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기존의 기병부대와 여단급 기갑부대를 통합해 3개 기갑사단을 편성하고, 종전 직전에 1개 기갑사단을 추가로 편성함(실제 규모는 여단급). 일본이 사단급 기갑부대를 실전에서 굴린 적은 1944년 중국에서, 그리고 1945년 필리핀으로 딱 두 번 있었는데, 이번엔 미군과 필리핀에서 전투를 치른 제2전차사단에 대해 보고자 함.
1944년 티니안과 괌에 미군이 들이닥치면서 일본군은 미군이 필리핀을 점령하여 일본의 주요 해상교통로를 차단하려 한다고 파악했고, 이를 위해 주요 해상교통로들과 가깝고, 수도인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 섬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했음. 일본군은 남한과 엇비슷한 면적을 지닌 루손 섬 방어를 위해서는 전차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미군이 레이테 섬에 상륙하기도 전인 1944년 7월, 만주에 있던 제2전차사단을 필리핀으로 파견하였음
하지만 최종적으로 루손에 남게 된 제2전차사단의 전력은 만주에 주둔했을 때보다 크게 약화된 상태였음. 1개 전차연대를 쿠릴 열도로 파견해야 해서 필리핀에 도착한 것은 2개 전차연대 뿐이었는데, 여기에 더해 레이테 섬에서 미군과 결전을 치른답시고 2개 중대를 레이테 섬으로 파견보내는 등 전력은 이리저리 분산된 채 소모되었음.
또 수송 중에 미군 항공기와 잠수함들의 공격으로 인해 필리핀에 도착하지 못한 채 수장된 전력도 상당했음. 특히 제10전차연대의 손실이 심각했는데, 이들이 보유한 4개 전차 중대 중 1개 중대는 상륙 중에 공격을 받아 전차들이 거의 모두 파괴되었고, 또 1개 중대는 병력들 중 1/3만이 상륙할 수 있었음.
결국 44년 7월 이전에 전차 270대와 야포 36문, 13,000여 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던 제2전차사단은 미군이 루손 섬에 상륙하기 직전에는 전차 200여 대와 야포 32문, 수천 여 명의 전력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음. 이들이 장비한 전차는 대부분 47mm포를 장비한 신포탑 치하전차 였으며, 소수의 95식 경전차와 89식 전차, 그보다 더 적은 수의 75mm포를 장비한 차량이 있었음.
루손 섬 방어를 위해 필리핀의 제14방면군은 부대를 세 집단으로 나누었는데, 전차 제2사단은 이 중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이 이끄는 쇼부(尙武)집단에 소속됨.
1944년 12월 작성된 계획에 따라 사단의 주력은 카바나투안(Cabanatuan)지역에 주둔했으나 미군 공수부대가 클라크 비행장이나 중부 평야지대에 낙하할 것을 염려한 야마시타에 의해 사단은 분산되었고, 미군의 다음 상륙 지점이 어디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단의 주요 보병부대이자 거의 유일한 기계화 보병부대인 제2기동보병연대의 대부분은 클라크 비행장 지역에, 제6전차연대를 기반으로 한 다른 전투단은 바탕가스 지역에 위치해 있어 상호 지원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졌음
노란 색 부분이 미군의 루손섬 상륙 지점인 링가옌 만
제23사단을 지원할 부대는 지휘관 시게미 이사오 소장의 이름을 따 시게미 지대로 통칭하게 되었고, 카바나투안에 남아있던 제7전차연대 일부와 1개 차량화보병대대, 야전 포병대대 대부분의 전력을 지니고 1월 8일 카바나투안을 떠나 미군과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 해안으로 출발했음. 남쪽에 있던 제6전차연대에도 북상 명령이 내려지고 카바나투안에 있던 제10전차연대에는 공수부대를 대비해 제2기동보병연대와 합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음
그리고 다음 날인 1945년 1월 9일, 미군이 드디어 루손 섬에 상륙하기 시작했음
치-하
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어떻게 ㅋㅋㅋ 전차가 치하 ㅋㅋㅋ - dc App
치하하하하하하하 치끼얏하우
치얏호우
전차 호소인 ㄷㄷ