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지도들은 1.4후퇴 후 중공군의 여러 공세들을 막아내고 38선 부근으로 조금씩 북진하면서 유엔군이 추후 서울과 수도권 방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진출 선들을 나타내었음


대표적인 선이 캔자스선, 유타선, 와이오밍선, 신캔자스선을 들 수 있음


1.4 후퇴 후 서울을 다시 공산 측에게 빼앗겼으며 그 후 다시 탈환하였으나 추후 중공군의 공세 때 서울 북쪽 바로 앞까지 중공군이 남하하여 서울을 3번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한 유엔군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수도인 서울을 반드시 다시 빼앗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선들을 설정함


유엔군들이 방어선을 설정하는 데 세운 원칙들은 아래와 같음


1.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지형물을 (산정맥, 강, 통로 등을 중심으로)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선


2. 되도록 38선 이남을 다 확보하고 적절한 거리 및 종심을 확보하고 적에게 공세를 허용하고 방어선을 단단히 굳히기 위해 38선 이북으로 제한된 진출을 허용


3. 38도선으로 휴전하면 경원선 축선에서 대한민국이 서울을 방어할 적절한 방어선, 통로, 강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사분계선으로 적절하지 않음


4. 예성강 서안의 옹진반도, 연안반도는 바다와 하천으로 격리되어 있고 북쪽이 고지대고 남측은 평야지대이고 방어할 만한 적절한 지형이 없어 방어가 불가능해서 38선 이남이지만 포기하기로 함


5. 아군의 보급선에서 너무 멀어지고 중공군의 병참기지에 너무 가까워지지 않아 안정적 전선 유지가 수월한


북한과 중공이 휴전회담 초기 제시한 38선 원상복귀 안을 유엔군이 칼같이 거절한 이유들이 매우 많은데 그 중 주요한 이유는 경원선 축에서 사실상 서울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임


1. 산정맥들이 남북방향으로 나 있고 통로가 서로 분리된 채 남북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한 통로가 뚫리면 다른 통로에서 메꾸지 못하고 고속도로로 붕괴됨


2. 38선은 임진강과 한탄강의 남쪽으로 내려와 있는데 이 말은 방어선으로 쓸 만한 동서로 달리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을 다 북한이 가지게 되고 북한군이 임진강과 한탄강 아래로 내려오게 됨

(실제 전쟁에서 적군이 강 건너 교두보를 확보하는 순간 적이 매우 유리해짐)


3. 분지인 춘천을 방어하려면 북쪽의 더 고지대인 화천을 장악해야 하는데 화천을 북한이 차지하게 되어 춘천 방어가 위험해지고 그럼 북한군이 춘천-가평-남양주를 통해 서울을 동쪽에서 공격할 수 있어 측면이 노출됨


실제 한국전쟁 초기에도 경의선 축선은 개성 시내는 애초에 송악산 및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모두 북한 땅이고 시내가 전선 코앞인데다 바로 감제 당하고 남측에서 방어할 고지가 없어 방어가 불가능해서 개성을 포기하고 후퇴하였으나 한강하구와 임진강 라인에서 잘 막아내고 있었음. 그러나 경원선 축선에서 방어를 못 하고 북한군이 통로를 고속도로로 쭉 뚫고 내려와 붕괴되어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되었음


즉, 38선으로 다시 군사분계선을 긋게 되면 경원선 축선에서 안정적인 방어선이 사실상 없고 지금에 비해 서울이 북한과의 거리가 훨씬 좁혀지게 되어 서울을 수도로 하기 훨씬 어렵거나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고 정말로 수도 이전을 했을 수 있음


이에 따라 방어선들의 서쪽 경계는 한강 하구 및 임진강으로 설정하였음.


백선엽 장군과 미국의 밴 플리트 장군은 개성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서부전선을 조금 더 올려서 예성강까지 올려야 한다고 건의하였음


그러나 리지웨이는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병력 및 물자가 너무 많이 필요하고 또 현재 중공군 전력상 예성강까지 진출할 수 있을지, 진출해도 안정적 방어가 가능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반대하였고 이는 두고두고 현대에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임


물론 현실적으로 개성으로의 진출은 사실상 어려웠고 개성 시내를 안정적으로 방어하려면 개성 시내를 훤히 감제하는 북쪽의 임진북예성남정맥까지 차지해서 서부전선을 예성강 및 경기도-황해도 도계선까지 올려야 했으며 또 지형적인 특성상 개성 진출 이전에 철의 삼각지대를 먼저 차지해야 하는 선행 조건이 딸려버릴 수밖에 없었음


