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의 능력으론 섬에 실어나르기도 어렵고 힘든 30톤 이상급 기갑차량이나 대구경 대전차포 따위가 아니라


판저파우스트나 바주카 같은 휴대용 대전차 로켓이나 무반동총 따위를 진작에 개발해 배치 하는게 아닌가 싶다


끝물에 4식 분진포 같은게 나왔지만 애초에 실패작이고 남들 30년대 후반에 개발들어갈때 같이 했어야 ㅋㅋ


그랬으면 태평양 군도에서 부터 오키나와까지 미군 전차 출혈이 정말로 2배이상 났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래봐야 끝은 45년 8월 초에 핵맞는게 45년 8월 중순 정도에 맞는걸로  스케쥴이 바뀔 뿐이겠지만


뭐 하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