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중부 태평양 상륙작전인 타라와 전투
타라와 환초 중심인 베티오 섬 상륙작전은 분명히 미국이 승리한 전투였지만.
미국 사상자 수치
전사 및 실종- 1,085명
부상 - 2,233명
3일간의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치는 미국 국민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음.
아닌게 아니라 과달카날 전투에서 거의 6개월간의 전투 동안 발생한 해병대 사상자 수치가
전사 및 실종 - 1,152명
부상 - 2,799명
였으니까.
니미츠가 전사자 부모들에게 수많은 비난편지를 받기도 했고,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히 컸는지
1944년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태평양 해역군과 남서태평양해역군 합동회의에서
마리애나 상륙작전 계획을 취소하고, 맥아더의 뉴기니-민다나오 공격 작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폭탄발언을 할 지경이었음.
맥아더는 싱글벙글해서 워싱턴에 태평양 함대 지휘권과 B-29 통제권을 전부 자신이 총괄 지휘할 권한을 요구함.
물론 킹제독이 개소리라 묵살하고 니미츠를 질책하는걸로 마무리 시킴.
타라와 전투를 타산지석 삼아 마셜제도 작전부터 많은 부분들이 수정되어 반영되었고, 이후 미군 상륙작전 교리 정립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됨.
제목에 혐 붙히는게 좋을 것 같음
루즈벨트가 눈물 흘렸다는게 저건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것다
루즈벨트 눈물흘렸다는건 이오지마인듯 - dc App
이오지마때 한달 좀 넘게 싸웠는데 미군 사상자 2.6만인가 찍었을걸 - dc App
루즈벨트 눈물 일화는 노르망디 아니냐 오마하에서 미친듯이 갈렸다는거 듣고 그랬던걸로 아는데
그건 이오지마 - dc App
무전기가 바닷물에 다 망가져서 휘하부대 장악이 안됐다는 전투가 저 전투였던가
상륙 첫 날까지는 통신 불량이 상당한편이었음. 교두보는 일부분만 확보되어서 첫날 저녁 일본군의 반격 돌격을 했다면 패배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견도 있고
상륙통제도 거지같이 돼서 전투병력도 아니고 40~50대 엔지니어들인 시비즈가 1차 상륙대로 투입돼서 엄청 죽어나가고 그랫음
거기에 사전정찰도 항공으로만 이뤄져서 산호초가 있는걸 제대로 모르고 lvt를 투입했다 중간에 걸려서 멈추는 바람에 상륙도 못하고 터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했음
2파로 가기도 애매한 놈들이 1파로 들어갔다고??? 얼마나 통제가 개판이었던거야
일단 상륙지 접근부터가 난항이였는데 당시 원주민들의 정보로 산호초가 있다는걸 알았는데 물떼를 잘못맞춰서 원래는 물밖에 나와있어야할 산호초들이 물아래에 있게됬음 그래서 막상 작전을 진행을 해보니 1파로 들어간 부대가 산호초에 걸려서 어기적거리다 일본군의 포화를 뒤집어 쓰고 돈좌되고 2파도 같이 들어왔지만 산호초 지대를 어찌어찌 피해도 해안가의 포탄구덩이 속에 처박히는 상황이라 1파랑 별반 다를게 없었음 상륙포격도 아직 정립이 안된 시기라 전함과 순양함 구축함의 마구잡이 포격으로 인해 진입로가 개판이였고 일본군의 특화점도 제대로 제압이 안되었음 다만 일본군이 화력에 밀려서 반격의 기회를 잘 못잡아서 그렇지 상륙지에 돌격이라도 오는날엔 다시 바다속으로 들어가야되는 상황이였음
그와중에 맥아더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