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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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세기 부터 아다드 니라리 2세의 통치아래 아시리아는 그 이전보다 더욱 더 강한 국력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그 후대 왕인 아슈르나시르팔 2세대에는 14번의 원정을 통해  동쪽으로는 자그로스 산맥 서쪽으로는 시리아 동부에 까지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859년 샬마네세르 3세가 즉위하고 선대 왕들이 그러했던 것 같이 대외원정을 제 1 정책으로 삼았고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시리아 전역 제패" 및 "레반트 진출" 이였다. (궁극적으론 이집트까지).


즉위 직후 샬마네세르 3세는 시리아 원정에 나서 아람계 왕국인 비트・아디니 (Bit Adini) 를 정복한다. 본디 왕국은 아슈르나시르팔 2세 때 아시리아의 지방으로 편입되었지만 총독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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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유프라테스 강유역 현재 시리아 북부에 위치한 "Til-Barsip"이 비트・아디니의 수도다. 이 원정을 통해 아시라아는 레반트로 진출할 수 있는 전지기지를 확실히 확보했다. 이렇게 되자 레반트에 있던 여러 왕국들은 아시리아의 임박한 침공에 대비해 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를 "league of kings" 아니면 "12 kings alliance"라고 한다. 


병력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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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왕국 연합국의 병력 수는 "Kurkh Monolith"에 상세히 나와있다. 1861년 터키에서 발굴된 이 비석에는 기원전 853년 샬마네세르 3세의 레반트 원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Moving on from the city Arganâ I approached the city Qarqar. I razed, destroyed, (and) burned the city Qarqar, his royal city. An alliance had been formed of (lit. "he/it had taken as his allies") these twelve kings: 1,200 chariots, 1,200 cavalry, (and) 20,000 troops of Hadad-ezer (Adadidri), the Damascene; 700 chariots, 700 cavalry, (and) 10,000 troops of Irhulënu, the Hamatite; 2,000 chariots (and) 10,000 troops of Ahab (Ahabbu) the Israelite (Sir'alaia); 500 troops of Byblos; 1,000 troops of Egypt; 10 chariots (and) 10,000 troops of the land Irqanatu; 200 troops of Matinu-ba^l of the city Arvad; 200 troops of the land Usanätu; 30 chariots (and) [N],000 troops of Adunu-ba'al of the land Sianu; 1,000 camels of Gindibu of the Arabs; [N] hundred troops ( ii 95) of Ba> asa, the man of BitRuhubi, the Ammonite" - ii 86b-89a)


여기에서 연합국의 병력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아람 (Hadadezer) - 전차 1,200대/ 기병 1,200/ 보병 20,000명

하맛 (Irhuleni) - 전차 700대/ 기병 700/ 보병 10,000명

이스라엘 (Ahab) - 전차 2,000 대/ 보병 10,000명 

KUR Gu-a-a (Byblos?) 왕국 - 보병 500명 

KUR Mu-us-ra (The Musreans) 지역 - 보병 1000명 

텔 아르카 도시국가 (Tell Arqa) - 전차 10대/ 보병 10,000명 

Arwad 도시국가 (King Matinu Baal) - 보병 200명 

Usannata (레바논 산 근처) 지역- 보병 200명 

Ušnatu (King Adunu Baal) 왕국 - 전차 30대/ 보병 [],000명 - 불명확함

아라비안 (king Gindibu) 왕국 - 낙타 1,000 마리 

암몬 (King Baasha) - 보병 [],000명 - 불명확함 


으로 나열되어있고 총 병력은 약 3,940대의 전차/ 기병 1,900/ 낙타 1,000/ 보병 53,000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이 연합체의 맹주는 아람의 벤-하다드 또는 이스라엘의 아합이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의 1 - KUR Mu-us-ra은 종종 이집트로 해석되기도 한다. 만약 이집트라면 겨우 1,000명인 병력은  이 연합에 이집트가 부정적이였거나 아니면 긴급히 배로 병력을 이동시켜야했기 때문일 것임을 시사한다 (만약 육로로 이동했다면 병력의 대부분이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집트는 실제로 비블로스에 병력 500명을 지중해 건너 주둔시키기도 했었다.)

주의 2 - 12명의 왕의 연합이지만 11명만이 기록되어 있기에 마지막 왕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당시 이스라엘의 사실상 종속국이였던 남유다의 병력이라는 추측과 이집트라는 추측이 있다. 어찌됐건 이 불명의 12번째 왕국은 연합에 부정적이었거나 전장에 제 시간에 맞쳐서 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의 3 - 밑줄 쳐진 단어는 해당 왕국의 지도자를 뜻한다.


이에 맞서는 아시리아의 병력은 추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아시리아는 기록에 본인들의 피해를 기록하지 않고 공적만을 적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측을 할 수는 있다. 


샬마네세르 3세 16년차 (이는 카르카르 전투 약 10년 후의 기록이다)에 이와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Horses trained to the yoke, 2,002 chariots, 5,542 cavalry horses, as the army of my land I set up.10 Month Tashritu, twenty-second day, eponymy Taklak ana-sharri, governor of the city Nimit-Ishtar. 


또한 20년 차에는 


The month Sha-kinate, month Tashritu, first day, eponymy of the twentieth year. 2,001 chariots, 5,242 cavalry horses, as the army of my country I organized 라고 기록되어있다. 


