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편)

1.사람없어서 개고생하는 의용병들

참호에 붙박여 있기는 했지만 머릿수가 많았던 1차 세계대전 때의 군대와 달리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국제여단 군대는 머릿수가 적어 며칠에 한번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샤워를 했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양질의 음식도 맛볼 여유가 없었다.

거니에 따르면 그 결과 "우리중의 누구도 밤에 군복을 벗고 잠을 자보지 못했고, 따뜻한 음식도 몇 달 간 먹어보지 못했다. 저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박격포탄에 대한 두려움에 항시 시달렸다.
몸도 더러워 이가 버글거렸다. 영원히 벗어날길 없는 함정에 빠져든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그러자 병사들의 탈영도 잇따랐다... 병사가 한 명 사라질 때는 모른체 하는것이 상책이었다. 그래야 공식 발표가 나지 않았다."

복무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던것도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했다. 어떤 병사들은 공화파가 금세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복무 기간을 따지지않고 지원했는데, 어떤 병사들은 복무 기간이 여섯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섯달이 지나도록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15국제여단 병사들은 급기야 항의 대표단과 고충처 리위원회를 발족했다.




2.여러나라출신 의용병이라 손발이 안맞음

한 지원병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연발로 날아드는 기관총탄들이 전선에 쌓아놓은 모든 모래주머니들에 구멍을 내놓았다.

로버트가 야전 전화로 진격을 계속하는 것은 자멸 행위라고 여단본부에 항의하자 유고슬라비아 국적의 여단 사령관은 호통을쳐 그의 항의를 잠재우고 "무슨수를 써서라도" 공격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스페인대대가 링컨대대(미국캐나다등 의용병소속)보다 훨씬 먼저 진격했다는 분노에찬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명령의 수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장교 두 명을 오토바이에 태워 로버트의 기지로 보냈다.

로버트, 여단사령관,장교 두명 모두 두달전 또 다른 전선에서 일어난 일인 공화파군이 패하자 프랑스 대대 사령관을 겁쟁이로 간주하고 첩자 혐의를 씌워 군법회의에 회부한 뒤 총살시킨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로버트는 이렇게 반대자에게는 첩자 누명을 씌우는 코민테른의 가혹한 징계뿐아니라 전쟁자체에도 직면해 있었다.

그 시대에는 많은 군대에서 총살이 흔하게 일어났다. 영국군도 1차 세계 대전때 탈영, 비겁함, 무기유기, 명령 불복종등의 죄로 병사 300명을 처형했고, 프랑스군도 대략 그 두 배의 병사들을 총살했다.

논문 자료만 모으면 그만이었던 대학원생 신분과 저만치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게 된 로버트는 이런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괴로운 심정으로 링컨 대대 병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참호를 나와 그들을 직접 이끌었다.



희망편)

3월 14일에는 병사들이 공포와 승리의 순간을 함께 맛보았다. 무어인 부대가 소규모 이탈리아 피아트 탱크부대의 지원을 받아 그들(링컨 대대)의 전선과 가까운 곳에 있던 스페인 징집병들의 진지를 돌파하려 한것이다.
나중에 '죽은 노새 진지의 전투'라는 비공식 호칭을 얻게 된 그 전투에서 공화파군은 무어인 부대를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영국과 미국 병사들이 진지로 돌격해 들어갈동안 프랑스 장교 한명은 저격수로 힘을 보태고 소련제 탱크들도 아낌없이 지원을 하여 잠시나마 국제적 연대의 이상이 구현된 듯한 단합된 행동을 보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