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은 강원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북한강 중상류 유역에 속해 있으며 파로호와 화천발전소, 평화의 댐이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함
화천군은 주변으로 다음 시군들을 접하고 있음
-> 북서쪽: 철원군의 김화 지역 (분단 이전에는 김화군)
-> 북쪽: 철원군의 금성 지역 (분단 이전에는 김화군)
-> 동쪽: 양구군
-> 남쪽: 춘천시
-> 남서쪽: 가평군 북면 및 포천시 이동면
또한 겨울이 춥기로 유명하고 한겨울에 산간 지방에서는 영하 30도를 매년 찍기 때문에 별명이 화베리아라 불리며 철원에 비해서는 유명세가 다소 덜하지만 강추위로는 절대 뒤지지 않는 곳임
아래는 화천군의 지형도
-> 간동면의 최남단 극일부가 38도선 이남에 위치한 것을 제외하면 전역이 38도선 이북에 위치함
-> 이 때문에 광복 후 38도선 분단 시기에는 사실상 모두 북한에 속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전역을 수복해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음
-> 철원, 양구, 인제, 고성과 달리 강원도 전방 지역에서 군사분계선을 전혀 접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화천군의 북쪽으로 철원군의 구 금성권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 중 대한민국 영토인 곳이 있기 때문
-> 화천군의 최북동단 쪽으로 남방한계선이 딱 정확히 접하고 있음.
아래는 화천군의 지형도를 더 자세히 나타낸 지도
-> 하늘색은 한북정맥으로 한탄강 및 임진강 유역과 북한강 유역을 가르는 정맥이 됨
-> 빨간색은 아래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각각 광덕고개, 수피령, 마현리, 주파령
-> 주황색은 아래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화악산, 백운산, 광덕산, 복주산, 복계산, 대성산, 적근산, 백암산
-> 마현리와 수피령은 예로부터 철원 및 김화권과 화천을 오가는 통로의 길목의 역할을 담당해 왔음
-> 광덕고개는 화천의 남서쪽 지역인 사내면에서 포천 북부인 영평으로 오가는 유일한 통로로 고개가 높고 험해서 통로가 매우 좁고 이용이 불편
-> 백암산의 서쪽, 산양리의 북쪽에는 주파령이 있는데 이 주파령은 화천에서 북한 김화군에 있는 금성으로 오가는 좁은 고개이며 고도가 생각보다 높고 험해 이용이 불편
-> 백암산은 화천군과 철원군 원동면 경계에 위치하며 춘천-화천-금성 축선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산이 되는데 이 백암산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점점 낮아지는 형세임
-> 남서쪽의 아주 작은 분지는 사내면 지역으로 이 곳은 원래 화천군이 아닌 춘성군(현 춘천시)에 속해 있었으나 남북 분단으로 38도선 분단 시절 김화군에 편입되었으며 한국전쟁으로 수복된 직후에는 포천시의 38도선 이북 지역들과 같이 묶여 북포천군으로 소속됨. 그 후 사내면은 북포천군에서 나와 화천군으로 편입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음
-> 사내면에서는 서쪽으로 험하고 높은 광덕고개를 넘어 포천 북부 영평 (이동면)으로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해발 1468m의 웅장한 화악산에 의해 가평군을 접하고 있음
-> 북한강 이남은 간동면이며 이 간동면에도 사내면처럼 작은 면적의 분지가 있음. 이 간동면은 춘천에서 배후령을 넘어 양구로 가는 중간 경유지가 됨
아래는 화천군을 지나는 통로들을 나타낸 모식도
-> 주요 통로는 하늘색으로, 보조 또는 소통로는 주황색으로 표시
-> 북서쪽 방향 및 남쪽 방향이 주요 통로가 되며 그 외는 모두 보조통로
1. 북서쪽 방향: 마현리, 수피령을 넘어 한탄강 유역의 김화로 이어짐.
