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9월, 연합군이 시칠리아섬에 상륙하자 이탈리아 왕당파들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를 숙청하고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려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연합군에게 내주고 싶지 않았던 나치독일은 재빨리 악세 작전(Fall Achse)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여 실각한 무솔리니를 다시 옹립하고 괴뢰국인 살로 공화국(Repubblica di Salò)을 세웠다. 한편 연합군은 자신들에게 항복한 이탈리아군들을 어떻게든 써먹으려 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공동 교전군(Esercito Cobelligerante Italiano)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으며, 1945년까지 6개 사단 30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이탈리아군의 졸전신화를 잘 알고 있던 연합군 지휘부는 이들은 치안유지와 후방경계등 비전투 임무에 동원했다.
1945년 4월, 전쟁이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걸 느낀 연합군은 어떻게 해서는 종전 전까지 이탈리아 전체를 손에 넣고자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가로지르는 아펜니노(Appennino) 산맥과 유일한 통로인 포 계곡(Pianura Padana)의 험준한 지형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여길 넘어야만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 베네치아, 베로나, 트리에스테등 이탈리아 주요 공업도시들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에 독일군은 남부 독일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인 고딕라인(gothic line)을 구축하고 고갯길마다 장판파를 시전하는 중이었다.
영연방군 제8군 사령관이었던 리처드 맥크리(Richard McCreery) 중장은 고딕라인을 돌파하려면 독일군 후방에 사보타주와 거점타격을 가해 혼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포 계곡의 경로를 미리 선점한다면 오스트리아와 남부독일로 철수하려는 독일군의 퇴로를 막아버리고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대대병력에 해당하는 타격부대를 고지대를 선점하고 있는 독일군 후방에 침투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선 수송기를 통한 공수작전 밖에 없었다.
당시 연합군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부대는 영연방군 코만도(Commandos), 미군 레인저 연대 혹은 제101, 82 공수사단, 17공수사단 등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탈리아 전선은 서부전선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지역이었고, 위에서 말한 부대들은 전부 독일 루르 지역의 지크프리트 라인(Siegfried Line)을 뚫는데 투입되고 있었다. 새로운 부대를 꾸려서 훈련 시키기에는 시간과 장비 모든것이 부족했다. 상황이 이렇자 연합군은 후방 경비나 서고 있던 이탈리아군의 어떤 부대를 눈여겨봤다.
당시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에는 제184 '넴보' 공수사단(184ª Divisione paracadutisti "Nembo")과 제185 '폴고레' 공수사단(Brigata Paracadutisti 'Folgore')의 잔존병력이 남아있었다. 두 부대는 2차대전 이탈리아군의 얼마 되지 않던 정예부대였다. 특히 폴고레 공수사단은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의 엘 알라메인 전투(Battle of El Alamein)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처절하게 싸웠던 바로 그 부대였다.
하지만 두 부대는 이미 지난 몇년 간 고참병들이 대부분 소모됐고, 일부는 살로 공화국 편에 붙은 상황이었다. 두 사단은 이제 연대로 축소되었고 심지어 폴고레 측은 1간부와 병사 다 합쳐 단 10명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영국군은 일부러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활약했던 주세페 이조(Giuseppe Izzo) 중령을 부임 시켜 부대를 재건하도록 했다. 이조 중령은 스페인 내전과 그리스 전역, 북아프리카에서 잔뼈가 굵은 무인이라서 이탈리아군에서 드문 베테랑 군인이었다. 그는 포로들중에서 과거 자신 휘하에서 복무했던 병사들, 그리고 이탈리아 산마르코 해병연대에서 지원병을 받아 1년만에 자체적인 포병부대와 공병대대를 보유한 4개 연대 규모로 부대를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폴고레 연대 자체는 해체되어 넴보 연대에 흡수되었으나, 네임밸류를 생각하여 이 부대는 폴고레 전투단(Gruppo di Combattimento "Folgore")으로 불렸다. 이들은 연합군으로부터 전투력을 인정받아서 위력정찰 작전등에 투입되며 실전경험을 쌓아갔다.
