 경우도 있었던 모양.) 이 여성들에 대한 계약은 6개월 내지 1년 단위로, 그 내용은 군의 제도적 규율에 따르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주 : 군의 관여가 인정되는 이유).


대략 800명 정도의 여성이 이러한 방식으로 징집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1942년 8월 20일에 일본인 'House Master(주 : 포주)'와 함께 상륙했다.  대략 8명에서 22명 정도의 단위로 왔다.



위안부 개인에 대하여 : 한국 '위안부'의 평균적인 연령은 대략 25세이다(주 : 미성년자는 없었음). 교육받지 못했으며, 유치하고, 감정적이며, 이기적이다. 일본인의 기준으로도 미국인의 기준으로도 아름답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방인들 앞에서의 태도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성의 이점'을 활용할 줄 안다. 그녀의 '일'에 대한 반감을 주장했으나,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본 군인들에게 친절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중국과 인도의 군인들을 두려워했다.



생활과 일의 여건 : 버마에서, 그들은 대부분 학교였던 2층짜리 건물에 수용되었으며, 각방을 사용했다. 이들은 여기서 생활하고, 잠을 잤으며, 일을 했다. 식사는 그들이 번 돈으로 포주로부터 구매하는 형태였으며, 일본군의 군량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버마에서 거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주 : 삶의 질이 나쁘지 않았음) 누렸다. 그녀들은 잘 살았으며(lived well), 돈이 많았으므로 원하는 것은 대부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옷, 신발, 담배와 화장품을 살 수 있었으며, 군인들이 가족으로부터 받는 '위문가방'의 물품들을 선물로 받았다.


턴테이블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사치스러웠으며, 장교들과 함께 소풍을 나가기도 하고, 운동회에 참석하기도 하며, 만찬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쇼핑을 하도록 허락받은 읍내에서 찍은 사진도 가지고 있었다.


근무 시스템: 군이 정한 스케줄(이하)을 따랐다.


1. 병사. 10 am to 8pm, 1,50yen. 20 to 30분.


2. (판독 불가) 5pm to 9pm. 3,00yen. 30 to 40분.


3. 장교, 9pm to 12pm. 30 to 40분.


장교는 원한다면 20엔을 내고 하룻밤 동안 머물 수도 있었다.


스케줄 : 부대마다 정해진 요일이 있었다.



봉급과 삶의 질 : 포주가 그들이 버는 돈 중 60%내지 50%를 가져갔다. 그들은 종종 방이 좁고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다.... 생필품이나 식량은 포주에게 사야 했다.  빚을 졌던 여성들 중 일부는 빚을 갚고 집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으며, 이들에게는 피임 기구도 보급되었다.



일본 군인들에 대한 위안부의 반응 : 생략.



일본 군인들의 반응 : 이 '위안부'중 일부는 일본군에게서 청혼을 받기도 했으며, 실제로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위안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군인은 술에 취해 들어와서, 다음 날 전쟁에 나가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입이 무거워서, 군사적 기밀을 '위안부'에게 발설하지 않았다.


전황에 대한 반응 : 이들은 폭격을 두려워했으며, 방공호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일도 있었다. 한둘은 심지어 작업에 끌려가기도 했다. 위안소는 불탔으며, 여성들 중 몇몇은 부상당하거나 죽임당했다.


이하는 판독 불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미군에게 생포된 위안부의 목록.


1. Shin(21) 경상남도, 진주.

2. Kak(20) 경상남도, 삼천포.

3. Pan(26) 경상남도, 진주

4. Chin(26) 경상북도, 대구.

5. Chun(27) 경상남도, 진주

6. Kim(25) 경상북도, 대구

7. Kim(19) 경상북도, 대구.

8. Kim(25) 경상남도. 마산

9. Kim(21) 경상남도, 금복.

10. Kim(22)  경상남도, 대구.

11. Kim(26) 경상남도, 진주.

12. Pe(27)  경상남도, 진주

13. Chun(21) 경상남도, 진주.

14. Koke(21) 경상남도, 경산군.

15. Yon(31) 경상남도, kayomon murs

16. Opu(20) 경상남도, kenyo, sekiboku

17. Kin(20) 경상남도, mo, kyu ruri

18. Ha(21) 평안남도, 평성.

19. Oki(20) 평안남도, 평성

20. Kim(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