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당시 북괴군의 남침으로 경무대(청와대 전에쓰던 이름겸 건물)에서 오전11시에 비상 국무회의가 열렸음
회의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흐른후 점심쯤 재무부 차관에게도 국무회의에 참석하라고 통보가 왔었고 차관이 회의에 참가하려고 경무대에 도착했을땐 긴급회의가 이미 끝난상태였음
한발늦은(통보자체가 늦어서 어쩔수없었지만) 재무부차관에게 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국부방차관왈 “북괴군이 전면공격을 해서 격전을 치르고 있으나 곧 격퇴될 것이니 염려할 건 없다”라고 말해줬었음
그래도 재무부차관은 혹시 모르니 전 금융기관들에게 대기명령을 내렸음
그후 금융기관들은 밤새도록 대기했지만 따로 연락 받은 것도 지시받은것도 없는상태로 첫날을 보냈고 전쟁초기전황은 다 알다싶이 불리해져가면서 서울의 함락이 예상되는 상황이 됬었음
전쟁27일 새벽 3시엔 윗선회의에서 수원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했고 라디오에서도 정부가 서울을 버리고 수원으로 천도(遷都)했다는 방송이 나왔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한국은행 총재는 은행의 지하금고에 있던 미발행권(지폐)랑 금괴은괴의 반출계획을 세우게됨
왜냐하면 금자체가 귀한것도 귀한거지만 이런 귀금속류는 진짜 앤간히 막장인상황인곳이 아니라면 가치를 인정못받는곳이 없고 안받아주는곳이 없으니 전시엔 엄청 유용하걸랑
당장 지금 러시아에서 외국무기산답시고 루블로 주면 누가좋아하겠음? 외화가 모자라서 몸비트는 북괴조차도 루블은 거른다 만다 말나오는상황인데 ㅋㅋ 근데 금괴를 딱 쥐어주면 루블따위와는 다르게 믿음직하지
스페인 공화파 같은경우에 내전으로 국가신용도 떡락이라 자국화폐론 무기를 제대로 못사올 상황에서 어떻게 빨갱이들 구형무기나마 사와서 싸운건 국고를 탈탈 털어서 나온 금을 판매한덕분이였음
비록 스탈린이 같은 빨갱이면서 통수(금괴상자 다털어간다음 러시아제국에서 쓰던 국군 패튼급만도 못한 중고무기를 재고정리할겸 팔아먹음)를쳐서 제값을 못받긴했지만...
한국은행은 전쟁발발시 창립(6.12)한지 한달도 안될때라 한창바쁠때였는데 이런상황까지 닥치니 초비상이 걸렸음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하던 운송수단은 트럭 2대뿐이였는데 그 2대의트럭도 군에 징발당해서 남아있는 가용차량은 승용차 4대가 전부여서 답이 없었음
유이한 수송편중하나가 막혔지만 그런다고 손놓고 구경할수는 없으니 총재가 아침부터 서울역에가서 금괴운송이가능한 열차를 수배했지만 교통부 장관의 허가장이 없어서 열차수배에 실패함 안그래도 급박하고 정신없는 상황이니 우선권을 얻기힘든 시기긴했음
총재가 열차수송편을 구하는데 실패한후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육군경리단 소속 김일환 대령에게 연락이왔음(국방부장관이 소식을듣고 명령했다는 썰도 있는데 그양반이 장관일때 개노답행적을 생각하면 신뢰도가 매우낮다고 개인적으로생각)
육군 경리단은 군자금 인출과 관련해서 한국은행과 접촉한적이 있어서 내부사정을 알고 있었고 전화로 총재에게 “금괴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하고 물어봄
총재는 그전화를받고 군과 협조해서 금괴반출을 하기로 결심했음 금은 아까도 말했다싶이 전시에 중요물자기도 하니 금괴 운송에 성공한다면 윈윈하는 상황이 될수있는거닌깐
전쟁 발발 이틀뒤인 6월 27일 아침에 국방부장관의 명령을받은 헌병대 20명이 트럭과 지프차를 몰고 한국은행으로 갔음
해군소령으로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정규섭 예비역 제독은 실무담당자로서 임무를 맡고 김일환 국장과 함께 한국은행에 지프차를 타고갔음
한국은행에 도착한후 총재실로갔고 거기엔 재무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기다리고 있었음