한시가 급했던 연합군은 카를로 프란체스코 게이(Carlo Francesco Gay) 대위를 호출왔다. 연합군 장성들은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이 작전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대위는 잠깐 생각하더니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막중하기 그지 없었다. 해발 평균고도가 1000m가 넘는 지역에 강하한 이들은 독일군 거점타격과 교량, 도로, 제방등 주요 시설을 점령하고 폭파해야했다. 당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나치에 저항하는 파르티잔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공조가 가능했으나, 노르망디와 마켓가든을 겪어 본 연합군 지휘부도 이들이 생존할 확률이 10% 정도라고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폴고레 전투단은 적진에 낙하할 226명의 대원들을 선발했다. 여기에 넴보 3대대에서 선발된 117명이 추가됐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은 1943년 이후로 공수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들은 급하게 수령한 영국제 낙하산을 가지고 몇 주간 속성교육을 받았다. 영국군 앨런 램지(Alan Ramsay) 소령이 끄는 SAS 교관들이 이탈리아군에게 사보타주 훈련을 가르쳤다. 영국군 측은 브렌 기관총과 스텐 기관단총, 그리고 웨블리 리볼버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들은 영국군들의 무기, 특히 스텐 기관단총을 신뢰하지 않았고 자국산 베레타 MAB38 기관단총과 M1934 권총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제1 정찰대대 '폴고레' (1º Squadrone da Ricognizione "Folgore), 줄여서 F 스쿼드론(Squadrone "F")이라고 불렸다.
1945년 4월 19일, 고딕라인을 돌파하기 위한 청어 작전(Operation Herring)이 실행됐다. 연합군이 각 전선에서 독일군과 살로 공화국 민병대를 밀어올리는 동안 이탈리아 공수부대원들은 로시냐노(Rosignano)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C-47 수송기에 올랐다. 원래는 공수부대 전문 수송기들이 있어야 했지만 이들은 17 공수사단(17th U.S. Airborne Division)을 베스트팔렌 주에 낙하시키기 위해 죄다 서부전선에 배속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들을 실고 날아오를 수송기들은 공수부대 수송경험이 없는 파일럿들이 조종했다.
14대의 수송기에 나눠 탄 F스쿼드론들은 4월 20일 18:00에 비행장을 떠났다. 이탈리아군들은 고참이고 신병이고 죄다 긴장해있었다. 지휘관들은 수송기가 너무 낮은 고도에서 자신들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험이 없던 파일럿들은 독일군 대공포탄이 올라오자 기겁을 하며 바로 뛰어내리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들은 목표지점 근방 40km에 흩뿌려졌다. 심지어 상공에서 이들을 관측해줄 램지 소령이 탄 비행기조차 대공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귀환해버렸다. 다행인 것은 이탈리아군을 태운 수송기가 단 1대도 격추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딕라인 바로 뒤쪽에 낙하한 F 스쿼드론은 2~4명 규모의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버렸다. 하지만 이탈리아군들은 당황하지 않고 훈련받은대로 자신들이 낙하한 지역의 주요 시설물들을 파괴하고, 지역 파르티잔들과 연합하여 독일군과 살로 공화국 민병대들을 기습했다. 게다가 대공포화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낙하했던 것이 독일군들에게 오히려 공황을 일으켰다. 그들은 최소 수천명의 연합군 공수부대가 낙하했다고 믿었다. F스쿼드론은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최종목표였던 모데나 동북쪽의 스투피오네(stuffione)와 라바리노(Ravarino)로 모여들었고, 23일 연합군 기갑부대가 올 때까지 마을을 사수해냈다.
4월 20일 밤부터 23일 자정까지 이탈리아 공수부대원들은 다음과 같은 성과를 이뤄냈다.
사살 - 독일군 481명 (살로공화국 민병대는 통계에 잡지 않음)
포로 - 2,083명
교량 폭파 - 3량
탄약고 폭파 - 최소 3곳
도로확보 - 7개소
통신선 절단 - 77개소
차량파괴 - 44대
이에 반해 이탈리아군은 전사 30명, 부상 14명, 실종 10명라는 경미=한 피해에 그쳤다. 이 시점에서 독일군은 더이상 교전의지를 잃은 상태였고 조직적인 저항을 포기한 채 오스트리아로 후퇴하기 바빴다. 연합군은 그동안 뚫리지 않던 고딕라인을 단숨에 돌파하여 롬바르디아 평원으로 진입하였다.