2. 남서서쪽 방향: 사내면을 통해 광덕고개를 넘어서 포천 북부 영평으로 향함. (광덕고개는 생각보다 고도가 높고 험해 포천과 화천은 서로 인접해 있음에도 교류가 별로 없었고 교통량도 적음)
3. 남남서쪽 방향: 험준한 화악산을 넘어 가평 북면 및 가평읍으로 향함. (화악산 통로는 화악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사실상 넘어다니기 매우 어려워 화천과 가평은 인접해 있어도 교류가 사실상 거의 없었음)
4. 남쪽 방향: 북한강 연안을 따라 자연스럽게 춘천으로 가는 통로가 나 있음
5. 동쪽 방향: 백암산 남동쪽의 산들 사이로 좁은 통로를 따라 양구로 갈 수 있음. (중간에 평화의 댐 경유)
6. 북쪽 방향: 산양리에서 김화로 가는 5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와 주파령을 관통해 금성으로 갈 수 있음
따라서 화천을 경유하는 주요 경로는 남쪽의 춘천과 북서쪽의 철의 삼각지대가 됨. (춘천-화천-김화-철원)
이러한 지리적 위치, 요인으로 인해 화천은 삼국시대부터 북서쪽의 철원, 김화와 남쪽의 춘천의 중간에 위치한 거점이자 가교 역할을 해 왔음
-> 즉 춘천 분지에서 한탄강과 임진강 중류 유역으로 오갈 때는 반드시 화천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
-> 한국전쟁 시기 북한은 철의 삼각지대에 병력과 물자를 모두 집결한 후 수피령, 마현리를 넘어 화천으로 이동한 후 춘천 방향으로 남침
-> 또한 유엔군과 국군은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했을 때 중부전선에서 화천을 먼저 점령한 후 이 화천에서 마현리, 수피령을 넘어 철의 삼각지대로 진격했음
위 지도들을 통해 살펴보면 화천은 전 지역이 다 그렇지만 특히 서쪽과 북쪽에 높고 험한 산들이 매우 많아 방어에 매우 유리한 요충지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수피령, 마현리, 주파령 모두 해발고도가 약 500m 내지 그 이상으로 낮지 않기 때문에 화천에서 철원, 김화로 또는 북쪽의 금성과 왕래하는 것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화천의 생활권은 철원, 김화, 금성과 서로 분리되어 있음
또한 금성과 화천은 같은 북한강 수계임에도 불구하고 생활권은 완전히 다르며 금성은 오히려 한탄강, 임진강 수계인 김화와 생활권이 같이 묶이며 김화에서 금성으로 오가는 고개는 해발고도가 320m로 수피령, 마현리에 비해 훨씬 낮고 경흥로와 금강산선 모두 이 고개를 지나는 통로를 따라 놓여 있음
이제부터는 3차원 지형도를 통해 화천이 왜 춘천 방어를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지, 그리고 중동부전선에서 그렇게 중요성이 높은지 공부해 보자
아래는 춘천 분지와 그 북쪽의 화천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지형도
-> 주황색 선은 북위 38도선으로 춘천 분지의 바로 북쪽을 관통하며 좌측부터 화악산-북한강 모진교-고성리-배후령-소양강을 관통
위 지도를 보면 38도선 분단 시절의 춘천 분지는 북쪽에 위치한 화천의 북한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감시당하는 구조로 방어하기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태였음
-> 이로 인해 남쪽 세력이 북쪽의 공격으로부터 춘천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화천을 반드시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한국전쟁 휴전협상에서 북한과 중공은 춘천을 일방적으로 감제하고 위협할 수 있는 화천을 되찾고 수자원 확보와 전력생산에 중요도가 높은 파로호와 화천발전소를 되찾기 위해 38도선 원상복귀를 강하게 주장함
-> 그러나 대한민국와 유엔군은 도시 춘천을 안정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 극도로 부족한 대한민국의 전력 생산량을 30% 가량 더 늘리고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화천과 파로호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였으며 북한과 중공의 38도선 원상복귀를 거절
-> 만약 북위 38도선 그대로 군사분계선이 되었다면 춘천은 일방적으로 감제당해 방어하기 매우 위험해지고 전력 생산에 막대한 기여를 하는 화천발전소를 도로 상실하여 전력난으로 경제 발전에 큰 지장을 주었을 것
-> 이렇게 되면 도시 춘천은 현재 철원 정도의 소규모 도시로 전락하게 되고 소양강과 북한강으로 민통선이 그어져 소양강 이북은 버려진 땅이 되었을 것. (강원도청은 원주시로 진작에 이전되었을 것)
아래는 파로호의 풍경들
-> 파로호는 북한강 중상류 유역에 자리잡은 거대한 호수로 화천군 화천읍과 간동면의 경계를 이룸
-> 유엔군이 북진 시 세운 방어선 중 캔자스선이 중동부에서 파로호를 관통하며 이 파로호의 동서 폭 16km를 자연 방어선으로 삼았음
아래는 화천발전소, 즉 화천댐의 모습
-> 해방 후 38도선 분단 시절 대한민국의 총 전력생산 시설로서는 19만9천KW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 생산 가능했던 전력은 약 4만3천KW에 불과했을 정도로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렸음