정규접 전 제독은 총재와 '전시상황하 국가 재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일’을 약식으로 논의하고 금고가 있는 지하실로 내려감
정규섭 전 제독왈 “금괴가 지하실 창고금고에 쌓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은행 지하창고에는 국가재산인 금·은괴와 지폐가 보관되있었고 대략 80상자(은행직원들이 밤새서 정리해둠)가 넘었음
약 4톤(금은1톤)에 달하는 한국은행의 금괴와 은괴를 89개 상자에 나누어 포장한다음 헌병사령부에서 수배한 GMC 트럭 2대에 실었고 소총으로 무장한 헌병 1개 소대가 트럭의 호위임무를 맞게됨
(실제 이동루트와는 그시절과 지금 도로가 달라서 좀다름 이해를 위해 간단하게 첨부)
한국은행 총재는 트럭에 대략 금 1.1t과 은 2.5t을 싣고 승용차 2대와 함께 27일 오후 2시 서울을 출발했음
다음날 9월 28일엔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으니 간발의 차이로 북괴군을 따돌린거
28일 오후 4시 30분엔 경기도 시흥에 있던 육군 보병학교에 도착했지만 하늘에 북괴군소속의 군용기가 보일지경이라 오래있기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음
그래서 28일 새벽 5시엔 시흥을 출발해 수원을 거쳐 오후 3시 30분 대전에 도착했음
금괴상황을 보고받은 윗선은 즉시 더 남쪽으로 위치를 옮기라고 명령받았고 오후 9시 금괴는 열차에 실려 대전을 출발했음
결국 금괴는 29일 새벽 4시 30분에 진해에 있었던 해군 경리부 창고에 무사히 도착하게됨
이렇게 금 1,070kg과 은 2,500kg은 진해 해군 창고로 옮겨왔지만 아쉬운건 급박한 상황이라 금 260㎏ 분량은 옮기지 못했고 그건 서울을 장악한 북괴군이 차지하게됨
그후 금괴는 진해통제부에서 책임지고 보관하는와중에 미국의 권고로 8월 1일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선박으로 150만 달러의 보험에 가입한후 미국으로 다시 이송하게됨
당시 전황이 불리하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조치였었음 한창 전세가 불리할땐 제주도로 국부천대 시즌2를하거나 아니면 태평양섬하나를 미국한테 빌려서 임시정부를 세우니하는 계획도 나올때였어서
그리고 미국으로 옮겼던 금은 뉴욕의 연방준비위에 보관했다가 뒷날 IBRD와 IMF 가입(1955년)시 출자금으로 전부 사용하게되서 다시 머한으로 돌아오지는 않게됬지만 결과적으론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이게됨
여담1)급박할때라 그런가 이송썰들이 조금씩 다 다르더라 당장 금괴옮길때 트럭도 2대라는 말이 있고 1대라는 말도있음 일단 실무담당자의 의견이 맞을확률이 가장크다고 생각해서 2대라고 적음
여담2)북괴군이 털어간금괴때문에
이런 뉴스도 나옴 물론 신뢰도는없음ㅋㅋ
출처:한국은행,해군일화,구글링돚거
포터 1대분량도 안되네
금은 너무 비싸 ㅋㅋ
금본위제가 괜히 나온줄 아노?
그때 나라가 많이 어려워서 그런가 금괴나 은괴가 그정도 밖에 없었단건가
이거 영화시나리오로 좋네. 현대에서 금괴 캐는 스토리로 과거 회상 - dc App
도망자 플랜B라는 좆망 드라마가 이거 떡밥을 쓴적이 있..... - dc App
저거 영화화 하면 북괴보다 일본 비중이 더 높을 껄?
차라리 은을 남겨두고 금을 가져가지
금은 복본위제도 있을정도로 은의 위상도 만만치 않았고 금 부족한 나라들은 은본위제 해서 차츰 금본위제로 전환함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누가 나쁜마음 품고 언제 빼돌리나 기대하며 읽었는 데
나도 그 생각 했는데 도망간다는단어가 먹튀로 연상되서 그런듯
실0베보고 왔다. 왜 누가 누군지 이름을 안써놓냐? 무슨 특급 기밀이냐?
딱히 필요없어서 이글은 금괴행방이 메인이지 어차피 은행총재나 국방부 차관이름 궁금해하는사람이 이글읽는사람중에 얼마나 되겠음? 진짜 궁금하면 검색해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