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니, 우리 제국에게도 해군이?
A. 예아 안될거 뭐 있겠습니까?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겪으면서 성장한 고종은 대양해군 육성에 심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서재필과 김옥균 등 1세대 개화파에게 영향을 준 통리기무아문의 참모관이자 봉원사의 승려 이동인에게 밀명을 내려 일본 함선과 총포 등을 염탐하고 오라고도 함.


이동인은 타고난 교섭가로 외국어에 유창했고 지금도 일본에 있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의 부산별원의 법사 오쿠무라奧村나 원산 총영사 마에다 겐키치前田獻吉, 주일 영국공사관의 외교관들 같은 인사들과 교류도 할만큼 발이 넓은 인물이라 해당 임무 수행에 적합했기 때문이었음.


하지만 그는 임무 수취 후 갑작스레 행방불명 되고, 제국(당시 조선)은 결국 자체 기술 개발 여건 확보에 실패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시간이 나면 풀어 쓰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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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군복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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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 양무호 마냥 일본 해군 복식을 그대로 수입 후 약간의 변형을 했을 뿐이었다.
차이점은 단추 숫자나 장교복 모표에 벚꽃 문양을 박아넣지 않았다 정도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열강들은 모두 제국에 해군 교관 및 기술진 파견, 함선 판매에 부정적이기 때문이었음


고종이 사정사정해서 청이 1년 남짓 기술자 파견, 영국이 해군 교관으로 콜웰 대위 등을 파견 해준게 고작인 상황속에서 오로지 일제만이 교관은 물론 함선 판매까지 적극적으로 제국 해군 육성에 관여하려고 했었음.


이러니 대한제국 해군에 일본제국 해군의 영향이 커진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던 것. 


어쨌꺼나? 예쁘면 장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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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판 위에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건조한 광제호 및 그 수병들과 간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