-> 파로호의 화천발전소는 총 2기가 있으며 1기, 2기를 합해 총 5만4천KW의 막대한 전력을 생산 가능했음
-> 이 화천발전소를 얻게 되면 대한민국의 전력 생산량이 27%, 즉 거의 30% 가까이 증가하게 되며 이로 인해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은 국군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파로호와 화천댐을 수복해야 하고 절대 북한과 중공에게 다시 내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였음. (이 화천, 파로호를 포함한 중부 축선은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라고 스스로 강조)
다음으로는 화천 일대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백암산이 왜 그렇게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매우 높은 고지인지, 한국전쟁에서 남북 모두 필사적으로 이 백암산을 사활을 걸고 확보하려고 했는지 지형도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아래는 남에서 북으로 바라본 3차원의 지형도
-> 붉은 좌표가 백암산의 정상
-> 이 백암산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고도가 낮아지는 추세임
-> 백암산과 그 주변은 북쪽의 금성, 창도, 임남호 일대를 감제하고 관찰하기에 제격이며 이는 북한군의 도발과 남침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됨
-> 따라서 중동부전선에서 북한군은 북쪽의 김화군 (금성) 일대로부터 남쪽으로 이 일대를 뚫고 내려올 수 없음. (백암산이 다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좁은 통로인 주파령으로도 넘어올 수 없음)
-> 북한은 어은산을 필사적으로 사수하여 이 축선에서 더 북으로 밀려나지 않고 방어를 할 수 있게 되었음
-> 어은산을 우리가 확보한다면 우리는 금성-창도-회양 축의 동쪽을 모두 감제할 수 있게 되므로 미수복 강원도의 중동부 지역을 거의 다 수복할 수 있었을 것임
다음은 반대로 화천의 지형도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모습
-> 백암산과 그 주위 산들이 가장 고도가 높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 화천 -> 춘천 분지) 점점 고도가 낮아지는 형세
-> 따라서 백암산에서 화천읍과 북한강 일대는 물론 더 남쪽의 춘천 분지까지도 한눈에 내려다보고 감제할 수 있음.
중동부 축선은 이 백암산을 정점으로 하여 북쪽으로, 남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
-> 따라서 백암산에서 남쪽 방향, 북쪽 방향을 모두 한눈에 감제할 수 있음
즉 백암산 일대를 대한민국이 확보하게 되면 북한이 북쪽에서 주파령, 북한강을 뚫고 화천-춘천 축선으로 내려오는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게 되어 화천과 남쪽의 춘천 분지를 모두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게 됨
반면 이 백암산과 주변 고지들을 북한이 먹게 되면 북한군이 화천읍과 북한강 일대는 물론 춘천 분지까지도 훤히 내다보고 철원, 김화에서 화천, 춘천으로 가는 중부 축선의 통로를 다 감제할 수 있기 때문에 방어가 불가능하게 됨
-> 따라서 백암산을 빼앗기게 되면 이 축선에서 춘천 분지 남쪽의 조양IC 일대까지 밀려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한국전쟁에서 남측과 북측 모두 필사적으로 이 화천과 백암산 일대를 그렇게 확보하려고 안감힘을 쓴 것
고지 확보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고지를 먹냐 빼앗기냐가 정말 그 고지 딱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임.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 고지만 잃는 것이 아닌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 수km~수십km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서 같이 버려야 함. 괜히 한국전쟁에서 남북한 양쪽 모두 그렇게 수없이 고지쟁탈전을 휴전 직전까지 피를 흘려가며 치른 게 아님
한국전쟁 때 유엔군과 국군은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37도선인 평택-충주-삼척까지 후퇴하였으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서울을 재탈환한 후 여러 전투들에서 승리하여 전선을 서서히 북으로 올렸음. 이 때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는 기존의 38도선보다 더 넘어 북으로 올라갔는데 화천을 수복하여 북한강 중상류 유역과 파로호, 화천발전소를 우리 영토로 확정할 수 있게 됨
게다가 1951년 가을에는 이 화천 일대에서 더 올라가 김화군의 구 금성 지역에서 북으로 더 올라가 일명 금성 돌출부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 금성 돌출부는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비교하여 최대 북으로 10km까지도 더 올라가 있었음
