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군이랑 고려군이랑 군세는 비슷했는데
견훤이 고려군 선봉에 서서 투항하라니까
앞다퉈서 무기 버린 이유있음?
창업자 위엄 있다지만
똑같은 창업자+뒷방 노인 처지인
이성계가 조사의의 난 배후 지휘 했을때는
그다지 모랄빵 없었는데.
후백제군이랑 고려군이랑 군세는 비슷했는데
견훤이 고려군 선봉에 서서 투항하라니까
앞다퉈서 무기 버린 이유있음?
창업자 위엄 있다지만
똑같은 창업자+뒷방 노인 처지인
이성계가 조사의의 난 배후 지휘 했을때는
그다지 모랄빵 없었는데.
그 아들이 아비 보다 카리스마나 지휘역량이 훨씬 미달이었나
뇌피셜인데 현역 차이일듯. 견휜은 아직 자기 밑에서 뛰던 애들이 현역에서 구르고 이성계는 자기 밑에서 뛰던 애들 이미 후임임명하고 은퇴하고
당시 고려도 여러 호족들의 연합군이었듯이, 후백제군도 신검이 끌고온 군대외에 후백제 세력권하의 경상도쪽 호족들 사병들도 포함되었는데, 이런 병력들 앞에 견훤이 적진에서 나타나 투항하라고 하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거임.
후백제 세력 자체가 견훤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세워진 나라라서?
자식대에 ‘방원’했는데 능력까지 없으니
후백제의 모든 지역기반은 견훤이 일군거고 휘하 주요장수, 군사들 모두 견훤밑에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이성계는 동북면 말고는 확실한 지역기반이 없어서 진압군은 이성계랑 별반 관련도 없는데다 장수들도 모두 태종의 심복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조사의 난은 엄연한 한 국가의 내전이지만 일리천 전투는 왕이 자신이 세운 나라와 아들을 버리고 적국에 투항한 거니까 호족과 백성들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민심의 향배가 크게 다를 수 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