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군사고문단은 북한의 정규 무력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지원해줄 목적으로 형성되었다.이 제도 형태는 조선인민군 창설과 더불어 공식 확정되었으나 1946년 8월 북한의 첫 정규무력인 보안간부훈련소가 조직되었을 때 무력성 부상 불가닌(Булганин Н.А)의 허가 하에 장성 3명,군관 343명 규모로 편성되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당시 군사고문관은 1945년 8월 북한에 진주한 제25군 소속 장성과 군관들로 구성되었다.소련 군사고문단은 1948년 이들을 중심으로 법제화되어 1948년 소련군 제25군 철수 이후에도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고문단은 군사고문,교관,전문가,통역,사무 및 기술보조요원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북한군 소련고문단장은 스미르노프(Смирнов)소장이었고,1949년 4월에 교체되었다.후임인 쉬띄꼬 (Штыков)가 주북한 대사로 부임하여 1950년 2월까지 겸임하였다.

쉬띄꼬프는 군사적 임무보다는 모스크바와 평양간의 협의를 중개하는 등 정치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그 후임 바실리예프 중장은 북한군의 남침계획 수립과 초기 전쟁 수행 지원을 담당하였다.1951년 1월에는 라주바예프 중장이 부임하여 1953년 4월까지 대사관의 무관도 겸임하였다
1949년 3월 김일성의 소련 방문 이후 북한 군사원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고문관의 질적 향상도 추구되었다.북한에 파견되는 총참모부 고문이나 각 병과부대 선임고문들은 군사아카데미를 1∼2개 이수하고 제2차 세계대전 실전 경험과 오랜 지휘관 근무 연한을 가진 자들이었다

전쟁 직전까지 군사고문단은 소련 육군성의 지휘,통제를 받았으나,군사 고문단장 기구는 북한 민족보위상과 인민군 최고사령관 산하에 배속되어 있었다.고문관들은 인민군 각 병종 사령관이나 부서장 예하,그리고 보병사단과 독립보병여단,보병 및 포병연대,독립전투 및 교육부대,군관학교 등 연대 규모 이상에 배치되었다.

그 중 군관학교 및 강습소에 배치된 고문관들은 지휘관 양성 업무를 지원하였다.북한군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소련군 편제에 따라 조직되었고,소련군의 교육프로그램 및 교범에 따라 교육받았다.

소련 군사고문단의 기능 및 임무는 첫째,소련으로부터 수송되는 군수물자의 수송 및 인수방법과 절차
둘째,유류의 저장시설과 정유시설의 신설
셋째, 추가적인 돌격 및 예비사단의 편성과 훈련 넷째,중국으로부터 조선인 부대의 파병조치등이다.

1950년 3월 현재 군사고문단 활동에 힘입어 양성된 북한의 지휘인력은 다음과 같다:
육군-군관 6,349명,예비군관 3,237명
공군-조종사 116명,항공기술자 및 전문가 228명
해군-군관 612명,수병 640명

한국전 이전 군사고문단 규모는 목적에 따라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자료에 나타난 인원을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46년 8월-346명,1948년 2월-470명,3월 1일-379명,3월 16일-195명, 12월-209명,1949년 2월 24일-236명,1950년 3월 1일-148명.

미군정보에 따르면 전쟁 직전 소련군 고문은 각 사단본부에 배치하였으며,사단별 규모는 15~17명 선이었다.이들은 군사부문만이 아니라 선전부문까지 배치되었으며,탱크부대나 포병부대 등 특수부대에는 소련에서 제공한 장비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중대 단위까지 소련고문관이 배치되었다.이 정보에 따르면,전쟁 발발 후 38 도선 이남까지 따라온 소련군은 북한군 각 사단본부마다 장교 10명,사병 5명 으로 추정된다
소련고문단을 포함하여 소련군 주둔 비용의 많은 부분은 북한이 감당하였다.특히 1947년 12월 16일 소련내각회의 결정에 의해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소련고문단의 급료를 지불하게 되었다.1948년도 북한군에서 근무하는 소련군군관 및 고문관 유지를 위한 비용은 약 1억 원에 달하였으며,이는 모두 북한 예산 부담이었다

이렇게 군사업무 체계를 정비한 북한은 소련점령군의 장비를 인수받고 이어 중〮․소의 군사지원을 받아 급속히 군비를 확장해 나갔다.소련 군사고문관은 1948년 말 2천 명 정도까지 증강되었으나,소련군 철수와 동시에 대대 단위까지만 고문관을 유지함으로써 1949년부터 군사고문관은 크게 감소하였으며 그 대신 특별군사사절단이 파견되어 인민군의 전력증강을 지도하였다.

북한 소련점령군 철수 이후,군사고문단과 별도로 북한에 머물면서 전쟁준비를 지원한 소련의 군사전문가나 군무원 숫자는 4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즉,당시 군사전문가 잔류상황은 소련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1949년 2월 18일자 보고서 ‘군철수 이후 잔류인원 보고’에 총 4,298명이 북한에남아 있으며,이중 4,020명은 군인이고 나머지 273명은 군무원임을 밝히고 있다. 당시 같은 시점에 남한에 잔류한 미군병력이 1개 연대전투단임을 고려할 때 이 숫자는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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