따라서 서부는 한강하구와 임진강으로 정해지고 중부, 동부에서 점점 38선 이북으로 북상하면서 방어선을 설정하였음


유엔군의 진출 방식은 먼저 해당 선까지 먼저 진출한 후 그 선에 방어선을 세워 굳건하게 하면서 더 북쪽의 선으로 진출하기를 거듭함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물리치고 북진하면서 설정한 방어선들은 아래와 같음

1. 캔자스선: 임진강 하구 - 전곡 - 영평천 - 백운산 - 화천저수지 - 양구 - 인제 - 한계령 - 양양을 잇는 선

: 동서로 달리는 방어 지형인 임진강, 영평천을 확보

: 임진강 22km, 화천저수지(파로호) 16km를 합쳐 38km를 자연 방어선으로 활용할 수 있음

2. 유타선: 캔자스선에서 중부전선이 군남-금학산-광덕산-백운산으로 올라간 선

: 경기 북동부를 감제할 수 있는 지장산,금학산 및 명성산, 광덕산, 백운산 일대를 확보하여 연천, 포천의 방어 증대

: 영평천에 이어 한탄강까지 방어 지형으로 확보

3. 와이오밍선: 캔자스선에서 중부전선이 군남-고대산-와수리-대성산-화천저수지까지 올라간 선

: 북한과 중공군이 물자와 병력을 집결하고 평양, 황해축선과 원산,영서 축선을 서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철의 삼각지대로 진출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선

: 주요 산악 고지에서 철의 삼각지대를 감제할 수 있음

4. 신캔자스선: 와이오밍선에서 동부전선이 동면-펀치볼 아래-서화리-간성 위까지 올라간 선

: 동부의 주요 군사적 요충지인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및 펀치볼로 진출하는 바탕이 되는 선

: 도솔산, 대우산, 대암산, 향로봉 등 동부전선의 고지들을 방어선으로 추가하여 양구, 인제, 속초의 방어를 굳건히 하는 선

: 1951년 7월 휴전회담 시작 당시 접촉선이 이 선과 거의 같음



5. 제임스타운선: 신캔자스선에서 임진강 이북의 사미천 일대로 진출해 구 장단군 남부 및 연천군 일대를 확보하고 철의 삼각지대, 김화 및 금성 지역, 양구 북부와 펀치볼 일대까지 진출한 선

: 현재 군사분계선과 거의 유사하며 모태가 되는 선

: 임진강 이북의 구 장단군 남부 + 연천군 서부 확보 (임진강 이북에 교두보 마련하여 추후 북진시 유리하게 활용 가능)

: 철의 삼각지대의 반 이상 확보

(서울로 향하는 주요 남북 축선 통로 3개를 확보하고 북한이 경원선 라인과 영서지방에서 황해도, 평양으로 직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게 되어 매우 유리해짐)

: 화천 북부 및 양구, 인제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들 확보

(적근산, 대성산, 백암산, 406-425고지, 백석산, 가칠봉, 펀치볼 등)

: 백암산 일대를 장악해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고도가 낮아지는 화천, 춘천까지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고 북한강을 따라 추가로 공산군이 남하하는 통로를 차단

: 고도가 높아 주변을 훤히 감제할 수 있어 빼앗기만 하면 단숨에 추가령-철령 라인까지 진출할 수 있는 오성산, 어은산 등을 탈취하기 위한 금성 지역의 돌출부 확보

-> 이 금성 돌출부에는 삼각고지, 저격능선 (상감령), 수도고지 등 여러 고지들이 있으며 1953년 6월 직전까지는 일부는 유엔군이 일부는 공산군이 가진 상태로 대치하다 6월, 7월의 금성 전투로 332km^2 가량의 돌출부 영토를 북한에게 내주고 휴전하게 되었음


따라서 현재 군사분계선은 제임스타운선과 거의 유사하며 이 선에서 일부 고지들의 주인이 서로 뒤바뀌고 금성 돌출부를 잃은 선


각 방어선들의 실제 위치들은 아래 지도들을 참고하면 되겠음



아래는 1951년 7월 당시 접촉선을 나타낸 것임. 위의 신캔자스선과 거의 일치함



아래 두 사진은 제임스타운 선을 나타내었음



해당 선들을 한번에 아래 지도에 나타내었음

진한 검은색: 38도선

빨간색: 캔자스선

자주색: 유타선

파란색: 와이오밍선

갈색: 신캔자스선

얇은 검은색: 현재 군사분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