F 스쿼드론이 이런 활약을 하고 있는 사이, 공수작전에서 제외된 넴보 1대대와 2대대 병력은 영국군 제8군 소속으로 육로를 통해 볼로냐 지방으로 넘어왔다. 볼로냐는 이미 4월 9일부터 현지 파르티잔들이 독일군과 시가전을 벌이며 해방구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볼로냐 인근의 카스텔 산 피에트로 테르메(Castel San Pietro Terme) 서쪽에는 중세시대 건설된 카세 그리자노(Case Grizzano)는 성채와 마을이 있었다. 사실 성채도 규모가 너무 작았고 다 허물어져가는 유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곳은 주변에 숲이 전무한데다 고지대에 위치해서 일대를 감제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문제는 이 성채에 독일군 팔쉬름예거 1사단(1. Fallschirmjäger-Division) 4연대 소속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대는 1944년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녹색악마(Die grünen Teufel)라는 별명을 얻은 바로 그 부대였다. 주세페 이조 중령은 넴보 2대대 소속 2개 중대가 이끌고 성채를 점령하기로 결심했다. 05:30, 아군의 준비포격이 개시되자 이탈리아군은 지뢰밭을 개척하고 능선 경사면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기습을 당한 독일군 공수부대는 뒤늦게 반격을 시작했으나 이미 이탈리아군들은 남쪽 건물 일부를 점거했고 증파된 병력들의 도움을 받아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른 성채 내부와 마을에서는 이탈리아 공수부대와 독일군 공수부대의 혈전이 벌어졌다. 초반에 제대로 밀린 독일군 공수부대는 증원병력을 불러와 성채를 탈환하려고 그 날 하루동안 총 5번 이상의 반격을 펼쳤다. 하지만 이탈리아군들은 물러나지 않고 총검으로 육박전까지 불사해가며 팔쉬름예거들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조 중령 역시 베레타 권총을 휘두르며 부하들을 지휘하다 중상을 입었다.
16:00에 1대대의 증원병력이 도착하였고 독일군은 마침내 탈환을 포기하고 후퇴했다. 이탈리아군은 전사 33명(장교 3명 포함) 부상 52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카세 그리자노 성채를 손에 넣었다. 단 하루만에 공수작전에 투입된 F 스쿼드론과 비슷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4월 27일 무솔리니가 처형 당하고 살로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북부 이탈리아는 연합군의 손에 들어왔다. 이들의 활약은 그동안 이탈리아군을 허접한 군대라고 생각하던 연합군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후 폴고레 전투단의 간부와 병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특히 카세 그리자노 성채를 점령하는 공훈을 세운 주세페 이조 중령은 이탈리아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메달리아 도로(Medaglia d'oro al valor militare)와 함께 미군으로부터 수훈 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 받기도 했다. 이조 중령은 남은 평생동안 독일군, 그것도 팔쉬름예거를 상대로 승리한 이 전투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넴보 연대와 폴고레 연대는 21세기 현재까지도 그 이름을 이어받아 이탈리아군 공정부대로 존속하고 있다. 이 두 부대는 매년 4월 20일이 되면 연합군의 승전에 일조한 이날의 승리를 기념하며 전투행군, 공수강하시범등이 포함된 행사를 열고 있다.
http://www.nembo.info/Associazione/Case%20Grizzano/case_grizzano.htm
Case Grizzano
www.nembo.info
https://it.wikipedia.org/wiki/Operazione_Herring
https://it.wikipedia.org/wiki/185%C2%BA_Reggimento_paracadutisti_ricognizione_acquisizione_obiettivi_%22Folgore%22
https://it.wikipedia.org/wiki/Giuseppe_Izzo
https://it.wikipedia.org/wiki/Battaglia_di_Case_Grizzano
https://militarynewsfromitaly.com/tag/case-grizzano/
https://www.bologna24ore.it/notizie/cronaca/2022/04/27/castel-san-pietro-lassessore-mezzetti-alla-festa-del-183-reggimento-paracadutisti-nembo-svoltasi-a-pistoia/
http://www.nembo.info/Associazione/Case%20Grizzano/case_grizzano.htm
Battaglia di Case Grizzano - Wikipedia
it.wikipedia.org
오랜만의 꿀잼 정보글 개추
고퀄ㅊㅌㆍ
ㄹㅇ 자랑스러울만 하네
폴고레 10명이 남아있던게 신기하네
팔쉬름 vs 넴보라는 드림메치가 한번 있었구나 ㄷㄷ - dc App
팔쉬름도 솔직히 크레타공수작전이후 정점에서 꺾인터라 ㅎㅎ
이름이 맥크리, 게이...
손에 파스타만 제대로 쥐어주면 못하는게 없는 이태리 상남자들이네
병사들 역량은 충분했지만 수뇌부가 전쟁준비 하나도 안해두고 졸렬하게 지도한 탓에 억울하게 졸전 벌인게 2대전 이탈리아지
독일편이 아닐때는 잘하는 이탈리아
이탈리아군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 아니면 신념뿐이다 !!
동기만 부여되면 잘 싸우는 것 같음 1대전때도 그랬고
하늘에서 낙하하는 공수부대를 보면서 영국군 코만도나 미군이라고 생각했을껀데......
모든 이탈리아군이 영국군과 저리 싸웠으면 아프리카에서 이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