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본영에서 이루어진 회의에 대한 회고록같은거 보면...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태평양 해전에서 어렵다는건 다들 인지하고 있었음.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거다까지도 알고 있었고.,.


당시 미국의 석유금수조치 해제의 요구조건이.. 중국 본토와 만주에서의 철군이였는데...

협상파들은 중국본토서는 철군하고...만주는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해보자라는 쪽이였고..주로 황족이나 관료출신들..

물론 이것도 현실성이 떨어졌지. 왜냐면 미국이 받아들일지도 알수가 없고, 일본 육군 강경파들을 설득할수 없을테니..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게...진주만을 쳐서 태평양 함대에 지대한 타격을 주고...그 사이에 동남아 진출해서 자원을 확보한다.

유럽전선에서 독일이 선전중이니..미국은 우리랑은 타협할려고 나올수가 있다. 그럼 그때 중국에 대한 우월권을 약속받고..필리핀은 중립지대로 만들자. 


뭐 결론은 폭망이였지.  미국은 진주만이후 단 한번도 협상의 협자도 꺼내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