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48년, 중국과 소련의 지원하에 1948년, 북한군은 평양 인근 사동에 제15기갑훈련연대를 창설하였음 부대 사령관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였던 류경수 대좌였고 소련군에서 파견된 30명의 기갑장교들이 이들을 교육시킴. 북한군은 국공내전에서 노획된 일본제 치하나 하고, 미국제 M3A3 스튜어트와 M4 셔먼을 가상 적군으로 사용하여 전차전 교리를 익혔다고 함.


1949년이 되자 훈련연대는 해체되고 그 인원 그대로 제105기갑여단이 창설되었으며, 여단의 3개 기갑연대는 소련이 제공한 T-34/85를 40대씩 보유하게 됨. 이들은 1950년 봄 대규모 기갑훈련을 통해 최종적으로 작전역량을 평가받음.














1950년 7월 10일~11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서 미육군 제78전차대대 A중대의 M24 채피 8대가 아침안개를 이용하여 기습을 감행한 북한군 T-34/85들과 교전, 1대를 격파하였지만  7대를 잃고 중대가 전멸 당함. 사진의 레벨스 루스트(Rebels Roost)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음. 오히려 전날 155mm 곡사포 TOT 사격으로 T-34 5대를 격파한 포병대의 전과가 더 컸음. 이로 인해 미군 보병들은 '우리전차 병신임?'하며 불신의 눈초리를 보냄.












8월 17일, 마산 대봉리 능선 방어전에서 북한군 제107기갑연대 T-34/85 전차 4대가 공격을 가해오자 미군의 M26 퍼싱 4대가 미해병대 대전차조와 협공하여 2대를 격파함. (나머지 2대는 3.5인치 바주카와 P-51의 지상공격으로 파괴됨). 이 날의 전투를 계기로 미군들은 T-34를 '캐비어 깡통'이라고 부르기 시작함.









8월 21일,  대구 북방 천평계곡에서 T-34/85 9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가 야간을 틈 타 1개 대대 규모의 보병부대와 함께 공격해옴. 미군은 M-26와 M19 40mm 대공포 앞세워 도로 상에서 포격전을 벌여서 북한군을 화력으로 찢어발김. 북한군은 T-34/85 7대와 SU-76 3대를 잃고 후퇴함. 당시 일직선 도로에서 북한군 전차들이 미군 전차들의 사격에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보병들은 마치 볼링핀 스트라이크를 날리는 것 같다며 이 지역을 볼링 앨리(Bowling Alley)라고 부름.









9월 15일, 인천 레드비치에 상륙한 미 제1 해병연대 M26 퍼싱이 폭격에서 살아남은 T-34/85 3대에게 기습 당함. 선두의 중대장 차가 피탄 당했으나 피해가 없었고 즉가 반격하여 북한군 전차 3대를 모두 격파함. 











9월 17일 05시 45분, 부평 지역 서쪽 고지에서 북한군 T-34/85 6대가 보병 250명과 함께 아침안개 속에서 기습공격을 가함. 미 제5 해병연대는 M26 퍼싱 6대의 지원을 받으며 6대를 모두 격파함. 몇 시간 뒤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는 이 전차들을 살펴 보고선 매우 만족해함.


당일 오후, 경인가도를 타고 영등포로 진격하던 미 제1 해병연대가 T-34/85 4대와 마주쳤으나 선두의 M26 퍼싱이 혼자서 4대를 전부 격파함.








9월 21일, 수원비행장을 점령하는 임무를 받은 해넘(Hannum)특수임무부대가 새벽녁에 수원 화서문(華西門)에 도착함. 여기서 북한군 T-34/85 2대의 기습을 받고 선두 중대장차가 격파 당함. 미군은 바로 반격하여 T-34 1대를 격파했고 남은 1대는 수원 시가지로 도주함.


같은 시각, 남쪽에서 해넘 부대와 연결을 기다리던 미 7사단 소속 미군들은 신별되지 않는 전차 4대와 마주침. 미군 지휘관이 지프를 타고 나가서 손을 흔들었는데 알고보니 북한군이었음. T-34 4대는 그대로 남하하여 사단 정찰대 방어진지를 공격함. 이에 M26 퍼싱 5대가 반격하여 T-34 2대가 격파 당했고 나머지 2대는 수원 시가지고 도주함. 이들은 수원 시가지에 진입한 미군들에 의해 각개 격파 당함.












9월 26일, 북한군 제105기갑여단 T-34/85 10대가 오산으로 북상하던 미 제7 기병연대 소속 린치(Lynch)기동대를 야간에 기습함. T-34들은 미군전차가 밀집한 선두를 먼저 보내고 대열 중간을 공격함. 이에 최후미에서 따라오던 M4A3E8 셔먼 3대가 출동했으나 2대가 격파 당했고 남은 M4A3E8 1대가 반격하여 T-34 2대를 연달아 격파함. T-34 1대는 후방의 보병 트럭종대에 뛰어들어 육탄공격으로 지프와 트럭 15대를 파괴함. 이에 보다 뒤에 있던 포병대가 155mm 곡사포를 긴급방열하여 직사로 사격해서 격파함. 나머지 T-34들은 대전차조들에 의해 각개격파 당했고 2대가 살아남아 도주했으나 다음날 아침 린치 기동대의 M26 퍼싱에 의해 격파 당함. 이 전차들을 마지막으로 제105 기갑여단은 전차를 완전히 망실하였고 류경수 대좌는 계급장도 떼어버린 채 북으로 도주함.











10월 12일, 금천 가도정면에서 송현리 인근 도로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제70전차대대 B중대 소속 M26 퍼싱 앞에 아침 안개를 틈 타 북한군의 T-34/85 8대가 기습을 시도함.  M26이 선두의 T-34에게 명중탄 2발을 냈으나 T-34는 불타는 채로 M26에게 충각공격을 시도함. 이에 M26은 긴급후진하면서 제3, 4탄을 사격하여 완전히 격파해버림. 뒤에 있던 7대 역시 뒤이어 증원 온 M26과 M4A3들에게 격파당함. 선두의 M26은 포탑에 85mm 여러발을 피격 당했으나 관통탄이 단 1발도 없었음.











1951년 2월 1일, 한강 너머 마포 일대에 위력정찰 중인 미군을 지원하던 영국군 센추리온 Mk.2 2대가 한강철교 밑에 정체불명의 전차가 엄폐중인 것을 발견하고 사격하여 격파함. 이 전차는 나중에 중공군이 운용하던 영국제 크롬웰 전차로 밝혀짐. 이 전차의 출처는 1월 3일 해피밸리 전투에서 영국 제29보병여단 로얄 얼스터 대대가 운용하다 노획 당한 것으로 추정됨.




북한군의 T-34/85 258대 중 102대(전체의 54%)는 공중 폭격에 의해, 60대(24%)는 네이팜탄에 의해, 39대(16%)는 미군전차에 의해, 나머지 13대(5%)는 보병들의 대전차로켓포에 의해 격파당함.



특히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던 1950년 9월 중순 북한군의 기동가능한 전차는 60대 이하였다고 함. 이에 반해 UN군 측은 전차가 계속 늘어나서 260대 이상이 운용 중이었음. 만약 북한군이 대구를 뚫고 부산까지 진격했다 하더라도 결국 연합군 전차들에게 전장우세를 빼앗겨서 공세역량을 잃었을 거라고 추정됨.



다만 이와 달리 1950년 10월까지 38선 이남에서 격파 되었거나 유기된 T-34는 239대, SU-76M은 74대이며, 미군 전차 피해는 총 60대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