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선조때 여진족 정벌 상황(노토부락 정벌전)
+乙酉/平安道觀察使徐渻馳啓曰: "滿浦僉使金宗得牒呈內, ‘今五月十二日, 梨坡居童坪古進告, 「因水上胡人聞, 去四月, 朝鮮軍馬, 突入於北道老土部落焚蕩」 云。 「訓導得聞耶?」 訓導方應斗、通事河世國等言曰: 「老土, 本是深處居胡, 不知我國兵威, 潛入我境, 侵犯山堡, 以致自作之患, 理固然矣。」 但胡人死亡幾許, 而老土與他酋, 亦幾許死亡云乎?」 坪古答曰: 「老土則恐有此患, 常時謀避深山, 故僅以身免, 而老土所屬部落七處, 無遺焚蕩。 大槪死亡之數, 幾至萬餘名」 云。"
평안도 관찰사 서성(徐渻)이 치계하였다.
"만포 첨사(滿浦僉使) 김종득(金宗得)의 첩정(牒呈)에 ‘금년 5월 12일 이파(梨坡)에 사는 동평고(童坪古)가 와서 고하기를 「수상(水上)에 사는 호인(胡人)에게서 들으니, 지난 4월 조선의 군마(軍馬)가 북도(北道)의 노토 부락(老土部落)에 돌입하여 분탕질을 했다고 하는데 훈도(訓導)도 알고 있었는가?」 하자 훈도 방응두(方應斗)와 통사(通事) 하세국(河世國) 등이 「노토(老土)는 본시 심처호인(深處胡人)이어서 우리 나라의 병위(兵威)를 모르고 몰래 우리 국경에 들어와 우리의 산보(山堡)를 침범하였으니, 이는 자초한 환란으로서 사리에 당연한 것이다. 호인들은 얼마나 죽었고 노토와 다른 추장은 몇 명이나 죽었는가?」 하니, 평고가 「노토는 이런 환란이 있을까 두려워 평소부터 깊은 산에 피할 계획을 하였으므로 그 자신은 겨우 환란을 면했으나 노토에 소속된 부락 7개처가 남김없이 분탕되어 죽은 사람의 수가 거의 1만여 명에 이른다. 」 했다.’ 하였습니다."
"좆도 모르는 촌-뙤놈들이 지랄을 쳤으니, 즈그 무덤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뒤졌다 그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