-> 따라서 이 때 김화군의 금성 시내는 북한 영토이기는 하였으나 전선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음
-> 이 금성 돌출부를 그대로 유지하고 휴전했다면 금성 시내는 비무장지대에 갇혀 버려지게 되었을 것임
대한민국은 1953년 6월 중순 직전까지 이 화천군 전역은 물론 금성 돌출부까지 잘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 선언으로 인해 자극받은 중공군은 휴전 직전 국군과 대통령을 손봐주겠다고 마음 먹음
휴전 직전에 이 북으로 돌출된 금성 돌출부를 없애고 영토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자 한 중공군은 일명 유명한 금성 전투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1953년 6월과 7월에 걸쳐 크게 두 차례의 전투가 치러졌고 국군은 중공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각각 140km^2, 192km^2 가량의 영토를 상실하게 됨
6월에 약 140km^2 가량의 영토를 수복한 중공군은 7월 중순에 더 큰 공세를 취해 왔는데 이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은 크게 밀려 현재의 군사분계선보다 더 남쪽으로 밀려 한 때는 백암산 일대도 빼앗기게 되었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음
만약 이 때 백암산 일대를 다시 되찾지 못했다면 힘들게 싸워 얻어낸 파로호, 화천발전소를 포함한 화천군 전역은 물론 춘천 분지까지도 위험해질 정도로 큰 대위기였으나 국군은 다시 가다듬고 북진하여 7월 말 중공군을 물리치고 백암산을 되찾았으며 금성천까지 재북진하게 되었음
이 때 국군은 금성천 북쪽으로 진격해 종래 유지하고 있던 금성 돌출부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였으나 휴전을 이루기 위해 너무 중공군을 자극하길 꺼린 유엔군 수뇌부가 이 작전을 취소하고 반려하는 바람에 금성천에서 정지하였고 결국 이 상태에서 7월 27일 휴전이 마침내 성사되고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그어짐
백암산을 다시 되찾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었으며 다만 7월 추가 공세로 192km^2 가량의 영토를 더 상실하였음
-> 이 6,7월의 금성 전투로 인해 상실한 총 면적은 약 332km^2로 이는 서울특별시 면적의 반을 약간 넘을 정도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아까운 영토
백암산 정상은 화천군과 철원군 원동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칠성전망대 (철원군 원남면)이 자리잡고 있음. 작년 10월 21일에 이 높고 험한 백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오랜 공사 끝에 개통되었으며 이 정상에 올라가면 험준한 화천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며 북쪽으로 북한의 금성 일대와 임남호, 금강산댐 그리고 가시거리가 긴 날에는 회양군까지도 볼 수 있음.
아래는 백암산케이블카 및 백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화천과 북한 방면의 (금성, 임남호 등) 풍경들
혹시 나중에 금성 전투랑 비교해서 금성돌출부 지형도 올려주실수 있음?
ㅇㅇ
이 아재 글 재밌당...
ㅊㅊㅂㅌ
시리즈 잘 읽고 있음 왜 한국전쟁이 고지전이었고 고지탈환에 목숨걸었는지 알겠네
ㅊㅊㅂㅌ
고지를 잃게 되면 문제가 정말 그 고지 하나만 딱 잃는 게 아니라는 게 중요한 포인트.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서 같이 포기해야 하는 거
백마고지도 그 고지 빼앗기거나 안 먹었으면 철원평야 중부 방어 못해서 다 버리고 고대산-금학산 라인까지 물러나야 했음
처음에 고지 뺏기면 왜 방어선 멀리 조정하는지 잘 이해안가는데 지형도 올리니 쉽게 이해감
고지 뺴앗기면 그 고지가 감제하는 반경 내의 영토는 언제든 적이 위에서 내다보고 공격할 수 있는 위치이고 또 적이 그런 감제당하는 영토를 가만히 내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리 포기하고 후퇴하든가 아니면 고지를 다시 빼앗지 못하는 이상 먹히게 되어 있음
백암산 일대를 되찾은건 정말 다행이지만, 금성 돌출부 회복 작전 취소된건 너무 아쉽다 글고 화천은... 다시보니 또 거지 같네, 좋은글 항상 ㄱㅅㄱㅅ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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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산 수복하게 되면 오성산 먹은 것보다는 못하지만 미수복 강원도 중동부는 거의 다 수복. 즉 김화-금성-창도-회양 통로를 기준으로 여기 동쪽 지역은 다 수복했을 거임. 동부전선은 회양-통천까지 올라가고
창밖으로보이던익숙한풍경을구글어스로다시보니상쾌하게역하네요 여기서꺼내줘 - dc App
아니 내가 38 출신이다!! 적근산 말고개 중고개 이 시발 고생 많이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