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edfc19b78269f23ee787ed4781706419e4559c14eaf6727854338881969fb7677c69bc236e


농지개혁법. 이게 가장 큼.



그 시절이 약간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산주의가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엄청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북에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지주가 사라지고 모두 자기 땅을 가지게 되었다더라'라는 식의 선전이 엄청 퍼졌어서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특히 소작인)들이 쉽게 혹할만한 여건이 충분했던 상황이었지만




6.25 발발하기 직전에 농지개혁법이 시행되었고, 그렇게 자기 땅이 된 논에서 아직 수확을 거두진 못했지만

어쨌든 토지대장을 통해 이 땅이 내 땅이 되었구나라는걸 농민들은 분명히 자각할 수 있었음.




물론 북한의 선전문구였던 '무상몰수 무상분배'와는 다르게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약점이 있었지만

이 '유상분배'라는게 농민들 입장에선 수확의 30%를 5년간 내는 조건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소작농이 일반적으로 수확의 50% 이상 70% 가까이까지 소작료로 내고 있었다는걸 감안하면

"소작료를 반으로 할인해줬는데, 그걸 딱 5년만 내면 이게 내 땅이 된다고? 개꿀이네?" 정도는 무지렁이 농민들도 충분히 계산이 서는거였음.




그러니 북한의 민사작전의 가장 큰 틀인 지주타파, 토지분배, 평등사회 이딴 선전에 시큰둥할 수 밖에 없었고, 정작 북한이 점령지에서 무상분배해준답시고 나눠준 땅에서 30% 정도를 공출로 뜯어가니까

'5년만 30% 내면 그 이후로는 100% 내꺼''매년 30% 공출해가는데 이게 평생 가겠네?' 랑 비교가 될수밖에 없었음.




농지개혁법 통과 당시에 당연히 지주들의 반발이 극심했지만, 농지개혁법을 주도한 정치세력에선 "이렇게 안하면 농민들 죄다 빨갱이 될텐데?"란 말로 아닥시켰고 결국 밀어붙여서 성공했음.




그리고 이렇게 작게나마 자영농이 된 농민들은 훗날 산업화 시대에 소 팔아서 자식들 대학보내고, 그렇게 고등교육 받은 자식들은 산업역군으로서 고도성장기의 양분이 되었으니

농지개혁법은 어찌보면 대한민국을 살리고 발전시킨 신의 한 수 중에 하나로 평가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