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하라 지우네. (1900 ~ 1986)
2차세계대전 당시 주 라트비아 일본 대사관으로 근무함.
바르바로사 작전 직전, 라트비아는 나치를 피해 찾아온 유대인들로 들끌었음.
이들은 각종 대사관을 닥치는대로 찾아가며 망명신청을 했는데, 몇몇은 중립국 식민지행 비자를 얻었지만,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음.
유대인 무리를 본 스기하라는 유대인들이 일본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본국에 일본행 비자 추가발급을 요청했지만 묵살됐음.
당시 그의 권한으로 발급할 수 있는 비자는 정보원 망명용 허락된 15장 뿐.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일본행 비자를 수기로 위조하기 시작함.
1940년 8월 31일 베를린으로 이송될 때 까지 하루 20시간동안 매진한 끝에 2000장이 넘는 비자를 손으로 작성함.
이송 직전엔 아에 밑에 서명과 도장만 찍힌 백지서류를 잔득 찍고 뿌렸다고.
덕분에 6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일본으로 갈 수 있었음.
스기하라는 라트비아 패망 후 체코로 배치되어 첩보일을 하다 몰려온 소련군에게 항복함.
당연하게도 위조 행적을 이유로 1947년 관직에서 나가리됐음. 이후 번역가 일을 하며 먹고 삼.
유대인들에겐 영웅이지만 일본에서는 정부를 속였다며 스기하라를 엄청 싫어했는데
1985년 이스라엘에서 '열방의 의인'이라는 명예칭호도 받았지만 일본 정부는 없는사람 취급하며 무시했고
사후 유대인 단체가 일본에 세워준 기념비는 얼마뒤에 도시발전에 방해가 된다면서 철거해버림.
2차세계대전 당시 주 라트비아 일본 대사관으로 근무함.
바르바로사 작전 직전, 라트비아는 나치를 피해 찾아온 유대인들로 들끌었음.
이들은 각종 대사관을 닥치는대로 찾아가며 망명신청을 했는데, 몇몇은 중립국 식민지행 비자를 얻었지만,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음.
유대인 무리를 본 스기하라는 유대인들이 일본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본국에 일본행 비자 추가발급을 요청했지만 묵살됐음.
당시 그의 권한으로 발급할 수 있는 비자는 정보원 망명용 허락된 15장 뿐.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일본행 비자를 수기로 위조하기 시작함.
1940년 8월 31일 베를린으로 이송될 때 까지 하루 20시간동안 매진한 끝에 2000장이 넘는 비자를 손으로 작성함.
이송 직전엔 아에 밑에 서명과 도장만 찍힌 백지서류를 잔득 찍고 뿌렸다고.
덕분에 6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일본으로 갈 수 있었음.
스기하라는 라트비아 패망 후 체코로 배치되어 첩보일을 하다 몰려온 소련군에게 항복함.
당연하게도 위조 행적을 이유로 1947년 관직에서 나가리됐음. 이후 번역가 일을 하며 먹고 삼.
유대인들에겐 영웅이지만 일본에서는 정부를 속였다며 스기하라를 엄청 싫어했는데
1985년 이스라엘에서 '열방의 의인'이라는 명예칭호도 받았지만 일본 정부는 없는사람 취급하며 무시했고
사후 유대인 단체가 일본에 세워준 기념비는 얼마뒤에 도시발전에 방해가 된다면서 철거해버림.
저 분이 발급한 비자가 있으면 가족들도 통과가 허락되어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약 3만명으로 추정된다 함. 이스라엘 독립 후 일본과 수교하자 맨먼저 저 분의 행방부터 문의했다 함. 동양인으로 유대인을 구출하여 '열방의 의인' 칭호를 받은 사람은, 국민당 정부 중국인 관리 1명, 프랑스령이던 월남인 1인 등 두 사람이 더 있다 함
정부를 속였기 보다는 2차 대전 때 추축국이었던걸 굳이 떠올리게 해서 그런걸거같은데
오히려 유대인을 위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반추축국 이미지를 주지, 추축국을 연상케 하지는 않는데 - dc App
일본의 정서는 상명하복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신나간 명령이라도 무조건 따르고, 인내하는 것이 사명이자 미덕으로 여김 오죽하면, 자살공격에 참가해 전사한 것을 가문으로 영광으로 생각하는 나라임 그러니, 상관의 지시를 어기고, 비자를 발급한 것은 아무리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해도 일본의 정서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임
반대로 난징대학살에서 중국인들을 살린 욘 라베도 있었지 ㅋㅋㅋㅋ
이게 그 붕어작전인가 뭐시긴가랑 연결된건가
라트비아 아니라 리투아니아 아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네
일본 정부 스러운 최후다
익숙한 헬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