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겨울 한국전쟁에 중국이 개입하면서 1951년 초가 되면 한강 이남까지 전선이 밀리게 됨.

이렇개 되면서 미국은 진지하게 핵을 쓸 것을 검토하게 됨.

미국은 단순히 “너 수틀리면 핵 맞음” 정도의 위협으로는 상대를 겁먹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극동공군에 핵 투발능력을 보유한 B-29 9대를 파견하고 도쿄에 핵 투발과 관련된 부서를 꾸려서 핵 투발에 대한 실무 검토에 들어감.

만주를 핵으로 공격하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 핵 투발 목표로 선택된 곳은 철의 삼각지 중 하나인 금화였음.

금화를 선택한 이유는 전선으로 물자를 보급하는 물자 집적소가 있는 동시에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임. 금화에 대한 핵 공격을 수행하면 적의 보급과 교통이 완전히 마비될 것이었음.

아마도 핵 공격이 실행되면 사용할 무기는 팻맨이었음.

하지만 미국이 핵무기를 꺼내들었다는 게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참전국들 특히 영국이 매우 강하게 반발했음. 당시 영국 총리였던 클레멘트 애틀리가 급하게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트루먼과 면담할 정도였음. 영국은 홍콩 때문에 중국에 아묻따 강경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임.

그리고 금화는 전선과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핵 공격 시 전선의 아군에게 미칠 영향, 그리고 그 영향을 최소화할 보급품의 수송 및 보급, 핵 공격 시 예상되는 중국이나 소련의 반응 등 고려해야 할 상황이 너무 많았음. 1949년에 이미 소련이 팻맨의 동형과 다름없는 RDS 계열 핵폭을 개발해 생산 및 배치하고 있었고 B-29의 데드카피인 Tu-4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극동 지역의 미국 영향권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은 갖추고 있었음.

그래서 결국 금화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은 전면 취소되고 미 극동공군에 배속되었던 핵 공격용 폭격기들도 본토로 돌아가게 됨.

위 사이트 내용을 일부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