대략 2002대의 전차와 5,542마리의 전투용 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의 4 - 아시리아 문헌에서 기병을 표현할 때 쓴 "pithallu" 라는 단어는 종종 "기병유닛" 뜻하기도 한다. 당시 아시리아 편제상 기병을 2인 1조로 움직였고 (한명이 자신의 말과 다른 사람의 말의 조종까지 맡고 나머지 한 명은 활을 쏘는 등) 이를 따를 시 기병의 수는 1만 이상으로 수직 상승한다. 

주의 5 - 2두, 4두를 병행한 레반트 지역과 달리 아시리아는 4두 전차만 운용했기에 이에 필요한 말만 8,006마리에 달한다. 


이와 같은 결과를 두고 보았을때 12왕국 연합체가 전차 수에서는 2대1 정도로 우세했고 기병 수에서는 유의미하게 불리했다. (보병은 불명임). 하지만 당시 기병은 여전히 전차에 비하면 2선 전력에 불과했고 여전히 전차가 전장의 주인공이였다. 이는 12왕국 연합체가 아시리아와의 전투를 결심하는 주요한 이유이였을 것이다 (질걸 알면서도 나가는 일은 없으니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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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53년 양측의 병력은 현재 시리아 서북부 하마주에 위치할 것으로 추측되는 "카르카르"에서 격돌했다. 하지만 당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불명이다. 이를 기록한 문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 손에 꼽히는 대규모 회전이었을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아시리아는 자신들의 완전한 승리를 주장한다. 


"I felled with the sword 14,000 troops, their fighting men, (and) rained down upon them destruction ... The plain was too small to lay the (incredible number of) their bodies (lit. "lives") flat; the extensive area was not sufficient (lit. "vanished") to accommodate burying (all of) them"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14,000명을 죽였다고 기록에 나와있다. 사상자도 아니고 무려 전사자 수이다. 이 수치를 따를 시 연합군의 병력의 26%가 궤멸당한 사실상 전멸을 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 들어서는 이 기록을 믿지 않거나 상당히 부풀려 졌다고 알려져있다. 


현재는 12왕국 연합체와 아시리아가 사실상 무승부를 거뒀거나 오히려 12왕국 연합체가 승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샬마네세르 3세는 기원전 852-850까지 이어진 원정중에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지 못했다.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뜻)

2) 카르카르 전투 뿐만아니라 아시리아 군과 12왕국 연합체는 4번 더 맞붙고 마지막에서야 (기원전 841년) 아시리아군은 아람의 다마스쿠스를 포위하고 레반트에 진출한다. 

3) 카르카르 전투 직후 (약 몇년 후) 이스라엘과 아람은 "길르앗 라못"의 영유권을 두고 서로 전투를 벌인다. 양성이 극도로 어려운 전차병력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었더라면 이 두 국가가 대규모 회전을 (그것도 카르카르 전투 직후에) 할 수 있었을 수가 없다. 


논외 - 길르앗 라못 전투는 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 종주권을 두고 전투를 벌였을 가능성 또한 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큰 피해를 입고 아합마저 전사하면서 아람이 확고한 맹주로 떠올랐을 것이고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아시리아의 빈번한 원정에도 연합체가 연맹을 굳건히 했을것이다. 


이후 


12왕국 연합체는 여전히 아시리아에 굳건히 저항했지만 기원전 543-542년에 아람의 "벤하다드"가 자신의 가신인 "하자엘"에게 암살당하고, 조약이 높으신 분들의 약속에 불과했던 고대 근동 특성상 연합에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합의 아들이였던 여호람은 12년전 자신의 아버지가 전사했던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지만 기원전 842-841년에 일어났던 예후의 반란으로 왕가자체가 패망해버리자 타의든 자의든 어떻게든 유지되고 있던 아람-이스라엘 동맹은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전통성이 없었던 예후가 보호를 대가로 이스라엘을 알아서 아시라아의 제후국으로 만들어버리는 병크를 저질러버려 아시리아의 레반트 진출이 수월해졌다 (Black Obelisk에 기록된 나라들은 아시리아에 저항없이 굴복한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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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을 빠르게 무너져갔고 기원전 841년경 샬마네세르 3세에게 대항하는 조직은 아람 (다마스쿠스) 밖에 없었다. 아시리아군은 다마스쿠스를 포위 후 페노키아 (시돈, 티레), 이스라엘에 공물을 받고 주둔군을 설치하고 레반트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출처


ELAT, M. (1975). The Campaigns of Shalmaneser III against Aram and Israel. Israel Exploration Journal, [online] 25(1), pp.25–35. Available at: https://www.jstor.org/stable/27925486.

Grayson, A.K. (1996). Assyrian Rulers of the Early First Millennium BC II (1114-859 BC). University of Toronto Press. doi:https://doi.org/10.3138/9781442671072.

Grayson, A.K. (2007). SHALMANESER III AND THE LEVANTINE STATES: THE ‘DAMASCUS COALITION REBELLION’. Perspectives on Hebrew Scriptures II, 11(2), pp.51–58. doi:https://doi.org/10.31826/9781463212834-006.

Vidal, J. (2013). Calculating Percentages of Battle Casualties: On the Reliability of Assyrian Annals and Reliefs from the 9th Century B.C. Altorientalische Forschungen, 40(1). doi:https://doi.org/10.1524/aof.201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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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대 근동 공부하는 사람은 아닌데 흥미로워서 정리글 한번 써봄. 오류 있을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