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는 1942년에 펴낸 자서전 자유를 향하여(Toward f1reedom)에서 영국이 인도에 “서구식 의회정부와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을 가져다주었고 인도를 하나의 단일 국가로 변형시킴으로써 인도인들 사이에 정치적 통일감을 발생시켰고 민족주의의 첫 시작을 일궈냈다”는 영국인들의 주장에 “많은 진실”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간디와 달리 네루는 인도 전통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인도의 전통문화가 근대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스레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네루는 인도 근대사가 퇴보와 쇠퇴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한 데서도 영국인들과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는 인도의 모든 잘못된 일들에 대해 영국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덧붙였는데 “우리 자신의 약점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들에 대해 남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었다. 그 외에도 네루는 영국이 서구로 향한 인도의 창을 처음 열게 했고, 철도, 전신 전화 등을 도입함으로써 인도에 서구 산업주의와 과학이라는 분야를 제공해준 공로를 인정하였다. 그의 행동에 지침이 된 지적 원칙과 역사철학도 서양의 것이었다. 즉 서양 역사에서 보편성을 발견한 것인데 이 점에서 네루는 간디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다른것보다도 위쪽의 문단인 인도인들 사이에 정치적 통일감을 발생시켰다에 주목이 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